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구원을 묻는 살인 미스터리, <거미숲>
2004-08-31
글 : 김혜리
구원을 묻는 뫼비우스 띠 모양의 살인 미스터리

송일곤 감독의 전작 <꽃섬>의 여인은 꽃섬이 “모든 슬픔과 불행이 사라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거미숲>의 여인은 거미숲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곳”이라고 일러준다. 우리의 영혼이 가장 나중 지닌 것. 그것이 돌아가 거하는 장소를 송일곤 감독은 여전히 찾아 헤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 섬과 그 숲을, 실제의 장소가 아닌 머릿속에 존재하는 메타포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살인 미스터리를 표방한 <거미숲>에서 거미숲은 엄연히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꽃섬은 세 여인의 순례길 끝의 신기루 같은 공간이었으나, <거미숲>은 처음부터 끝까지 숲을 벗어나려는 또는 숲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며 그래서 영화는 내내 ‘숲속에’ 있다(이하 기사는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합니다).

“15분 안에 객석의 주의를 사로잡고 싶었다”는 송일곤 감독은 관객의 얼굴에 페인트를 끼얹듯 <거미숲>을 시작한다. 한 남자(감우성)가 숲속 집에 들어서면 거실에 난자당한 남자가 죽어 있고, 침실에는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여인(강경헌)이 낫과 함께 뒹굴고 있다. 다락을 연 남자는 정체 모를 사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를 뒤쫓다가 실신한다. 중상을 입고 14일 뒤 병원에서 깨어나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하는 그의 신원은 <심야 미스터리 극장>의 PD 강민. 숲속 두구의 시체는 강민의 애인 수영과 방송국 상사인 최 국장(조성하)이다. 강민의 오랜 친구인 최 형사(장현성)가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목격자 강민도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는다.

<거미숲>은 처음에는 ‘후더닛’(whodunit: 범인 찾기에 초점을 둔 스릴러)의 덫을 놓지만, 뒤로 갈수록 “누가?”보다는 “왜?”라는 물음에 무게를 싣는다. 실제로 감독은 혐의의 씨앗을 여기저기 뿌리는 교란 작전에 그닥 애쓰지 않는다. 사실 관객이 <거미숲>을 통과하며 건너야 할 함정은 나열된 용의자들의 얼굴이 아니라 시제와 성격이 다른 시퀀스들을 자국없이 이어붙인 구조다. <거미숲>에는 수사가 진행되는 현재와 살인이 벌어진 과거, 그리고 대과거와 대과거 속 설화까지 네켜의 시제가 흐른다. 게다가 이 시퀀스들의 속성도 균일하지 않아 실재, 회상, 환상, 그리고 실재와 환상의 혼합을 오간다. 그래서 <거미숲>은, 한발 떨어져서 보면 사실적이지만, 전체를 이룬 조각을 확인하고 나면 합성물임을 깨닫는 콜라주와 같다. <거미숲>의 형식적 모델은 우리가 꾸는 악몽이다. 나의 말이 너의 입을 빌려 나오고, 그의 추억이 그녀의 방에서 일어나는 혼미한 꿈. 한편 단편 시절부터 예외없이 조형미가 빼어난 영화를 만들어온 송일곤 감독과 <거미숲>의 미술팀은 순제작비 15억원의 빠듯한 살림 안에서 충분히 주제에 봉사하는 화면을 뽑아냈다. 영화의 시간은 안팎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 띠 모양으로 연속되지만,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조명으로 안과 밖을 극명히 구분한 <거미숲>의 공간은 무관심과 슬픔, 공백의 기호로 채워져 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철학적 결단에 의거해 노파에게 도끼를 휘둘렀다면, <거미숲>의 살인은 망각으로, 부정(denial)으로 억지로 봉인된 심리적 외상과 공포 때문에 일어난다. 송일곤 감독은 회피한 충격과 슬픔은 어디론가 흘러가지도 휘발되지도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너무 오랫동안 침묵해왔어”라고 누군가 속삭이자마자 죄악은 봉인을 뚫고 고름처럼 분출한다. 그러나 <거미숲>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모든 죄와 벌 너머의 구원일 것이다. 송일곤의 인물들은 늘 타인이나 자기를 살해할 상황에 처하지만 <간과 감자>에 용서가, <소풍>에 희망이, <꽃섬>에 치유가 있었듯 <거미숲>에도 구원은 있다. 그것은 기억을 통해 가능하다. 온전히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자유롭게 떠나보내는 것이기에, 상처받은 자들은, 에우리디케를 명부로 돌려보낸 오르페우스처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엄밀히 말해 <거미숲>은 장르의 게임이 아니라 장르적 접근법을 이용한 고전적 비극이다. 이 흥미롭고 빈틈없는 영화가 참신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장르 관습 때문이 아니라 거기 떠도는 키에슬로프스키와 타르코프스키, 데이비드 린치의 환영 때문일 것이다. 또, 여전히 관념과 보편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은 송일곤 감독의 테마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전설과 영원, 구원 같은 육중한 단어들을 소리내어 말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조건을- 그래서 결국 영혼과 구원을 다시-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가 점점 더 많이 기다려진다.

:: 송일곤 감독 인터뷰

“공포를 주체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싶었다”

칸에서 공개된 해외판은 8분이 더 길다. 차이는.

국내판에서 주로 걷어낸 부분은 상징들이다. 병원의 옆침대 할아버지가 강민에게 열쇠를 건네주고 이후 여정에서도 마주치면서 많은 역할을 한다. 선악과를 상징하는 사과를 갖고 아내가 보여주는 마임장면도 빠졌다. 장면의 호흡도 조금씩 빨라졌다.

<꽃섬>에 이어 1인2역을 썼는데.

유용한 표현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기존의 대상을 연상해서 대입하지 않나. 혼동을 줄 수도 있지만, 앞서 나온 인물의 이미지를 관객이 다시 끄집어내도록 자극한다는 면에서 재미있다.

강렬한 폭력묘사는 연기 흐름에 따른 것인가.

시나리오의 표현보다 더 세고 가깝게 찍혔다. 배우의 제안도 있었지만, <죄와 벌>의 살인이 그렇듯 어떤 경계를 넘어설 때 이성을 잃고 스스로 공포를 주체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싶기도 했다.

조연을 소개한다면.

황수영 역의 강경헌은 오디션에서 이미지가 맞아 선발했다. KBS 탤런트로 첫 영화다. 국장 역의 조성하 선배는 훌륭한 연극배우인데, “여건이 불비하면 노력을 배가하라” 같은 인상적 대사는 그분이 군대 시절 표어를 떠올려 제안한 것이다.

클래식한 사운드트랙을 썼는데.

미흡한 조건에서 윤민화 음악감독이 만족스런 결과를 냈다. 완전한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아닌 실내악단 규모였지만 오보에도 쓰고 악기 편성은 충분히 했다. 처음에는 베토벤의 <황제>도 생각했는데,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하나를 빼면 전부 창작곡을 썼다.

인물들이 자꾸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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