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 비즈킷의 노래처럼 파랗고 빨간 조명이 신호등처럼 번갈아 깜박이는 스튜디오. 로이 오비슨의 <You got it>이 잔잔히 울려퍼진다. 터지는 플래시와 카메라의 드라이브 소리 사이로 음악에 맞춰 가끔씩 엄지와 중지로 딱딱 소리를 내는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 로이 오비슨은 각별한 기억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In Dreams>를 흥얼거리던 <젊은 남자>의 이한. 그는 운전대를 잡노라면 언제나 오비슨처럼 검은 선글라스로 욕망의 얼굴을 가렸다. 결국 그는 비행기 사고로 죽은 오비슨을 따르듯 새벽의 하이웨이에서 노란 벤츠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파국을 맞이한다. 허무와 욕망이 공존하는 이한은 흡사 <태양의 가득히>의 리플리의 쌍둥이 동생 같다. 이.정.재. 시간당 1300원을 주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하루에 모델료 2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은인 하용수의 제안에 그는 이한처럼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뛰어든다. 1994년 <젊은 남자>를 신호탄으로 그는 스크린 위를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왔다. <태양은 없다>에서 뒤를 두리번거리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는 홍기처럼.
빼곡한 그의 필모그래피에 공란이 생긴 건 2004년이 처음이다. 1997년에서 2000년까지는 꼬박꼬박 두편씩, 이후에는 1년에 한편씩 칸트의 산책처럼 작업을 해나가던 이정재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지만 “나이가 드니까 작품 선택이 더 까다로워졌다. 눈만 높아져서”라고 농담하는 그는 <태풍>이 불어오길 1년 동안 기다렸다. 처음 예정된 <태풍>의 2004년 6월 크랭크인 계획은 많이 미루어졌다. “만약 내가 12시2분에 어떤 행동을 한다는 장면이라고 치자. 그러면 나는 12시1분과 12시3분에는 무슨 생각으로 뭘 하고 있을까 하는 부분을 준비”한다는 치밀한 이정재가 넋놓고 기우제나 지냈을 리 없다. 가까운 무술도장에서 특공훈련을 받고, 하강레펠을 비롯한 군사훈련을 포함한 몸을 만들어 액션을 대비하는 트레이닝에만 3개월을 투자했다. 선탠으로 검게 그을린 피부와 볼살이 많이 빠진 얼굴은 <태풍>의 남자들에게는 필수인가보다. 담배피우는 폼이 멋있다고 사진기자와 사람들이 감탄하자, “에이, 건달 같은데 뭘”이라고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욕망을 가진 도시청년이나 우울한 느낌의 섹시한 사내로 대중에게 각인된 그는 사실은 백재희보다는 이한에 가깝다. “비율로 따지면 57∼58%는 외향적이고 속에 뭘 담아두질 못하는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태풍>의 짝패이자 오래된 지우인 장동건에 대해 묻자 “그 친구는 스타죠, 스타. 나는 배우고”라며 환하게 웃는다. 두 사람은 7∼8년 전부터 같은 작품을 하려고 별러왔다고. 이정재의 이번 임무는 <태풍>의 해군장교 강세종. 아버지도 군인, 해군사관학교 50기인 세종은 군사무기를 탈취하고 한반도에 복수하려는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을 쫓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물론 실패하거나 노출되면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강세종은 군사만화의 백미로 꼽히는 <침묵의 함대>에서 잠수함으로 세계정부를 수립하려는 야심가 가이에다를 쫓던 불같은 원칙주의자였던 후카미치를 닮았다. 개인적 대가는 필요치 않다. 국가, 사회, 인간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해군장교. “원래 초기 시나리오에는 지금 모습이 아니었다. 나름의 욕망으로 사건에 뛰어드는 캐릭터였는데 오히려 심플한 캐릭터가 이제까지는 없었다는 생각을 곽 감독님이 했고, 나도 지금 색깔이 훨씬 맘에 든다”라고 캐릭터의 변화과정을 설명했다.
슬슬 의심이 생긴다. 정형화된 애국자, 투혼의 해군장교가 전부라면 굳이 이정재가 필요할까? 이정재와 장동건이 쫓고 쫓기는 그림이야 말 그대로 그림 같겠지만. “이분법적인 대결이 아닌 정반대로 살아온 두 사람이 쫓고 쫓기다가 서로에게 일정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관계다. 동년배이고 한민족이라는 기반이 있으니까”라고 귀띔해준다. 매번 액션이나 시대극에 도전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멜로물로만 사랑받은 게 다소 억울하지 않을까 싶었다. “못했으니까 그런 거다. 억울하지 않다. 영화는 정말 좋은데 연기가 좀 그렇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작품은 좀 그런데 연기는 정말 좋다라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다. 결국 내 탓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답하는 그의 모습은 중견감독들이 경험이 일천했던 그를 과감히 발탁하고 신뢰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배우들의 스승 최형인 선생에게 연기지도를 받으며 “오랫동안 조심스러워서 못 드러내던 색깔을 찾아야겠다고 느꼈다”는 그는 예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 조니 뎁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을 동경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내 색깔이 어떤지 드러내고 스스로 목격하고 싶다”고 말한다.
강산도 변하는 만 10년의 세월을 충무로에서 보낸 이정재는 그간의 프로덕션 환경 변화, 스탭들간의 의사소통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한류에 대해서 “한류에 동참하려면 드라마를 해야지. 노래나 춤을 하거나”라고 농담하다가도, “배우들의 외모와 감정에 호감을 느낀 것이 시작이겠지만, 그게 잘 전달되도록 비주얼과 감성을 만들어낸 스탭들의 공도 크다”라거나 합작 프로젝트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점에서, 그쪽에서 전작들을 보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제안한다면 모를까. 프로젝트성이라면 더 신중히 생각할 것”이라는 진지한 대답은 솔직함과 영리함이 동시에 배어 있다.
이정재는 <태풍> 촬영을 기점으로 인테리어를 비롯한 애정을 쏟던 다른 일들을 깨끗이 정리했다. “내가 이걸 잘할 수 있다는?? 전념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서” 내린 결단이란다. 앞으로 10년에 대해서도 “이제 시작이다. 10년간 못했던 거 다시 열심히 하며 연기에만 집중할 계획”이란다. 일상과는 판이하게 슛만 들어가면 카리스마 넘치게 변하는 곽경택 감독과 “이번에도 전쟁 치르듯이 신나게 찍겠다”고 공언했던 홍경표 촬영감독이 어우러져 30%가 진행된 <태풍> 현장은 이정재에게 어떤 도약대가 될 것인가? 타이의 햇빛을 머금은 것도 잠시, 한국에 머물다가 다시 북극해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날 그의 긴 여정을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