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하의 C&C]
[백은하의 애버뉴C] 6th street / 단지 오늘, 오늘을 위해 살겠어
2005-01-26
글·사진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그렇게 나의 뉴욕행은 대책 없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던 셈이다.

“넌 왜 뉴욕에 왔니?”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물어온다. 물론 언제라도 가볍게 받아 칠 수 있는 공식적인 대답은 수 천 가지다. “세계에서 제일 흥미로운 도시 아니겠어?” “언제라도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거든” “혹시 지하철에서 에단 호크를 만날지도 모르잖아” 사실 이 모든 대답들은 진실이다. 뉴욕이란 도시의 매력을 꼽자면 그렇게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곳으로 흘러오게 된 진짜 이유를 듣게 된다면, 조금 황당해 할지도 모르겠다.

동일한 사건을 겪은 후라도 사람에 따라 그 후유증이나 영향력은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21세기 전세계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고 간 사건은 아마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눈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던 ‘9.11’이 아니었을까. 이 사건을 겪은 후 <애니씽 엘스>에서 우디 알렌은 안전강박에 걸린 뉴욕의 풍경을 몸소 보여주었고, 마이클 무어는 또 하나의 센세이셔널한 다큐멘터리 <화씨 9.11>을 만들었으며, 부시는 전 미국을 테러에 대한 공포로 몰고가 재선에 승리했다. 어떤 이는 이 땅의 테러리즘을 뿌리 뽑아야겠다는 정의감에 불탔을 지도, 어떤 이는 파병으로 가는 길에 진달래꽃을 고이고이 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사건은 좀 어이없는 생각을 불러왔다. “이런, 나 역시 저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당장 이 순간이라도.”

몇 일 밤, TV 뉴스에서 그 붕괴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며, 이런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 건 참 민망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장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숟가락을 휘게 만들었던 유리 겔라의 초능력처럼, 뉴욕의 하늘에서 서울의 나에게로 TV를 통해 전달된 9.11의 진동은 꽤나 높은 데시벨로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동안 모아왔던 적금을 깼다. 생명보험을 중도해지 했다. 대신 그 돈으로 짬이 생기면 어디로든 여행을 떠났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오늘 더 넓은 세계와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은 체험을 안겨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도 후회를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아쉬워하며 죽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한 그 도시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곳에 가면 나의 이 불안과 정면으로 마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뉴욕행은 대책 없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던 셈이다.

어제는 서울에서 출장차 온 친구 덕에 2004년 토니상을 수상한 뮤지컬 <애비뉴Q>를 볼 기회가 생겼다. 맨하탄 동쪽 끝에 위치한 가상의 거리 ‘애비뉴Q’는 온갖 이민자들의 터전이자, 루저들의 집성지다. 주인공인 프린스톤이라는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푼 꿈을 안고 뉴욕으로 왔지만 곧 회사에서 짤리고, 수줍게 찾아온 사랑도 결혼이라는 공포를 넘지 못하고 방향을 잃는다.


그런 주인공의 머리 속에 ‘PURPOSE’, 즉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찾으라는 명제가 떨어진다. 그것은 어쩌면 플린스톤을 둘러싼 이 동네의 인간들, 가진 것이라고는 대학졸업장 밖에 없는, “아무 걱정 없었던 대학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같이 공부할 애들이 너무 어리잖아”고 철없이 울부짖는 고학력 루저들에게 떨어진 공통의 명제다. 대학을 졸업해도, 서른이 넘어도,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왜 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평생이 질풍노도요, 주변인에 머물러야 하는 젊은이들은 결국 대기업 취직이나 부자가 되겠다는 큰 꿈 대신, 동네 친구를 위해 작은 유치원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한다. 어차피 안정이나 보장된 미래 같은 것들이 불가능한 판타지라면 그 허망한 존재의 무게에 눌려 살기보다는, 오늘을 위해 살겠어!, 라고 노래 부른다.

이 발랄하고 희망적인 뮤지컬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하루살이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 치기 어린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님에 안도했다. 동지들을 만난 듯 즐거웠다. 누군가는 멀리 내다보지 않고 당장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철없는 젊은이라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을 살겠어” 라고 노래하던 그들처럼, 오늘만은, 이 시간만은, 아니 이 짧은 순간만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겠다. 그렇게 치열한 순간이 모이고, 시간이 모이고, 날이 모이고, 달이 모이면 어느 순간 내 인생 전체가 충실하게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대책 없는 판타지,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말해도, 이제 나는 이것이 내 삶의 최선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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