아름다운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가 꿈을 꾼다. 서정적인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드넓은 평원에서 남자는 천사같은 애인과 함께 뛰어논다. 이들이 활짝 웃으며 꽃다발처럼 던지고 받는 건 점액질이 흘러내리는 해골과 인육. 독일에서 소수의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던 <네크로맨틱>(1985)은 금기 중의 금기인 시체애호증을 소재로 슬픈 사랑이야기를 그린다. 과감한 영화들로 가득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라고 말해도 손색없을 영화는 <네크로맨틱>을 비롯해 특별전으로 마련한 독일 감독 요르그 부트게라이트(41)의 작품들이다.
“모두들 나를 만날 때 괴물을 기대하는데 너무 평범한 외모라서 실망한다”고 재치있게 자신을 소개한 부트게라이트는 가장 잔인한 공포영화조차 엄두내지 못하는 시체애호증을 소재로 장편 셋을 만든 이유로 두가지를 꼽았다. “여성이나 10대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징벌하는 미국식 공포영화에 대한 반감”과 “80년대 엄격했던 독일의 검열제도에 대한 저항”.
“금기중 금기인 시체애호증 다룬건 미국식 공포·독일 검열제 맞선 것”“독일에서도 소수의 지지층만 있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몹시 걱정했다”는 그는 부천에서의 ‘열화와 같은’ 반응(그의 영화들은 모두 매진됐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관객 중 98%가 남성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성 관객이 매우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의 성적 강박을 우아하게 그려 호평받은 <슈람>(1993) 이후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너무 힘들어” 영화 촬영을 중단한 뒤 이소룡 다큐멘터리, 고질라 등 아시아 괴수에 관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해온 그는 최근 독일 남자와 아시아 여자의 “기이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제작 파트너를 만나 영화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