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최양일의 <피와 뼈> [2] - 최양일 감독 인터뷰
2005-02-28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최양일 감독에게 듣는 <피와 뼈> 그리고 그의 영화세계

“내 영화의 가장 큰 관심은 인간 자체다”

굳은 표정으로 직선주로를 달리는 단거리 주자 같은 인간 군상으로 필모그래피를 빽빽이 메워온 최양일 감독. 그의 신작 <피와 뼈>는 2004년 <마이니치> <닛칸스포츠> <키네마준보> 등 주요 영화제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대부분 휩쓸며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양석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써내려간 1500매가량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수정만 20여번. 6년간 준비하여 최양일이 건져올린 <피와 뼈>는 그의 비정한 인류학 보고서의 결정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하드보일드의 제1 명제를 <피와 뼈>는 빈틈없이 가혹하게 밀어붙인다.

눈 깜짝하지 않고 관객을 까무라치게 만드는 주인공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의 몸짓처럼. 그는 140분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화면에서 얼굴을 돌리게 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악행을 굳은 얼굴로 거리낌없이 퍼붓는다. 하지만 김준평이라는 인물이 자아내는 활화산 같은 에너지의 매혹적인 번득임 또한 쉽게 뿌리칠 수 없다. 21세기를 맞아 <형무소 안에서>와 <퀼>을 통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의 길에서 한 발짝 비켜났던 최양일은 다시 중무장한 긴장 상태로 돌아섰다. 그가 <피와 뼈>에서 기타노 다케시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통해 보여주는 본능과 욕망의 분출은 전작들의 비정함이나 감정의 순간적 폭발이 보여주던 감흥을 단숨에 확장시킨다. 지난 14일 <피와 뼈>의 홍보차 내한한 최양일을 15일 오후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말끔한 검은 슈트와 흰 와이셔츠 차림의 최양일이 말하는 열여덟 번째 영화 <피와 뼈> 그리고 자신의 영화세계.

- <피와 뼈>를 비롯한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은 철저히 개인으로 그려지는 느낌이다. 개인과 사회가 부딪칠 때 그것을 통해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경향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개인에 집중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당신의 영화는 생존본능이나 삶은 질주하는 것, 전투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감상적으로 굴지 않고 상승이건 추락이건 한 방향으로, 말 그대로 강력하게 삶을 몰아간다. 김준평도 그러하다.

=그렇다. 그런 관점은 비교적 내 영화를 정확히 보는 것이다. 모든 인물에는 물론 인간관계의 배경이나 사회적 분위기, 역사, 이데올로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그런 것들을 축소하고 인간 자체를 그려내는 것이 중심이다. 내 영화의 가장 큰 관심은 인간 자체다.

-<피와 뼈>에서도 당대의 사회적 사건들은 짧고 건조하게 처리된다. 사회적 배경을 탈각시키는 개인적 의도가 있는가.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의도를 다 이해한다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근본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인물도 존재의 불확실성을 갖기 때문에 그것을 영화 안에서 다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 인식하는 부분도, 인식하고 싶지 않지만 무의식중에 깨닫는 부분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준다. 사회성보다는 개인적 유대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나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뭐랄까,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먹은 대로 끝까지 살아가는 인물상이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매력적이다.

-당신이 2002년에 만든 하나와 가즈이치 원작의 <형무소 안에서>를 보면 재소자들이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을 보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의 데뷔작 <10층의 모기>에도 출연한 기타노 다케시가 다른 감독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거의 14년 만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타노 다케시는 <10층의 모기>에 출연했을 때 처음 알았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이에 그가 어떤 작품과 어떤 활동을 하는지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피와 뼈>와 김준평은 그가 거절했다면 시작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사람 다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장에서 충돌하지는 않았는가? (웃음)

=성격적으로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면이 있긴 하다. 무엇보다도 그와 나의 공통점은 싫어하는 것에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계에 둘 다 강력한 아군과 적이 많이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웃음)

-<피와 뼈>에서 연기지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궁금해 하는 관객과 독자들이 많다. 당신은 “기타노에게 김준평의 연기를 전적으로 위임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후 여러 지면에서 기타노는 “감독의 연출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기사들을 발견했다. 현장에서는 어느 쪽이 진실이었나.

=둘 다 진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고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한 해결은 둘 다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웃음) 기타노는 감독 입장에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상상력에 맡기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한 기반 위에 함께 작업해서 즐거웠다.

-준평의 아들 다케시(오다기리 조)가 집을 떠날 때나 하나코의 장례식 때의 난동장면은 당신의 액션 연출을 신나게 보여준다. 배우들은 고생했겠지만. 액션이 잔인하고 리얼하면서도 동시에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점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생각나게 한다. <피와 뼈>는 구로사와의 <주정뱅이 천사>나 <도데스카뎅>을 떠올리게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쓰바키산주로> <요짐보>는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때 봤다. <7인의 사무라이>는 어른이 돼서 봤지만. 굳이 구로사와가 아니더라도 1955년 당시에는 액션과 현실적인 인간관계를 연결짓는 영화들이 일본 영화사상 절정기였다. 영화는 원래 인간 몸에 남아 있는 기억이니까 아마도 구로사와 영화에 대한 기억도 내 몸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창작할 때 의도적으로 그의 미학에 접근한 적은 없다.

-<10층의 모기>에서 <피와 뼈>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정의신이 각본을 함께 쓴 작품이 많다. 비디오영화 <습격>의 공동각본으로 시작된 정의신과의 공동작업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헤이세이 무책임 일가> <개달리다> <부타노 무쿠이> <피와 뼈> 등 5편에 이른다. 그와 당신이 대본을 쓰거나 각색하는 작업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작업방식이 좀 달라졌을 따름이다. 10년 전까지는 정의신이 육필로 초고로 쓴다. 그뒤에 내가 그걸 검토하고 방향을 수정하거나 같이 논의했다. 지금은 정의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컴퓨터를 배워서(웃음) 둘이서 같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그때그때 논의하고 같이 작업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 한 작품의 목적과 방향에 동의하는 지점이다.

-11년 전 양석일 원작으로 당신이 만든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원래 와우와우(WOWOW) J무비즈의 일환으로 40분 분량 단편이었다. 극장개봉은 109분에 이르는 장편이었는데 어떻게 블로업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 과정은 블로업이 아니라 오히려 장·단편의 순서가 반대였다. 원래 1년 반 정도 각본작업을 거쳐 장편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J무비즈라는 시도가 있었고 내가 직접 와우와우쪽에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단편을 제안했다. 따라서 장·단편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기존 장편 시나리오를 단편으로 손질해 두편을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건 지금까지도 단편의 느낌이 더 좋았다고 연락하는 관객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형무소 안에서> <퀼> 등 최근작에서 당신의 필모그래피가 전보다 넓어지고 다양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계기가 무엇인가.

=40대 후반이 되면서 핀볼이 움직이듯이 영화에 대한 관심의 폭과 방향이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퀼>의 능동적인 관계, <형무소 안에서>의 정지된 시간처럼 잘하지 않던 테마와 감성을 시도하고 싶었다. 상황에 따라 성격이 다른 영화들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는 조용한 영화라고 변하지 않는다. 단지 테마와 내용이 바뀌는 것뿐. 뭐라고 할까, 일본 격언으로는 허리가 제자리에 붙어 있지 않는 상태 같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다. (웃음)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퀼>은 높은 국내 박스오피스와 함께 여러 국가로 수출되었다. 당신의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인가? 맹도견을 소재로 한 따뜻한 영화 <퀼>은 내용으로도 당신 영화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예전에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신에게 꾸준히 투자하는 제작자들에게 감사한다”는 표현과 달리 흥행에서도 성과를 내는 중이다.

=<퀼>이 30억엔이 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하고 미국에서 리메이크 제의가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에도 흥행에 성공할 영화를 만들 것을 메이저에서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와 뼈>를 봤으니 알겠지만 이 영화나 다음 작품은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아마도 나는 흥행에서는 상승과 하강을 끝없이 반복하는 (손으로 물결 모양을 그리면서)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피와 뼈>에서 여자들은 죽어가고 남자들은 폭력적으로 미쳐간다. 김준평을 제외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의 자장 안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그런데 그런 광포한 지배자가 마지막에 어린 아들 류이치를 데리고 북조선에 가서 생을 마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느닷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양석일의 소설에서도 김준평의 최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나 설명이 없다.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라스트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는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안식의 나날을 보내다가 죽어간다는 설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쓰고 보니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결말이었다. 고민 끝에 인생을 험하게 살았기 때문에 죽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황야 같고 혹독한 라스트신이다. 김준평은 죽지만 자신의 뼈인 류이치는 살아남아 그와 같은 험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결국 그는 희망을 버리고 혹독한 황야를 택한다. 내 추측만으로 보충설명을 한다면 김준평의 성격상 그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게 공짜다”라는 오해를 안고 간 게 아닐까 싶다. (웃음)

-<피와 뼈>의 김준평의 최후는 “억척스럽게 살다가 어이없게 죽는 것을 좋아한다”며 “실제 삶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당신의 과거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그러한 인생관은 삶에서 유효한 것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오래 살고 싶지 않다. 65살 정도까지 하고 싶은 작품을 하며 멋대로 살다가 갑자기 푹 쓰러져서 죽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