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종과 성과 문화에 거침없는 조롱을! <화이트 칙스>
2004-11-16
글 : 박은영
패러디의 달인 웨이언스 형제, 몸소 ‘백인 여성’이 되어, 인종과 성과 문화에 거침없는 조롱을 퍼붓다. 주제가 뭐냐고? 그냥 웃자고!

웨이언스 형제는 뻔뻔하다. <스크림>을 비롯해 그 무렵 히트한 호러, 스릴러, 액션물을 닥치는 대로 베끼고 비틀고 버무린 ‘잡탕’영화 <무서운 영화>는 무서운 게 아니라 황당하고 어이없게 웃기는 영화였다. 그 속편은 또 어떤가. 유령 나오는 집이 주인공인 <더 헌팅>을 패러디한 <무서운 영화2>는 전편보단 못했어도, ‘막가파 유머’의 소신을 충분히 피력했더랬다. 이번엔 더하다. 맏형 키넌 아이보리는 두 동생 숀과 말론을, 여성으로, 그것도 백인 여성으로 ‘둔갑’시키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들이 여장한 건 차마 못 보겠다고? 그러니까 ‘웃자’는 얘기다.

세트로 사고치는 FBI 요원 케빈(숀 웨이언스)과 마커스(말론 웨이언스)는 퇴출 위기에 몰리고, 납치 위협에 노출된 호텔 재벌가 자매의 경호를 자청하지만, 그들의 귀한 얼굴에 흠집을 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예정된 자선 파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그들을 대신해, 케빈과 마커스는 어마어마한 특수분장을 거쳐 그들 자매로 행세하기에 이른다. 이들에겐 납치극의 배후를 캐는 것보다 명품 쇼핑과 파티와 패션쇼 같은 백인 사교계의 문화에 적응하는 게 더 고역이다. 매 촬영 12시간 이상, 30kg의 화장품을 소비했다는 웨이언스 형제의 여장은 그 자체로 ‘장관’, 아니 ‘가관’이다. 기골이 장대한 두 흑인 청년이 하이힐과 보정 속옷에 몸을 구겨넣고 뒤뚱대는 ‘몸의 코미디’와 치한 퇴치 목적으로 구사하는 걸쭉한 ‘화장실 코미디’도 일품이다.

웨이언스 형제의 노선은 <화이트 칙스>에서 약간 바뀌어, 패러디의 대상을 기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찾았다. 호텔 재벌 윌슨 자매의 모델은 힐튼가의 상속녀인 니키와 패리스. 시골 생활을 ‘극과 극’ 체험처럼 그린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입방아에 오르고, 패션과 커리어와 사생활 등 모든 것이 동경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힐튼 자매는 아무 생각없고 못돼먹은 사교계 여왕들로 형상화됐다. 여장한 마커스에게 추파를 던지는 흑인 스포츠 스타의 ‘백인 미녀 밝힘증’은 O. J. 심슨을 겨냥한 화살로 보인다. 웨이언스 형제는 상류층 문화와 흑인 마초를 도마에 올렸고, 언제나처럼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당당히’ 무시한 채, 인종과 성에 대한 ‘독한’ 농담을 퍼붓고 있다. 온통 말이 안 되는 인물과 설정들이고, 웃고 넘기기에 불편한 장면도 있지만, 취향에 따라선 열광할 수도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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