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부시, 백악관을 비우시오, <화씨 9/11>
2004-07-28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마이클 무어의 발굴 화면들, 반부시적 선동으로 불타오르다

마이클 무어는 반자본주의적 다큐멘터리 <기업>(The Corporation/ 2003년/ 감독 제니퍼 애보트 마크 아흐바)에 등장해서 자신의 “추문 캐기”식 사회풍자가 미국사회에 어떤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화씨 9/11>과 관련해서는 다만 그의 주장이 옳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난해 겨울, 무어 감독은 조지 부시 대통령을 베트남전 시절의 “탈영병”으로 묘사하면서 이 나라를 통째로 납치해버린 그에게 직격탄을 날린 바 있는데, 떠들썩하면서도 가히 빨치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 <화씨 9/11>을 통해 그는 부시의 재선 가도 곳곳에 논리정연한 공격의 지뢰들을 매설해놓고 있다. 영화 <화씨 9/11>은 현 정부가 내세운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효과적으로” 공박하고 있는데, 부시 대통령의 집안과 빈 라덴 가의 관계를 “도발적으로” 폭로하면서 현 정부의 공공연한 거짓말들을 비타협적인 자세로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의 도둑맞은 대통령 선거장면에서부터 부시의 2001년 휴가장면, 9·11 테러와 잇단 미국의 카우보이식 아프간 침공, 그리고 부시 가문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석유정치”에 대한 폭로로 이어지는 긴 영화의 오프닝은 이제까지 무어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장면이 아닌가 한다. 전작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일말의 부끄러움 없이 9·11 사건을 이용했던 무어 감독은 이번 <화씨 9/11>에서는 긴박한 초반 30분을 통해 간결하고도 탁월한 방식으로 분노와 눈물을 자아내며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고 있다. 그리고 고통에 찬 섬뜩한 이라크의 전장을 보여주는 극명한 몽타주 장면과 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말똥가리 국방장관의 마초스런 우둔함이 뒤섞이는 장면에서 영화는 다시 한번 오프닝에서의 절정에 도달한다.

프랑스 관객이 영화 내용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던 올해의 칸영화제에서 마이클 무어는 더이상 비주류 지하출판물 작가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그는 가장 인기있는 미국 영화감독으로 대접받았고, <화씨 9/11> 역시 대단한 영화로 과대평가되었다(무어 감독은 수차례 제2의 에이젠슈테인으로 칭송되었는데, 사실 그의 영리한 몽타주 장면들은 전적으로 케네스 앵거의 언더그라운드 영화 <스콜피오 라이징>에서 차용해온 것들이다). 사실 무어 감독의 재능은 신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컨텍스트 속에 숏을 배치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외에 자기 홍보를 제외하고 나면 그의 가장 무시무시한 재능은 바로 “발굴한 장면 편집” 정도가 아닐까 한다. <화씨 9/11>에서 그는 영리하게도 자신의 직접 출연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무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통틀어 본인이 가장 적게 등장하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는 영화 속에서 정작 자신이 옹호해 마지않는다는 평범한 미국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악취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식의 모욕과 경멸은 무어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는 부시 대통령이 평범한 미국 사람들에게 디즈니랜드를 방문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할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고,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은 내부자간의 이메일을 통해 부시를 디즈니의 “새로운 치어리더”로 치켜세우기도 한다(계열의 미라맥스가 무어 영화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이즈너가 부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미국 정부의 기괴한 테러 경고의 사용에 대한 잘 짜여진 구성은 부시가 두려움에 빠진 각양각색의 미국인들과 운수 나쁜 평화주의자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병사들을 놀려먹는 것처럼 비하시키는 순간 그 힘이 사라져버린다. 사실 이 조롱의 이면에는 마이클 무어 특유의 감상주의가 숨어 있다. 그의 이런 성향은 기꺼이 전사자 어머니의 슬픔을 쥐어짜내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번 선거에서 미시간 지역 표를 휩쓸 수만 있다면야…’라고 생각한 것일까?

칸에서 상영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는 개봉판 <화씨 9/11>은 9·11 사건에 관한 청문회 장면이나 포로 학대에 관한 (상대적으로 덜 충격적인) 자료를 포함시켰을 정도로 최신의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지나치게 길고 이런저런 논쟁 속을 오가다가 절룩거리고 있는 느낌도 들지만, 영화 <화씨 9/11>은 설득력 있는 줄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영화는 네오콘(Neocon)들의 연인이라 할 조지 오웰을 섬뜩하게 인용하면서 결말을 맺는다. “전쟁은 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화씨 9/11>은 오락거리로서도 훌륭한데, 마이클 무어 감독은 현 정부의 관리들이 나치 선동이론가 조셉 괴벨스에 의해 주창된 바 “애국주의적 문구와 군사 퍼레이드”의 수법, 그리고 “큰 거짓말일수록 잘 먹힌다” 원칙을 조합한 콤보 세트를 끈덕지게 추종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무어 감독은 민주주의자적인 면과 선동가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에 대한 자신의 풍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마치 미디어 속의 호민관처럼 기능하고 있다.

만약 무어 감독이 어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면, 이는 그가 훌륭한 영화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도덕적 모욕감에 대한 분노에 조롱의 감정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 <화씨 9/11>은 이러한 분노가 부시와 그 일당에게 분출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과거 코미디언 다나 카비(<웨인즈 월드>에서 마이크 마이어스와 공동 주연-역주)가 조지 부시 1세를 백악관에서 축출하는 데 미국의 그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했음을 잊지 말자. 영화 <화씨 9/11> 속에는 무어가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그 아들을 백악관으로부터 축출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유발하기 위해 절박하게 매달리는 장면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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