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청춘은 아름답다고? 누가 그랬어
2004-11-26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추억·그리움과는 거리 먼 흑백영상

청년이라는 단어 뒤에 실업이나 신용불량 같은 단어가 짝패처럼 붙는 요즘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수익에 예민한 장사꾼 말고는 누구도 ‘세대’라는 말을 좀처럼 꺼내놓지 않는 이 때 청년세대를 ‘그들’도 아닌 일인칭,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기는 더욱 쉽지 않은 노릇이다.

신인 노동석(32) 감독이 보여주는 ‘나의 세대’(<마이 제너레이션>)는 흑백(화면)이다. 배경은 겨울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푸르름(靑)이나 봄날(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화면을 채우는 인물들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미디어가 내세우기 좋아하는 청년세대와 거리가 멀다. 이들은 무언가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무언가 하고 있기는 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요즘 애들’이다.

이십대 후반의 병석(김병석)은 옥탑방에서 자취하며 낮에는 웨딩 촬영을 하고 밤에는 고깃집의 불지피는 일을 한다. 핸드폰과 플레이스테이션, 소형차와 카드로 산 캠코더 등 병석의 일상을 둘러싼 물건들과 영화감독에의 꿈은 기성세대의 눈에 가당치 않다. 열심히 알바하며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고 살면 좋으련만 영상문화와 기계문명은 이들 세대의 삶과 꿈을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돼 버렸다. 병석의 여자친구 재경(유재경)은 사무실에서도 “너무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짤린 실업예비군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빚을 내 다단계 사업을 하는 인터넷 홈쇼핑에 뛰어들지만 사기만 당한다. 웨딩촬영에서 번번이 ‘아트’만 하다가 면박당하고 고깃집에서 사고가 나 잘리게 된 병석은 자신의 이름을 끌어다 빚을 낸 형의 짐까지 떠맡게 된다.

세상은 이들을 점점 더 구석에 내몰면서 끊임없이 ‘너네 왜 그렇게 사니?’라고 묻는다. 이들은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우린 아직 젊잖아”라고 광고 속 대사를 흉내내기에 이들의 젊음은 너무 빨리 시들어버렸다. 대신 재경은 생활고에 몰린 병석에게 “우리 딴 맘 먹지 말자. 착하게 살자”라고 말한다. 무기력하고 안쓰럽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아마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청춘영화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청춘’이라는 단어에 품고 싶어하는 환상을 영화는 냉혹할 만큼 지워버린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를 보는 건, 특히나 추억과 그리움으로 청춘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아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가 빠지기 쉬운 속도감이나 가벼운 트릭의 유혹에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리듬으로만 밀고 나가는 힘 또한 우직하다. 이 역시 상업영화의 속도감에 길들여졌던 관객에게는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영화는 흔들리지 않는 고집으로 자꾸만 피하려고 하는 관객의 눈길과 현실의 청춘을 대면시키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 제너레이션>에서 발견하는 건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감독의 재능과 함께 우리가 몰랐던, 또는 알면서 눈 감고 모른 척했던 한 세대의 존재다. <송환>에 이어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에서 배급하는 두번째 영화다. 12월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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