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의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 중반에 일본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은 태양을 향해 달려드는 허망한 반항이었다. <태양의 계절>로 문단에 데뷔한 이시와라 신타로는 ‘태양족’이라는 새로운 문학경향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태양족 영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태양족 영화 속의 무위한 젊은 군상은 전후 일본에 관한 세대적 무의식의 반영인 동시에,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과 같은 할리우드 주인공들에 대한 양식적 반응이었다. 그 흐름 중에서도, 닛카쓰 영화사는 태양족 영화의 대표적인 제작사였다. 다이에이 영화사에서 마스무라 야스조가 홀로 분투하고 있었다면, 닛카쓰에는 네명의 감독들이 있었는데 스즈키 세이준, 이마무라 쇼헤이, 가와시마 유조, 그리고 나머지 한명이 이번에 1월15일(토)에서 23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9일간 회고전이 열리는 ‘나카히라 고’다.
나카히라 고의 영화는 한편으로 스즈키 세이준의 도발적인 ‘양식파괴’와도 유사한 면이 있으며,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안에 펄떡이는 ‘동물성’에도 끈이 닿아 있다.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 어지러운 주제와 몽환적이면서도 코믹한 형식은 한편으로 태양족 영화의 일면이자, 나카히라 고의 영화를 대변하는 일반의 특징들이다. 태양족 경향에서 출발한 그의 영화는 닛카쓰의 다른 감독들이 그렇듯, 스타일에 대한 자유분방함을 유지하며 젊은이들의 혈기와 야쿠자의 총과 미녀의 욕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독특한 장으로 질러 나아간다.
12편의 상영작 중 <미친 과실>(1956)은 그의 데뷔작이며, 대표작이다. 태양족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이시와라 신타로의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에는 태양족의 스타이자, 이시와라 신타로의 친동생인 이시와라 유지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친 과실>은 트뤼포에게서 열정적인 찬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영화 평론가 도널드 리치는 이 영화가 조지 스티븐스의 <젊은이의 양지>에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의 모습이 사회적인 반영이면서도 영화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영화 속에서 두 형제는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동시에 좋아하게 되지만, 결국 형(이시하라 유지로)이 소녀를 차지하게 되고, 셋의 관계는 비극적인 파국으로 마감되고야 만다. 나카히라 고에 관한 입문작이 될 만하다. 반면, 요시무라 아키라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 <밀회>(1959)는 남편이 가르치는 제자와 밀회를 즐기던 어느 대학교수 부인이 택시 강도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점차 미스터리하면서도, 극한적인 상황으로 빠져드는 영화이다. 심리적인 표현에 능한 나카히라 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학생녀석과 아가씨들>(1960), <그 녀석과 나>(1961)는 경쾌하게 질주하는 청년 세대를 다루는 영화들이다. 야쿠자와 외교관의 딸이 계층의 차이를 딛고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진흙투성이의 순정>(1963)은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쳐 그 이듬해 <맨발의 청춘>으로 다시 만들어질 정도의 파급력을 갖춘 영화였다. 나카히라 고의 젊은 감각은 코미디에서도 발휘된다. 위조지폐범과 그를 둘러싼 코믹한 악당과 갱단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위험한 일은 돈이 된다>(1963)는 당대의 컬트작품으로 꼽히며, 일본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복습하는 뤼팽의 원형이 만들어진 영화로도 유명하다.
이 밖에도, 1964년에 만들어진 <모래 위의 식물군>은 도발적인 형식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의 대표작이다. 중년기의 세일즈맨이 소녀와 언니 사이에서 섹스 게임을 벌인다는 <모래 위의 식물군>은 이마무라 쇼헤이와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들과 비교하며 보기에 충분할 만큼, 원초성과 과장성으로 뭉쳐 있다. 이번 회고전은 <미친 과실>과 <우유배달부 프랑키>(1956)를 비롯해 5편의 영화를 새 프린트로 상영한다.
나카히라 고 회고전 中平康 回顧展 일정 : 2005년 1월15일(토)∼23일(일) | 9일간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주최 :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 :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문의 : 문화학교 서울 02-743-6003, 서울아트시네마 02-720-9782, www.cinematheque.seoul.kr 예매 : 맥스무비 www.maxmovie.com, 무비OK www.movieok.co.kr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