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고집과 도발의 직선, <거미숲>의 배우 강경헌
2004-09-03
글 : 김수경
사진 : 이혜정

<거미숲>의 황수영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눈빛을 동시에 가진 야누스다. 그녀는 주인공 강민에게 사랑을 받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를 갖는 여자다.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위한 보호막인 최 국장과 산장에서 벌이던 피학적이고 관능적인 성적 유희는 순식간에 죽음을 향한 급행열차로 돌변한다.

황수영을 연기하는 강경헌은 ‘도발적인 직선’이다. 1996년 KBS 공채 18기로 시작해 연기 8년차인 그녀는 “매니저 한명없이 개인 코디만 대동한 채 20여편의 단막극에 출연”할 만큼 바쁘게 뛰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뚜렷한 소기의 성과를 남기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자기 방식’을 너무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감성적인 부분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니까”라고 잘라 말하는 그가 일말의 패배감과 연기 인생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을 때 <거미숲>이 그녀를 호명했다. 송일곤 감독이 건네준 <디 아워스>를 보면서 자신이 첫손에 꼽는 배우 니콜 키드먼이 버지니아 울프 그 자체로 변화한 모습에 놀라서 재능과 더불어 ‘분석적인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고집도 세지만 판단이 서면 태도 변화도 빠르다는 게 직선적인 그의 장점이다. 첫 영화인 <거미숲>에서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대담한 두번의 정사신에 대해 묻자 “볼거리를 위한 소모품이 아니라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서운한 일이 없지도 않았다. 편집 과정에서 자신의 분량이 대거 잘려나갔다는 전언에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쇼크로 쓰러져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드라마 촬영스케줄도 꼬이고 그녀의 마음도 꼬였다. 재밌는 건 그럼에도 병원을 찾은 송 감독에게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단다. 속이 타들어가게 괴로웠지만 후회한다고 달라지진 않으니까. “송일곤 감독님이 다음 작품에 꼭 다시 일하자고 하셨어요”라고 웃으며 덧붙인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매우 화려하고 활달해 보이지만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 슬픈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를 보며 쓸쓸하게 아침을 맞는 영화 속 황수영의 모습처럼 말이다. 자기애가 강한 이 배우의 스크린 나들이가 늦었던 것은 그러한 내면과 외양의 갈등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압도하는 스크린 앞에서 브라운관에는 드러나지 않는 실수들이 속속들이 보여서 민망했다”는 스크린의 늦깎이 강경헌. 출발점에서 발을 내딛는 것이 다소 늦었지만 남들보다 빨리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헤어 메이크업 유지승 / 스타일리스트 한승희 / 의상협찬 게스, 보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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