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에비에이터> 미리 보기 [3] - 마틴 스코시즈 인터뷰
2005-01-18
글 : 박은영
“매혹적인 시대, 매혹적인 사람의 얘기다”

마틴 스코시즈는 말이 빠르고 많다. 그 속도를 따라잡기도 쉽지 않고, 시시때때로 곁길로 새는 화제를 따라잡는 건 더 힘들다. 눈을 감고 들으면, <좋은 친구들> <카지노>에 나왔던 조 페시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 방법은 하나다. 말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하는 것. 어찌 보면, 그의 영화는 그의 이런 성향을 닮아 있다. 늘 뭔가 하고픈 말이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서, 빨리빨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비에이터>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보다 더 큰 삶을 살았다”지만, 하워드 휴스의 빛나던 시절, 그의 도전과 시행 착오와 승리와 좌절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스코시즈는 편안해 보였다.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에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듯한 자신감과 여유가 엿보였다.

=기본적인 질문. 하워드 휴스의 어떤 점에 이끌렸고, 그의 어떤 면을 보여주고자 했나.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캐릭터였다. 하워드 휴스의 비극적인 본성 때문이었다. 무엇이 하워드 휴스를 그렇게 만들었고, 어떻게 그는 곤경을 자주 극복해냈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영화에 뒤늦게 합류한 셈이다. 어떻게 결정하게 됐나.

-디카프리오와 나는 매니저가 같다. 마침 그때가 <갱스 오브 뉴욕>을 끝낼 무렵이었는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생각 중이었다. 그때 나는 예를 들어 <컬러 오브 머니> <케이프 피어> 심지어는 <쿤둔>처럼, 내 자신과 영화 만들기에 대해서 좀더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고 싶었다.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가 파이낸싱이 안 돼 고민하던 중에 <애비에이터>의 감독으로 고용됐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반해버렸다고 할까. 디카프리오가 이미 그 프로젝트에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고, 극본을 쓴 존 모건(<글래디에이터> <라스트 사무라이>)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졌다. 솔직히 날 처음 매료시킨 건 거대한 비행기였다. 미국 산업계의 거물이 거대한 비행기를 만들다는 것. 거기에 꽂혔다.

=존 모건의 시나리오가 어떤 점에서 뛰어났다고 생각하나.

-하워드 휴스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스터리와 사색적인 요소도 있다. 나 자신은 그 시절을 매우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워드 휴스가 만든 <스카페이스>와 <지옥의 천사들>처럼 사람들이 여전히 ‘굉장한 영화였지!’ 하고 떠들어대는 그런 영화들에 대한 기억도 있고. 젊은 하워드 휴스에게는 공상가적인 면모들이 있다. 180페이지가 넘는 모건의 스크립은 의외로 단 20년의 시간만 다룬다. 하지만 거기엔 휴스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분별력이 있다. 그의 비즈니스에 대한 것들과 개인적인 삶, 특히 여자들. (웃음).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과의 관계는 휴스가 변할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이런 것들이 내게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하워드 휴스가 캐서린 헵번을 도와준 일이 몇번 있는데, 존 모건은 그런 휴스의 감정이 진실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업가로서의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진실로 배려하는 것.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일들을 하지 않나.

=어떻게 <타이타닉>의 소년으로부터 하워드 휴스를 보았나.

-디카프리오가 휴스를 연기하는 건 매우 판타스틱했다. 휴스와 디카프리오, 두 사람에게는 비슷한 면이 있다. 하워드 휴스의 흑백 사진들을 보면, 젊고 키가 크고, 강한 성격이 드러나는데 디카프리오가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보면 매우 닮았다.

=영화인 하워드 휴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의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당시 사람들은 새뮤얼 골드윈이나 루이스 마이어 같은 거물들이 좌우하는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일했다. 하워드 휴스는 무법자 같은 프로듀서였다. 그는 스튜디오에 들어와 사람들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협박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위협하고 바꾸었다. 휴스가 만든 <지옥의 천사들>은 굉장한 영화다. 스토리는 구식이고 엉성하지만, 항공장면은 엄청났다. 지금도 그런 장면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튜디오는 비행기도 없고, 그런 출연자들을 구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안전에 대한 법률이 강하니까. <지옥의 천사들>을 만들면서도 하워드 휴스는 세명의 스탭을 잃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런 스릴을 원했다. 마치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휴스가 검열과 싸우는 대목은 남 얘기 같지 않았을 텐데.

-나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미국영화협회(MPAA)와 줄다리기를 했다. <택시 드라이버>와 <카지노>는 폭력장면이 문제였고, <비열한 거리>도 언어문제가 걸렸다. <좋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잘라야만 했던 것들 중에는, 조 페시가 사람을 열번 이상 난자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세번 정도 찌를 때부터 관객의 반응을 예견할 수 있다. “우아아아아아악.” (웃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이 자리를 뜨는 걸 원치 않으니까 편집할 때 스스로 많은 장면을 잘라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계속 영화들을 검열당해야 했다. 이제는 협회도 조금 너그러워진 것 같지만.

=요즘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지금 내 삶은 잘 정돈돼 있다. 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정리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뉴욕에 살고 있고, 내 방에 비디오 프로젝트 시설을 설치해두었다. 다섯살짜리 딸은 뭐든지 물어본다. “아빠. 왜 그렇게 시끄러워?” 그러면 나는 “지금 영화를 보고 있거든”이라고 말하고, “왜 그렇게 시끄럽게 전화로 떠들어?”라고 물어보면, “지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야”라고 말해준다. (웃음) 그러면 딸은 “그럼 와서 내 신발끈 좀 묶게 도와줘”라고 말한다. 가족은 지금 내게 매우 중요하다. 젊었을 때는 그런 식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그저 이미지들을 스크린에 펼치는 일밖에 없었지. 요즘은 말끔하게 복원된 30년대 영화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독서할 시간도 많고, 홀로 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 신경을 쓸 일들이 많이 생겨났다.

편집 권은주·디자인 김순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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