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 지상중계 [1] - 수상결과
2005-03-08
글 : 박혜명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의 인상적인 순간들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이 지난 2월27일 LA 코닥극장에서 열렸다. 전세계 대중이 주목하는 지상 최대의 쇼는 올해에도 여러 볼거리들을 장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릴 넘치는 대목은 지금까지 감독상 후보로 네 차례 지명돼 매번 고배를 마신 마틴 스코시즈가 다섯 번째 출전에서 과연 트로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에비에이터>는,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가운데 의상, 미술, 편집, 촬영 등 스탭들의 헌신적인 수공(手功)만을 크게 치하받음으로써 쇼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판정승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감독·주연을 겸하기도 한 이 영화는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트로피들을 시상식 후반에 몰아 가져가 극적으로 알짜란이 되었다. 새로운 사회자 크리스 록의 정신없는 오프닝 멘트로 시작해 4시간을 꽉꽉 채우던 전례를 거스르며 3시간15분 만에 끝난 제77회 아카데미시상식. 쇼의 화려함을 선포하는 레드 카펫 행사에서부터 숨죽일 만한 클라이맥스까지 몇개의 인상적인 순간들로 올해의 오스카를 정리한다.

On the red carpet # 스타 그리고 브랜드의 향연

<ABC> 아나운서 | (<사이드웨이>의 배우 버지니아 매드센을 붙잡고) 버지니아, 반가워요. 오늘 입은 푸른 드레스가 정말 인상적이군요. 어디 건가요?
버지니아 매드센 | 베르사체 거예요. 오늘 아침에 여러 가지를 입어보고 가장 편한 옷으로 골랐어요.
아나운서 | 그렇군요. 오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버지니아 매드센 |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영광이라 생각해요.
아나운서 | 행운이 있기를 빌게요. (헤어지는데 할리 베리가 지나간다) 할리, 오늘 드레스가 정말 아름다워요. 당신처럼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리 베리 | 이런 큰 시상식에 참여할 땐 많은 배우들이 유명 디자이너나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우선 자기 몸매가 어떤가를 잘 알아야 해요. (카메라, 이미 다른 곳을 비추기 시작하고) (O.L.) 그런 다음 자기 몸에 맞는 옷이 어떤 종류일지 생각해야죠.
아나운서(O.L.) |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할리베리

시상식은 극장 안에서 시작되지만 쇼는 붉은 길 위에서 막을 올린다. 어김없이 오스카는 본격적인 시상식 두 시간 반 전부터 코닥극장의 문을 열어놓고 게스트들을 맞이했다. 공식중계를 맡은 <ABC>는 간판 아나운서 세명에게 전문가 한 사람씩을 붙여 메인 보도팀만 셋을 꾸렸다. 동원된 전문가는 로저 에버트와 리처드 로에퍼, 그리고 랜돌프 듀크라는 패션계 전문가였다. 레드 카펫 행사 목적에도 부합하는 가장 ‘실속있는’ 역할을 한 보도팀은 당연히 듀크와 그의 여성 아나운서 파트너. 두 사람은 이날을 위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메이크업을 하고 협찬받은 보석과 드레스로 값비싸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배우들을 지켜보며 “저들이 진정한 ‘밀리언달러 베이비’들이죠”, “올해는 푸른색이 강세네요. 네이비 블루, 사파이어 블루, 라이트 블루, 그냥 블루…”와 같은 촌평을 주고받았다.

행사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를 배치받은 리처드 로에퍼는 사적 취향과 기대감을 섞어 이번 시상식에 대한 전망을 여유있게 늘어놓았고, 세명의 전문가 중 카메라 렌즈에 가장 인위적으로 반응하는 로저 에버트가 레드 카펫 옆을 지키며 주요 부문 수상 후보들과 다양한 종류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에버트는 “할리우드의 차세대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며칠 전에 길 건너편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었는데 누가 말하길 당신이 그곳 단골이라며 곧 머리를 자르러 오기로 했다더라고요.” “맞아요, 머릴 자를 때가 되긴 했어요.” “20달러면 잘라요.” “오, 잘됐네요! 세일 중이군요.”

Inside Shot #1 오스카 쇼의 비밀카드, 크리스 록

크리스 록 | 왜 할리우드는 스타도 없이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스타가 어디 있나요? 토비 맥과이어? 주드 로? 러셀 크로? 아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사람이 스타죠.
(장내, 박수가 터진다.)
크리스 록 | (목소리가 한톤 높아져서) 토비 맥과이어는 쫄쫄이바지만 입었지, 무슨 스타예요? (카메라, 커스틴 던스트를 클로즈업하고 나면) 주드 로는 누구죠? 왜 그 사람은 내가 지난 4년 동안 본 영화에 죄다 나온 거예요? 그 사람은 다 나와요! 그 사람이 안 나온 영화도 크레딧을 보면 컵케이크 만든 사람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을걸요! (중략)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이 오스카 후보에 하나도 오르지 못한 걸 알고 나서 자기가 왜 <슈퍼 사이즈 미>를 만들지 않았나 후회했을 거예요. (중략) 조지 부시는 경제가 흑자 예산으로 돌아선 다음에 대통령직을 맡아서 70조달러의 적자를 냈죠. (남아도는 돈으로) 전쟁을 시작했거든요. 만약에 갭(Gap: 미국의 유명의류사)도 예산이 넘쳐났었다면 바나나리퍼블릭(Banana Republic: 갭의 경쟁사)하고 전쟁을 벌이려고 했겠네요. 유독성 탱크톱을 팔았다면서. 근데 일단 바나나리퍼블릭은 탱크톱을 만들지 않았어요.
(장내, 아까보다 더 큰 박수.)


크리스 록

12년째 시상식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길 케이츠는 이번 행사가 “매우 새롭고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비주요 부문의 후보자들을 일제히 무대 위로 올리는 것과 함께 오스카의 변화를 꾀한 케이츠의 핵심 카드는 새로운 사회자 크리스 록이었다. 빌리 크리스털과 스티브 마틴, 자니 카슨과 밥 호프 등 오스카가 지금껏 아끼고 선호해온 사회자들이 쇼의 품위를 고려한 세련된 어법으로 신랄한 풍자와 조소를 다듬었다면, 그들의 계보에 입양아처럼 끼게 된 크리스 록은 시공을 분별하지 않는 험한 입담으로 유명했다. 케이츠는 이전보다 젊고 활기찬 이미지의 오스카와 시청률 상승을 기대했고, 행여라도 록이 방송에 부적절한 욕을 할까 걱정스러웠던 <ABC>는 온전한 생중계 대신 7초 늦은 중계를 결정하고 언제라도 쓸 수 있게 ‘삐’ 효과음을 준비했다.

식이 시작되고, 낯설지만 새로운 사회자가 등장하자 객석에서 긴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졌다. 들뜬 록은 야심차게 준비한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웃자고 주드 로를 깎아내리고, 불공평한 오스카를 찔러보자고 <화씨 9/11>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언급했다. 통쾌하게 받아쳐줄 만한 대목들이 분명 존재하면서도 지금까지 오스카가 지켜온 어떤 수위를 넘나드는 것 또한 분명했다. 사회자의 얼굴만 보고 쇼의 변화를 반가워하며 기립으로 환호했던 객석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퍼졌다. 주드 로에 대한 사회자의 멘트가 굉장히 거슬렸던지 여우주연상을 시상하러 나온 숀 펜이 매우 진지하게 “내가 유머감각은 별로 없지만, 크리스, 당신의 말에 대답을 좀 하자면, 주드 로는 최고의 배우 중 하나예요”라고 말해 장내를 더 서늘히 식히는 상황도 벌어졌다. 첫 번째 시상자 할리 베리를 “<캣우먼2>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배우”로, 단편영화상 시상자 제레미 아이언스를 “코미디 슈퍼스타”로 표현한 재치도 묻힐 수밖에 없었다.

시상식 도중, 록이 매직존슨 극장에 나가 보통의 흑인 관객에게 “<에비에이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을 봤느냐”고 묻고 “아니”라는 시큰둥한 대답을 얻어내는 인터뷰 클립이 공개됐다. 엄격한 예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아니면서 대중의 기호와도 거리가 먼 오스카의 애매한 위치를 간접적으로 꼬집는 이 클립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언론이 손을 들어줬다. <뉴욕타임스>는 “주드 로를 2류 배우로 부르면서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날린 공격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쇼가 신선해지고 엄숙함을 거스를 거란 기대가 5분도 못 갔다”고 크리스 록의 진행을 혹평하기도 했지만, 뒤집어보면 이것은 보수적인 오스카에 대한 록의 ‘불경함’(irreverence)을 스스로 인정한 제스처로 읽힐 수 있다. 로저 에버트는 <화씨 9/11>과 조지 부시에 관한 대목을 꼽으며 “오프닝 멘트에서 홈런을 쳤다”는 말로 새로운 사회자를 지지했다.

수상결과

최우수작품상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 <레이>

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왱크 <밀리언 달러 베이비>

남우조연상 모건 프리먼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란쳇 <에비에이터>

각본상 찰리 카우프만 <이터널 선샤인>

각색상 알렉산더 페인, 짐 테일러 <사이드웨이>

촬영상 로버트 리처드슨 <에비에이터>

편집상 델마 스쿤마커 <에비에이터>

미술상 단테 페레티, 프란체스카 로 쉬아보 <에비에이터>

의상디자인상 샌디 파월 <에비에이터>

분장상 밸리 오라일리, 빌 코르소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시각효과상 존 다익스트라, 스콧 스톡다이크 외 2명 <스파이더 맨2>

음향상 스콧 밀란, 그레그 올로프, 밥 비머, 스티브 칸타메 <레이>

음향편집상 마이클 실버스, 랜디 톰 <인크레더블>

작곡상 얀 A. P. 카치마레크 <네버랜드를 찾아서>

주제가상 호르헤 드렉슬레(<Al Otro Lado Del Rio>) <모터싸이클 다이어리>(i 위에 악상떼귀)

실사단편영화상 안드레아 아널드 <WASP>

장편애니메이션상 브래드 버드 <인크레더블>

단편애니메이션상 크리스 랜드리스 <라이언>

다큐멘터리상 로스 카우프만, 자나 브리스키 <본 인투 브로델스>(Born Into Brothels)

단편다큐멘터리상 로버트 허드슨, 바비 휴스턴 <위대한 시대 | 아이들의 행진>(Mighty Times | The Children’s March)

외국어영화상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바닷속으로>

평생공로상 시드니 루멧

진 허숄트 박애상 로저 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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