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원을 추구하는 사랑의 이상향 <2046> [1]
2004-10-26
글 : 심영섭 (평론가)
황홀한 미장센, 탐미 끝의 허무

오랜 기다림 끝에 왕가위의 신작 <2046>이 개봉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왕가위 영화의 또 다른 정점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미완성 상태의 <2046>을 미리 봤던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내왔다. 더불어 부산영화제에서 간신히 이뤄진 왕가위와의 짧은 인터뷰를 덧붙인다. / 편집자

영화평론가 심영섭이 말하는 왕가위의 새로운 정점 <2046>

추억은 항상 눈물을 부른다. 왕가위에게 있어 시간이란, 기억이며, 미래가 될 과거의 잔여물이며, 유통기한이 줄어들고 있는 사랑의 다른 이름. 함께 있어도 함께하지 못하는 사랑의 불가능성은 천형의 수레바퀴로 주인공들 주변을 서서히 굴러가고, 시간은 재가 되어 부패되지 않는 추억의 통조림 속에 여전히 밀봉되어 남아 있다. 다 버려져도 남아 있는 진공 속의 기억들. <2046>은 바로 그 10%의 기억들로 이루어진, <아비정전>부터 <화양연화>의 그 모든 작은 10%가 모여 마침내 어지러운 콜라주 그림을 이루는 모자이크화와도 같은 영화이다. 그것은 왕가위 영화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한편의 오페라지만, 또한 2046이란 미래로 달려가는 왕가위의 영화 스타일이 새롭게 꽃을 피우는 개화 시기의 다른 이름처럼 들리기도 한다. ‘2046’년이 되면, 아마,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이름으로 딴 왕가위의 영화가 아름다웠노라고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버리지 못한 사랑처럼. 기억처럼. 2046 기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 알다시피 2046은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한 50년 되는 해이다. 꽤 의미있어 보이는 숫자지만, 영화에는 제목 외에도 꼬박꼬박 10시간 뒤, 100시간 뒤, 10달러, 100달러란 숫자들이 강박관념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 차우(양조위)는 옆방의 바이링(장쯔이)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10달러씩 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돈을 주고라도 나와 함께 밤을 보내겠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도박사 검은 장갑(공리)이 가르쳐주었듯이(칸 버전에는 이 장면이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랑에도 절대 100달러 이상 베팅하지 않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2046>은 바로 100달러 이상 배팅하지 않기로 해놓고서도 10시간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는 10달러만큼의 기억, 100시간이 지난 뒤에도 남겨졌던 사랑에 애태우는 영화이다. 그 탈주하지 못하는 시간의 오선지를 타고 2046에서 1과 0으로 이루어진 이 숫자들은 혹은 음표들은 마치 ‘나’와 ‘텅 빈 허무’로 이루어진 어떤 기호학의 끝없는 순열조합으로 세 여자와 세 옥타브를 넘어서 하나의 음계를 이루어낸다. 그러므로 2046의 또 다른 이름은 ‘ 탐미의 나르시시즘, 혹은 나는 어쩌다 고독이란 이름의 원자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언제나 왕가위의 영화들은 그 많은 스타들의 이름을 엔딩타이틀에 올리면서도 그들은 끝끝내 한 화면에 함께하지 못한다. 어쩌면 <아비정전>의 아비가 오래된 홍콩의 극장에서 문득 <2046>을 보았다면 장만옥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넌 나와 함께 있던 이 10%의 시간을, 1/10의 기억’을 버리지 못할 거라고.

심리적인 ‘거리두기’ - 반사와 귀환

<2046>의 남자들은 늘 여자들에게 ‘함께 떠나자’고 손을 내민다. 두 삶을 하나로 포개고 싶어하는 그 손은 번번이 빈손으로 이루어진 화살로 자신에게 되돌아오지만, 2046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 떠남과 만남의 어떤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물론 이 ‘사랑’과 ‘사이’의 변주곡이 왕가위에게 전혀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었다. 기억나는가? <해피 투게더>에서 아휘에게 있어 시간이 흘러가는 기준은 오직 보영의 존재의 유무였다는 것을. 기억나는가? <화양연화>에서 그 좁은 홍콩의 뒷골목과 빈 방들을 등 뒤에 두고 차우에게 수렌의 느린 발걸음만이 그가 지각하는 세계의 전부였다는 것을. 그러나 이번에 왕가위는 다르다. 그는 슬로모션의 도저한 속도 감각이나 스텝프린팅의 휘황한 이미지의 번짐을 넘어서서 미장센으로, 화면짜기의 아름다움과 편집의 파격으로 감독의 일을 이루어낸다. <화양연화>가 사람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그 느린 시간의 유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보여주었다면, <2046>의 모든 장면은 아주 가까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벌여놓을 것인가 하는 미학적 심리적인 ‘거리두기’의 과제로 모아진다. 아, 정말 왕가위는 보여주고 느끼게 만든다. 이를 위해 왕가위는 바로 코앞에 위치한 두 사람을 잡을 때도 늘 벽이, 커튼이 가로막혀 있게 만드는 ‘가려진’, ‘숨겨진’, ‘잊혀진’ 방식으로 화면을 활용한다. 1/2 미장센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나머지 반쪽 화면은 대개 연인이자 타인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 그토록 빈번히 등장하는 ‘반사’의 이미지들. 그것은 나르시시즘으로 채워진 공허한 고독의 성에 갇힌 왕가위의 주인공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그들은 정말 화면상에서도 1/10만큼만 얼굴을 겹치고 나머지는 혼자서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게다가 이 영화의 편집은 그 방향이 완전히 뒤집어져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데도 등을 지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누군가를 훔쳐보던 그들의 시선, 장진은 루루를 훔쳐보고 양조위는 장쯔이와 왕비를 훔쳐보지만, 종국에 가서는 상대가 아닌 정면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귀환으로 되돌아온다. 카메라가 거울이 될 때, 2046 기차의 유일한 승객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왕가위의 자기반복그리하여 2046 속의 왕가위는 되물어본다. ‘자신의 이미지만 있는 이 나르시시즘의 세상에서 그 성을 깨고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결혼식 서약 때의 질문보다 엄숙해 보이는 이 질문을 던지며, 그는 홍콩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 사이에 자신의 영화의 모든 장면들을 포개놓는다. 차우는 <아비정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빗으로 머리를 빗는 아비이며, 루루가 사랑했던 일찍 죽은 애인이며, 검은 장갑은 <화양연화>의 수렌처럼 슬퍼하고 장쯔이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이 그러했듯 곪아 있는 노란색을 지녔다. <해피 투게더>의 아휘와 보영처럼 택시 안에서 머리를 기댔던 차우와 바이링은 <화양연화>에서 차마 차우와 수렌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육체의 성찬을 포식하듯 즐긴다. <해피 투게더>에서 심장소리가 얼어붙는 것 같던 그 잊을 수 없는 프리즈 프레임, <해피 투게더>의 보영과 아휘가 스쳐 지나갔던 그 길을 차우와 바이링은 똑같은 프리즈 프레임으로 쿵쿵거리며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왕가위의 저 인장과도 같은 허공으로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의 속도 감각과 스텝프린팅의 흔적들! 대체 왕가위는 어쩌자고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이토록 집요하게 반복하려 드는가. 그 모든 회고담을 함께 뒤섞어 형체도 없이 경계도 없이 그는 이제 더이상 무엇을 하려 드는가. 차우의 1인칭 내레이션은 <동사서독>의 그것처럼 끝없는 플래시백으로 이어지고, 왕가위는 자신의 거의 모든 여자들을 총출동시켜야 하겠다는 듯, 피와 욕망의 붉은색을 닮은 여자 루루, 녹색과 하늘색의 정결한 여신(그에 걸맞은 오페라 노르마의 곡 <카스타 디바>를 부여받은) 왕징웬, 그리고 육체 그 자체와 같은 여자 노란색의 바이링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만든다. 예외가 있다면 <동사서독>의 임청하 정도. 아마 할 수 있다면 왕가위는 죽은 장국영도 되살리려 했을 것 같고, 심지어 장만옥조차 몇컷이지만 예외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는 붉은색 대신 푸른색으로 자신의 영화 제목을 덧입혔다. 그런 <2046>을 보면 화면 저편에서 죽은 장국영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과수나 앙코르와트에 가는 대신 미래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으며, 왕가위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보인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 점에서 <2046>은 <화양연화>의 속편이라기보다 왕가위란 이미지의 전도사가 추억하는 홍콩과 자기 자신에 대한 회고담이자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는 왕가위의 다짐처럼 보인다. 나는 다음 9번째 왕가위의 영화가 또 다른 시작, <타락천사>로 끝장을 본 것 같은 왕가위가 <해피 투게더>로 이 세상 끝에서 부활했듯이, 그가 또다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것 같다는 예감을 심장 깊숙한 곳에서 꺼내버리기가 힘들었다.

<아비정전>
<동서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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