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나는 왕이로소이다, <알렉산더>의 콜린 파렐
2005-01-06
글 : 이종도

브래드 피트의 더블린판 짝퉁. 콜린 파렐은 그런 풍문 속에서 자랐다. 브래드 피트는 1990년대 초반에 어느새 성큼 자리를 잡고 견고하게 자신의 성채를 지키는 고귀한 성주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콜린 파렐은 뭘 해도 성마르고 조급한 이카루스처럼 보였다. 태양을 넘어서까지 날아오를 기세였다. 그러나 명문의 후예가 주는 믿음직스러움이 아니라 오직 자기 실력만으로 하늘을 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서투른 오기 같은 게 서른도 안 된 이 사내의 눈매에서 읽혔다.

<S.W.A.T 특수기동대>의 촉망받는 팀원일 때도, <리크루트>에서 MIT를 졸업한 총명한 CIA 스파이 요원 후보일 때도 부모가 뒤를 잘 받쳐주는 잘 자란 집안 자식이기보다는 시골에서 자수성가한 청년 냄새가 더 강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수사관 역할에서도 20대 초반에 고시를 패스한 사람 냄새가 났다. 거들먹거림과 자만심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겉옷 같았다. 오만방자한 홍보 에이전트로 나와 공중전화부스에 갇혀 꼼짝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을 때는(<폰 부스>) ‘그래도 싸지’,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물론 어디 브래드 피트 몸에 처음부터 귀족의 피가 흘렀던가.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가 경박한 불한당으로 나왔을 때 어디 그에게 배우의 품격이란 게 있었단 말인가. 최근 행보로 보면 콜린 파렐은 완전히 처음 데뷔 무렵의 ‘브래드 피트’ 선입견에서 가출, 독립 신고를 마친 것 같다. 그의 성장 속도는 창업 몇년 만에 상장을 한 벤처기업을 연상시킨다. <데어데블>에서 깨진 유리창을 이용해 신종 장풍을 날리던 그는 앞으로 비중있는 악역 정도를 맡아 활약하려니 하는 기대를 줬다. 그런데 상장이 뭔가 벌써 ‘대왕’의 자리에 등극하지 않았나.

콜린 파렐의 성공 요인은 영국 신문들이 지적하는 대로 노동계급 영웅 같은 이미지와 더불어 모호하고 복잡한 얼굴에 있다. 이 점이 브래드 피트와는 다른 독창성을 부여한다. 잠이 모자란 듯 늘 이마와 눈매를 찌푸리고(실제 불면증이 있다)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어 응석받이 느낌을 주지만, 넓은 이마와 짙은 눈썹이 그런 어린아이 같은 인상을 지워버린다. 기네스 맥주를 한손에 들고 입에선 늘 F로 시작되는 말풍선이 떠 있으며(인터뷰의 절반은 f***이다) 금연표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LA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워대는 불량소년 이미지지만, 한편으로 아들에게서 든든한 힘을 얻는 의젓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예쁜 아들이 있고, 이 아이와 함께 있는 한, 그리고 아이가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한, 나는 늘 잘해낼 수 있다.” 이런 모순된 얼굴이야말로 올리버 스톤 감독이 찾던 알렉산더 대왕의 얼굴이 아닐까. 바깥으로는 야심을, 안으로는 부모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는 얼굴 말이다. 올리버 스톤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콜린 파렐은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큰 걸로 한방 맞은 듯한 남성성의 소유자이자 놀라운 적응력의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운다.

콜린 파렐은 한 인터뷰(www.moviehole.net)에서 “<알렉산더>가 이제까지 작업 중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고갈시키는 영화였고 아주 깊은 철학과 정서와 고통을 요구했다. 내가 봤을 땐 정말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다. ‘알렉산더 대왕 납신다’류의 영화가 아니다.”

스물다섯에 벌써 <폰 부스>와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할리우드 대작에 출연한 그의 이력과 이십대에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의 운명이 전혀 동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더블린에서 영국 로 그리고 조엘 슈마허를 만나 미국으로 건너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데엔 5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의 왼쪽 팔뚝에는 두 가지 문신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현재를 살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십자가다.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잊지 않기 위해 몸에다 문장을 새겨놓았다니, 금방이라도 피를 뜨겁게 달구고 자리에서 뛰쳐일어날 것 같은 그의 인상과 잘 어울린다. 다음 영화는 은둔의 시네아스트 테렌스 맬릭과 함께하는 <뉴 월드>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수께끼 같고, 너무나 부끄러움을 타고, 매우 지적인 그러면서도 아이 같은 감독”과 말이다.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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