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대장과 막내가 함께 쓴 ‘남극에서 온 편지’ [2] - 유지태
2004-08-25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저요, 아직 성장중이죠"

선배들과 앙상블 연기에 목마른 유지태가 보내는 편지

언제였더라. 돌풍에 맞서 강호 선배가 카메라쪽으로 다가서는 장면 촬영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날이었어요. 순간적으로 입술을 약간 삐죽이시던데. 야. 저거구나. 시나리오상에서 날 받아줄 곳은 이곳밖에 없다는 최도형 대장의 표정이 그대로 전해져왔어요. 나중에 강호 선배는 강풍기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일 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요. <남극일기>를 품에 넣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을 거예요. 선배 배우들에게 자극받고 또 그들과 앙상블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말이죠. 이번엔 강호 선배 말고도 박희순, 김경익, 윤제문, 최덕문 등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쟁쟁한 이력을 다진 선배들까지 모셔야 할 분들이 한두분이 아닙니다.

제 역할은 김민재. 실제 나이로도 그렇고, 극중 여섯대원 중에서도 막내입니다. <남극일기>에서야 원래 제 나이를 찾게 됐죠. 그래서 기뻐요. <올드보이>에서 저, 최민식 선배와 동갑이었잖아요. 올백한 머리의 40대 남자.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에서는 또 어떻구요. 퉁퉁한 유부남이었으니까. 민재는 탐험대원 중 가장 영혼이 맑고 희망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에요. 시나리오를 본 누군가는 다소 전형적인 인물 아니냐고 하는데, 거기에 동의하더라도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탈피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대개 블록버스터라 하면 배우들은 온데간데없고 CG만 난무하는 영화를 연상하는데, <남극일기>는 아니에요. 민재만 하더라도 후반부의 극심한 변화를 겪죠. 배우들이 가려지는 영화는 아니에요. 제 역할만 놓고보면 성장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도니까. 첫 촬영 때요? 음… 물론 힘들었죠. 발동이 걸리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고. 탐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민재가 크레바스에 빠지는 장면이었는데 첫 장면부터 액션이라 애먹었거든요. 후반부 촬영을 위해 헬기로 일부 스탭만 이동해서 찍는 마운트 가비 촬영분량이 남아 있는데 이게 저로선 숙제죠.

맏형인 강호 선배가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에요. 왜 자기 커리어가 생기고 스타덤에 오르면 어느 지점에서 다른 이들이 더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거부하거나 다가서지 못하도록 벽을 만들게 마련인데 그런 게 없어요. 오히려 선배가 편하게 다가서는 편이죠. 동료나 후배들에게 친근하다는 뜻만은 아니고. 선배님 하시는 거 유심히 보고 있으면 다른 배우들까지 이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요. 최도형처럼. 일종의 바운더리를 만들어주고 그 안으로 인도하는 거죠.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화법을 쓰는 것도 시원해서 좋고. 이 팀워크를 그대로 한국에 갖고서 돌아가야죠.

뉴질랜드는 몇번 드른 적이 있는 곳이라 낯설진 않아요. 공기가 맑으니까 숨쉬기도 편하고 한국도 이러면 좋겠다 싶죠. 사람들도 친절하고, 또 여러 인종이 섞여 살지만 차별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죠. 호주와 달리. 아, 누군가 저보고 지나치게 진지해서 문제라고 했다면서요. 감독인가요. 아니면 프로듀서인가요? 근데 아시잖아요. 저 원래 그런 부류인 거. 찌운 살을 빼기 위해서 촬영 시작하고 나서 술과 담배는 전혀 입에 안 대고 있어요. 헬스요? 여기 그런 데가 어딨어요. 저도 줄곧 걷고, 달리고 이래요. 도달불능점을 향한 민재의 여정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남극일기 다 쓰는 날까지 쭉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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