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영화는 익숙한 블록버스터의 외형적 특성에 매우 충실하다. 적절한 고뇌와 시련을 거쳐 최고가 되는 주인공의 수련기, 모든 인과관계가 주인공의 삶과만 연결되는 주변 인물들의 형상화, 상당히 꼼꼼하게 재현된 시대적 배경, 화면의 중심을 철저하게 주인공에게 맞추는 촬영, 감정을 고양시키는 과장된 스코어의 사운드… 이 모든 요소들과 어울리며 최배달의 삶은 익숙한 영웅 서사 구조에 흡수되어간다. 잠깐, 사실 최배달은 방학기의 만화가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썩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이 이야기가 ‘낯익어’ 보이는 걸까? 이건 말 그대로 그가 만화적인 인물, 캐리커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신화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실화의 절절한 정서가 증발되어버린 것이다. 실존했던 ‘우리들의 영웅’의 최초의 영상적 초상화가 아더왕이나 아킬레스 같은 서구 영웅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인물을 더 가깝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가능성을 크게 약화시키고 만다.
영화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상적 민족주의도 그러하거니와 최배달과 주변 인물의 유기적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진행될수록 영화가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 최배달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무술 선생 범수는 비현실에 가까우리만치 맥없이 그려지고, 숙적 가토와 료마 역시 최배달이라는 당대의 마이너리티에 대비되는 인물로서 좀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부여받지 못하며 단순명료한 악역에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