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젤리나 졸리가 말하는 나의 연기, 나의 삶
2004-11-11
글 : 신미나 (자유기고가)
“나는 무서운 게 없다”

베벌리힐스보다 더 부자동네로 알려진 벨에어.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한적한 골목을 타고 들어가 산중에 꼭꼭 숨어 있는 벨에어 호텔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만났다. 꽤나 비밀스러운 만남을 원했던 모양이다. 호텔 야외 레스토랑을 지나가는데 절로 주춤한다. 온통 백인들뿐이다. 중년의 백인들이 언뜻 보아도 고급 브랜드로 보이는 잘빠진 정장을 입고 한가로운 월요일 점심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고급스러운 세계가 안젤리나 졸리가 할리우드 스타로서 즐기는 일상의 사회일 것이다.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UNHCR) 친선대사로서, 자신이 직접 만든 캄보디아 발전 기금의 대표로서, 캄보디아, 중동, 아프리카의 오지를 여행하며 전쟁과 기아로 시름하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그녀는 언뜻 극단적인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칫 가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녀의 자선 행동들이 미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은 의식하지 않는 그녀의 당당함, 솔직함, 자유분방함, 강인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믿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장을 멈추게 할 만한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검은 옷에 긴 갈색 금발을 내려뜨리고 등장한 그녀는 순식간에 주위를 매료시켰다. 1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들의 치열한 질문 공세 속에 안젤리나 졸리는 사뭇 그 신비한 미소를 머금으며 11월 초 개봉하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새 영화 <알렉산더>에서의 역할과 자신의 삶, 이상에 관해 또박또박 밝혔다.

영화 <알렉산더>에 관하여

사실 그녀와 전설 속 알렉산더와의 인연은 <툼레이더>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툼레이더> 속편에서 졸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숨겨둔 보물인 판도라의 박스를 지키는 라라 크로프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번에는 그 신화 속 인물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올리버 스톤이 몇년을 벼른 끝에 마침내 현실화해낸 이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 이외에도 차세대 섹시스타로 급격히 부상 중인 알렉산더 역의 콜린 파렐, 아버지 역의 발 킬머, 장군 역의 앤서니 홉킨스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사랑에 빠졌다던데.

=처음에 시나리오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읽었다.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나는 스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많은 좋은 감독들이 있지만 올리버 스톤처럼 삶, 전쟁, 죽음을 이해하는 감독은 드물다. 그래서 그의 시나리오는 특별하다.

-이 역할이 현재의 당신을 반영한다고 느껴졌는가? 올림피아스는 이상한 여자다.

=이상하다고? (웃음) 올림피아스가 이상한 여자이긴 하다. 그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당시를 한번 생각해보라. 여자들이 권리도 없고 대접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도구로 여겨지던 시절. 당신이 첫 번째 부인인데 아들이 왕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서서히 지혜와 강인함으로 위기를 극복해간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와 그녀를 동일시할 수 있었다.

-현재 실제로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그렇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연기를 했을 것이다. 알렉산더가 내 앞에서 죽는 신을 찍을 때 아들 매독스를 떠올리니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른 방으로 건너가서 울고 말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올림피아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을까(심지어 남편까지).

=물론이다. 내가 그런 시절에 살았다면 누군가 나의 엄마, 나의 아들을 죽이겠다고 한다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에서든 어떤 처지에서든 만약 다른 누군가의 목숨이 위협받는 것을 본다면 (만약 남편이 아내를 패죽이려 한다고 예를 들면) 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덤벼들겠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이 여자이든 아이이든- 싸워야 한다면 강해져야만 한다. 물론 내가 폭력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같이 연기한 배우들에 관해서 이야기해달라(안젤리나 졸리는 아들 알렉산더 역 콜린 파렐과의 염문설에 휩싸였었다. 심지어는 감독 올리버 스톤과의 염문설까지).

=콜린은 한마디로 멋진 사람이다(great guy). 대단히 자유롭고 정열적이며 생기가 가득하며 감성적이다. 나 자신을 연상시킨다. 거칠고 예민하고. 나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촬영 중 콜린과 자지 않았다. (촬영 중에만 자지 않았다는 뜻?) 아, 아니, 물론 영화 촬영 이후에도 데이트하지 않았다. 발 킬머는 분노한 남편 역인데(웃음) 아주 전통적으로 연기를 배운 사람이다. 매우 진지한 배우이다. 그와는 아주 무거운 장면을 찍었다. 올리버는 나에게 아버지 같고 스승이자 상담자 같은 존재다(mentor). 올리버는 내게 세계 국제신문을 읽는 법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다. 몇년 만에 본 나에게 나이들어 보인다고 했는데 나의 이혼 등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이 나에게는 크나큰 찬사였다. 한마디로 우리 넷 모두는 미친 사람들이다. 논쟁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했다.

-알렉산더는 말하자면 서양의 동양 침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중에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에 현재의 이라크 전쟁에 관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올리버는 이 영화를 13년 전부터 준비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라크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서양이나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고 믿는다.

영화 혹은 영화 이외의 삶에 관하여

안젤리나 졸리에게 오스카와 세 번째 골든 글로브를 안겨준 <처음 만나는 자유>와 같은 예전 영화들에 비해 <비욘드 오더스> <테이킹 라이브스> 같은 그녀의 최근 작품들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통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최고 할리우드 스타 중 하나이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서는 안대를 한 비행 조종사로 출연했다. 아마도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영화를 찍지 않을 때는 비행사, 오지 탐험가, 재난 난민 구제 자선가로서 꽉 찬 인생을 사는 그녀. 여러 번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모험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사는 그녀에게 정말 두려운 것은 없는 것일까?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어떤 연기를 했을 때 결과에 따라서 가끔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이다. 평생 사람들에게 오해만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 연기하고 영화 찍는 걸 사랑하지만 평생 연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 노릇을 하거나 비행을 하거나 여행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연기를 그만둘 수는 있다. 나의 삶은 내가 연기한 어떤 역할보다도 더 충만하다.

-정말 연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그럼 무엇을 하겠나.

=엄마와 비행사가 되겠다. 난 내 전용 비행기가 있다. 난 비행을 사랑한다. 자격증도 가지고 있고. (위험하지 않은가?) 비행기 자체에 패라슈트가 달려 있다!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이 있는가.

=(한참 뜸을 들이고) 아, 정말 모르겠다. 아니 별로. 난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다.

-얼마 전에 모 잡지사에서 표범과 함께 찍은 사진을 봤다. 무섭지 않았나? 정말 겁나는 게 없나.

=아니 전혀. 난 무서운 게 없다.

-당신을 둘러싼 각종 가십, 인터뷰 기사들에 영향을 받는가.

=아니다. 난 기사를 읽지 않는다. 엄마에게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묻는다. 오해받아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난 그저 나이고 싶을 뿐이다.

-영화 이외에 요즘 들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게 꿈이다. 사막을 좋아한다. 1월에 답사 겸 방문 예정이다.

-당신은 상복이 많은 편이다. 오스카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난 오스카 트로피를 엄마에게 줘버렸다. 자선행사에 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안 됐다. 난 이런 역할을 꼭 해야지 하면서 배우들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로서 이런 일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하는 것들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또 다른 오스카상을 타느니 오지와 사막을 여행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난 영화 외에 또 다른 인생이 있다.

세계와 정치, 신념에 관하여

졸리는 내전에 휩싸인 캄보디아의 자연을 보호하는 환경운동단체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시민권까지 부여받았다.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UNHCR) 친선대사로서 150만달러의 돈을 기부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다른 할리우드 배우들로부터 그녀를 차별시키는지 확연한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케리가 아주 적합한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서든 부시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많이 잘못되어 있다. 지난해 여행할 때만 해도 3, 4년 전과 너무 달랐다. 사람들이 왜 너는 미국인인데 이런 곳(분쟁지역)에 왔냐고 묻더라. 마음이 아팠다. 미국 국민들이 이런 것들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캄보디아에서의 활동은 아들 때문 아닌가.

=나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에도 많은 돈을 기부했다. 그곳 아이들은 지뢰와 전쟁,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사치스러운 삶과 제3세계에 갔을 때 경험하는 가난한 생활,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사실은 그런 비판들이 다른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로 하여금 자선활동을 하는 데 망설이게 만든다. 나라면 그런 비판을 그냥 무시하고 말겠지만. 내가 고급스러운 삶을 산다는 걸 부인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내게 생긴 돈으로 (자선활동 같은) 다른 일들을 한다. 그게 옳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쟁지역 같은 곳에 가면 정말 위험한데 안전이 걱정되지 않나.

=가끔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여권을 빼앗길 뻔한 적도 있었고. 그러나 군사 접경 지역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경계선을 넘는 것을 보고 울컥한 적이 많다. 특히 남자들이 자기 가족을 지키지 못해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랑, 연애, 관계에 관하여

안젤리나 졸리는 2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피를 담아 목걸이로 걸고 다니는 등 스무살 차이가 나는 배우 빌리 밥 손튼과의 파행적인 애정행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입양한 3살짜리 아들 매독스를 가진 싱글 맘이다. 심각한 관계는 원치 않으면서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연애를 즐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녀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인가.

-왜 아들에게 매독스란 이름을 지었나.

=입양했을 때 캄보디안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에스닉(ethnic)한 이름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쿨하고 나이스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드니스’라고 부른다. (웃음)

-아들을 어딜 가든 데려가는데 데이트를 하는 데 방해되지 않나.

=아니 별로. 호텔에서 1, 2시간 정도 남자를 만난다. 현재 2명의 애인이 있다. (둘? 하나 갖고는 만족 못하나?) 셋인 적도 있는데. 난 2번이나 결혼해봤고 애인이 될 수도 있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별로 심각한 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 (모두 미국인인가?) 아니다.

-아들이 엄마가 유명한 배우인 것을 아는가.

=아니, 그냥 엄마가 가끔 바보 같은 옷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를 같이 봤는데 내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한테 착 달라붙는 것이 (큰 화면으로) 엄마를 보는 게 이상했나보다. <샤크>에서 저게 엄마 목소리라고 해도 믿지를 않았다. 엄마가 카툰이 된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전 남편 빌리 밥 손튼과의 관계는 어떤가? 손튼이 결혼 이후 곧 아이를 갖는다는데.

=지금은 우리 관계가 아주 좋다. 나는 빌리한테 결혼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 중 하나다. 그를 위해 기쁘게 생각한다. 서로를 위해 잘 헤어졌다. 영국에서 안 좋은 일 있을 때 그에게 처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젠 편하다.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은데.

=난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들은 섹시하다. 같이 자기도 한다. 여자니까 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않는가. 하지만 난 남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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