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마초 마약규정 법률에 위헌법률 제청신청을 낸 배우 김부선
2004-10-27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이건 비겁하게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반성이다.”

애마(愛麻)부인 김부선과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연락을 시도한 지 3일째인 10월19일, 처음으로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개별 인터뷰는 싫다고 했다. 이날 오후, 그는 대마초를 마약으로 규정한 현행 법률에 대해 해당 법원에 위헌법률 제청신청을 냈고,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의 답변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굳이 그가 배우 인생을 걸고 왜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는지 알 순 없었다. 게다가 대마초 옹호는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이었다(김부선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이 소송을 맡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여론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고, 먼저 최근 출연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출연 분량이 많지 않다며 인터뷰는 다음에 하자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심경이 복잡하다고 했다. 끈질긴 전화 공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유재현씨의 칼럼 때문이었을까(<씨네21> 465호 ‘김부선은 죄가 없다’). 결국, 그는 편하게 저녁이나 먹자는 말을 우회적으로 했고, 기자는 그걸 인터뷰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무례를 범했다. 현장에서 또다시 설득이 필요했던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는 말문을 연 뒤에 국가와 언론과 여론에 호도당했던 그간의 상처를 가리지 않고 2시간 동안 남김없이 털어놨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편견과 폭력에 시달렸지만 그의 말은 거침없었고, 당당했다.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한 직후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대마초로 잡혀가도 누구든 판사가 가혹하게 (형을) 때리진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번에 낸 자료만 해도 굉장히 많으니까. 보면 알 거다. 대마초가 마약이 아니라는 걸. 잘한 일이구나, 사람다운 일을 했구나, 그랬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계기는 뭔가.

우선 김부선이 퇴폐범이라는, 폐인이라는 사회적인 모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 학교에서 아스피린 한알 먹어도 ‘너, 엑스터시 하냐’고 놀림받는 내 딸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동안 대마초로 인해 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아픔을 겪었을 문화예술인들의 팬으로서 대신 나선 것이기도 하다.

제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할 것인가.

한다. 혹시 대마초 전과자들 연락처를 알 수 있으면 좀 알려달라. 설득해서 같이 헌법소원 해야지. 물론 그들이 같이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갈 거다. 동참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진 않는다. 그 입장이 이해가 된다. 거절해야 하는 형편일 수 있으니까.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해할까봐 내쪽에서 말 건네기가 좀 두렵긴 하다.

전인권씨 같은 경우는 든든한 조력자 아닌가.

어제도 공연에 갔는데 또 나를 무대로 불러내시더라. 고기 먹고 나쁜 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풀 뜯어먹었다고 벌받은 사람 있다면서. 올라가서 욕만 하지 말고 관객에게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다. 한국에서 법이나 국가와 대항하는 건 목숨거는 일이라는 거 잘 알지만 응원군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장선우 감독님도 얼마 전 뵀는데, 대마초는 안 피우지만 내게 한표 주신다고 하더라. 앞으로 서명운동을 할 계획이 있다.

비난 여론이 많을 거라는 예상을 했을 텐데. 배우로서 망설임도 많았겠다.

친언니가 멍청하다고 그러더라. 왜 앞장서서 그러느냐고. 너만 피흘린다고. 조용히 2∼3년 있다 살금살금 재기하면 되는데 왜 바보처럼 그러냐고. 그런데 안 그러면 나보다 잘 나가는 스타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도 또 울면서 팬 여러분,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이걸로 끝날 것 같더라. 내 경우엔 숙명적으로 배우이고 싶은데 이제 그만 하라는 명령을 들은 것처럼 불쾌함도 들었고. 그렇다면 나 인간 김근희로 돌아가서 까놓고 누가 옳은지 한번 해보자. 밝은 세상 아래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한번 이 문제를 던져보자.

좋은 결과를 기대하나.

먼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죽어서, 전에 똘아이네, 뽕쟁이네 놀렸던 사람들이 ‘되게 미안하다, 그 아줌마 말이 맞잖아’ 하면서 내 비석에 꽃이라도 한 송이 가져다주면 되는 거지. 아니면 대마초 떨이라도 남겨주거나. 법정에서도 그랬다.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줄 때 대마초가 가장 좋은 벗이었다고. 어쩌겠어. 벗이라는데. 벗이 뭔데.

구속 이후 거센 비난을 접했을 때 상처가 컸을 텐데.

댓글들 올라온 거 보면 ‘니네 딸도 먹이지 그러느냐’고 한다. 마약 딜러상하고 결혼시키지 그러냐고들 한다. 해보지도 않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난 전과 달리 우리 아이들이 영리하고 우리 사회가 굉장히 성숙했다는 믿음이 있다. 확실한 건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라는 내 진실이고, 이번 제청은 그동안 비겁하고 나약하게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반성이다.

딸에게 대마초를 권할 자신이 정말 있나.

함께 <대마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딸은 나중에 외국 가면 같이 대마초 하자고 할 만큼 깨어 있다.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아프게 자란 아이지만 그늘없이 건강하다. 물론 술, 담배, 마약 안 하고 살면 그거 이상 없겠지. 그런데 험한 세상 아닌가. 뭔가에 의해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면 난 정말이지 중독성 강한 술, 담배를 권하느니 대마초를 권할 거다.

대마초가 연기에도 도움이 되나.

일단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심장병과 녹내장을 앓고 있는데 치료 효과가 좋다. 그래서 법원에다가 나만이라도 피우게 해달라고 했다. (웃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다. 음악하는 분 말씀이 우리는 도레미만 들리는데 대마초 도움을 얻으면 도와 레 사이의 백개의 음정이 다 들린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볼 때 간단한 지문이지만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오를 수 있겠지.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를 금한 것이 새마을운동 하면서 아닌가. 여유있게 즐기는 삶이 아니라 뭐든 빨리빨리 시켜야 하니까 그걸 못하게 한 거지. 난 이 일이 끝나면 조금 빠지고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논쟁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지금은 아무런 이야기도 없으니까 그게 답답한 거지.

대마초 파동을 여러차례 겪으면서 정치적인 견해도 분명해진 것 같다.

감방에 처음 갔던 게 1986년이다. 보석으로 나가기 전에 건대 사태로 인해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들을 만났을 때 부끄러웠다. 난 최고위층들과 어울려 히로뽕을 맞았을 때 이 친구들은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던 거다. 그 친구들에게 세뇌당해서 그런가. 이후에 민방위 훈련한다고 고개 숙이라 하면 왜 그래야 하냐고 같이 반항하다가 교도소장한테 이제는 시국사범까지 하려고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때 봤던 감방 친구들이 인터뷰 보고 연락 좀 했으면 좋겠다.

최근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포함해, 활동을 재개하는 상황에서 구속이 됐다.

보석으로 나와서 연기하는데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치겠더라. 이제 좀 (연기를) 알 것 같은데. 연기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홀로 돌아서 깨우친 건데. 더 힘든 세월도 견뎌냈는데 배우 하지 말자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의견을 같이하는 감독이 있지 않을까, 내 진심을 알고 출연 제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보석이 허락된 날, 곧바로 현장으로 갔다고 들었다.

감방에 보름 있었는데 목욕 한번 못하고 부랴부랴 갔다. 아들 역인 정우성한테 한탄과 욕설을 늘어놓는 장면이었는데 리딩까지 오케이받은 대로 했는데도 감독님이 그게 아니라고 하시더라. 새벽 2시가 돼서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라는데 잠이 오나. 나야 욕설을 많이 섞어서 써야 엄마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한 건데 아무래도 등급이나 그런 문제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동네 깡패들한테 녹음기 들려줘가면서 얻은 욕설을 연습한 건데 그게 없어지고, 깎이고 그러니까 서운했다. 영화는 감독 것이니까 이해하지만 서운해서 나중에 녹음실에서 후시할 때 감독님한테 그랬다. 재기를 이렇게 막아도 되느냐고.

1980년대 출연작들에서의 본인 연기에 대해선 자책이 심한 것 같다.

너무 못했어. 나야 돈 많이 준다고 해서 데뷔를 하긴 했는데 그땐 다 세워놓고 그냥 찍었다. 근데 언젠가 언니가 촬영현장에 와서 그러더라. 너 말타는 거 죽여. 근데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냐. <애마부인3> 찍을 때였는데 남편이 바람 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자동차 핸들을 붙잡고 흑흑대야 하는데 그거 보고도 언니가 ‘너 또 말타더라’ 그랬다니까.

올해 부산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전혀 안 쫄았다. 어떻게 옷 입으면 섹시할까 그것만 생각했다. 그때 입고 갔던 검은 드레스는 8년 전 딸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 가서 산 거다. 빵으로 끼니 때우면서도 너무 근사해 보여서 큰맘먹고 샀다. 언젠가 영화제 같은 곳에 간다면 필요할 것이다, 하고. 8년 됐는데도 예쁘지 않았나. 자비 들여 내려가서 이창동, 김기덕 감독님을 뵙게 됐고 이런저런 이야기 했는데 다음 영화에 날 과감하게 기용하겠다는 분이 아직 없네. (웃음)

영화제 개막식 때 이스트필름 명계남 대표와 동행했는데.

전에 <북회귀선>이라는 연극할 때 처음 뵈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같이 출연했다. 이후엔 못 뵙다가 출소한 지 1주일 만에 콘서트에 갔는데 내 앞자리에 계시기에 처음엔 인사해도 모르시거나 외면하실까봐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선배님’ 했더니, 선글라스를 올려쓰시곤 ‘어, 야 임마, 너 괜찮아’ 하시더라. 5층에서 투신해서 중상이라는 오보를 접하신 모양인데 반겨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 ‘그거 다 구라예요’ 하면서 인사했고, 전인권 선배도 명 선배 소개로 알게 됐다. 영화제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이후에도 대마초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한번 해보라고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하고 내가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도우미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차승재 대표도 그렇고, 영화인들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이번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 물론 다른 배우로 교체하면 제작비가 오버될 테니까 그랬겠지만. 차 대표하곤 한남동에서 살 때 이웃사촌이었다. 힘들 때는 서로 위로도 해주고 하면서 알게 된 사인데 그 이후 서로 돈독하게 의리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너무 거물이 되기도 했고. 후속 작품에 캐스팅해주면 인간성 좋다는 건 확실히 인정할 것 같은데.

영화는 많이 보나.

많이 챙겨보는 편이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도 봤다. 친하게 지냈던 작가 부인이 있는데 보러 가자고 해서 갔다. 그 언니는 손수건까지 준비해서 갔는데 정작 그 언니는 울지 않고 나만 울었다. 나와서 그 언니가 다 빨갱이 아니야 하는 거 보고나선 안 만난다. 빨갱이가 어딨어. 다 피해자들인데.

좀더 공부하고 싶은 게 있나.

기술적으로는 많이 모자란다. 카메라 워킹 같은 거 좀 배워야 하는데. 아직도 헤매거든. 본능적인 감으로만 하려니까 좀. 연기할때 정교하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모자람을 느낀다. 연극 한편 들어왔는데 비중이 큰데도 그거 뿌리치고 그냥 작은 배역의 영화를 할 계획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밑바닥 역할은 다 해봤고 좀 다른 걸 해보고 싶다. 강금실같이 세고 그러면서도 야리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거나. 아니면 속물 같은 권력층 여자들. 백수하면서 많이 봤고 관찰했고 또 아니까 잘할 것 같다. 드라마 <불새>에서 떡볶이집 아줌마에서 신분상승해서 재벌총수 부인으로 나왔는데 마지막 촬영하는 날 건물 청소하시는 분이 내게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시면서 즐겁게 봤다고 하더라. 정작 당사자들은 불쾌하겠지만 나눠줄 줄 모르는 거지들을 고발해서 95% 서민들이 즐거워하는 배역을 맡고 싶다.

연기를 그렇게 하고 싶나.

나서기 좋아하는 광대라서 그런가보다. 고등학교 때도 내 발랄함에 제주도가 떠나갔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이 음악 틀어놓으면 끼어서 나팔바지 입고 트위스트 추고 그랬다. 시선들에 상처받고, 또 시선들을 그리워하고. 아이러니다. 사람들이 싫어서 산에 다니면서도 거기서 만난 누군가와 몇 시간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보면 또 섭섭하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5분 안 되는 장면인데 내 단골들이자 올드팬들이 와서 그 영화에서 나만 보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니네들이 음란하니까 내 숨소리만 들렸던 거 아니냐고. (웃음) 그래도 그런 말 들을 때면 자부심이 생긴다. <오! 그레이스> 같은 영화는 꼭 우리나라에서도 제작됐으면 좋겠다. 대마초를 비롯해서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다른 영화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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