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드라마 <해신> 촬영장에서 먹고 잔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쉼없이 촬영이 이어지는 게 다반사다. 인터뷰가 있던 바로 전날도 20시간 가까이 민속촌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데도 피곤하다는 내색은 좀처럼 안 한다. “음… 저, 체력이 좋거든요.”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드라마 주촬영지인 전남 완도로 떠나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본인은 “투정부릴 시간 있으면 눈붙여야죠”라며 태연하게 답한다. 차에서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 그는 “<가족> 찍을 때도 드라마를 같이 했었거든요. 아마 그때부터 단련이 됐나봐요”라고 덧붙인다.
250만 관객을 울린 대가로 한꺼번에 안은 트로피가 ‘보약’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애는 지난해 연말 “서글픔과 당당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개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신인으로 뽑혔고 각종 영화상 신인상을 독차지했다. “시상식이 끝나면 촬영장으로 직행한 탓에 스탭들이나 가족들과 오붓하게 회식 한번 못했다”는 아쉬움으로 그때의 감격을 떠올리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도 곱씹을수록 단물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엄마가 지난해에 처음으로 상받을 때 모습을 녹화해둔 비디오 테이프를 슬쩍 꺼내시기에 창피해서 말렸다”는 그에게 첫 영화 <가족>은 지울 수 없는 원체험으로 남았다. “시사회장에서 처음 영화 보면서 ‘저게 나야? 나 맞아?’ 몇번을 물었는지 몰라요.”
도대체 <가족>은 수애에게 무엇을 던져준 것일까. “시나리오 리딩 딱 한번 하고 첫 촬영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첫날부터 쉽게쉽게 OK를 내시더라고요. 이래도 되나 싶어서 물었더니 ‘나 못 믿어요?’ 되물으셨어요. 주위에선 저보고 전과 3범 딸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고 다들 걱정하셨거든요. 주현 선생님도 처음엔 그러셨고.” 재촬영을 해야 했지만 노쇠한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잊지 못할 순간. ‘울지마요, 울지마요’ 하는 이정철 감독의 손짓에 따라 ‘감정을 삼키고 내뱉는 호흡법’을 익힐 수 있었다는 그는 이 고비를 넘으면서 “잘되겠지”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채울 뭔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연기학원을 다니며 무작정 독백 모음집을 외우던 시절에는 배울 수 없었고, 유년의 상처를 떠올려야만 1회용 눈물을 짜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스무살 무렵에 길거리 캐스팅이라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쪽 세계에 발을 딛게 된 수애. <가족>은 이정표를 보여주고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된 셈이다.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나의 결혼 원정기>는 그걸 발판 삼아 도전하는 영화다. 신부감을 찾기 위해 머나먼 우즈베키스탄까지 날아온 두 노총각을 가이드하는 연볜 처녀 라라가 그녀의 몫. “정재영 선배님이랑 꼭 같이 해보고 싶었거든요. 뭐라고 말할 순 없는데 풍기는 느낌이 달라 보였어요.” 평소 좋아하던 배우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앞서 그만큼의 부담도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북쪽 사투리를 구사해야 하는 역할이라 <해신> 촬영이 없는 날이면 전문가로부터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고. “아직 연습을 많이 못해서 걱정이에요. 어렸을 때는 곧잘 남들 흉내도 잘 내고 했던 것 같은데. 성격이 내성적이 되면서 다 사라져버렸어요” 며칠이라도 여유 시간이 나면 “미사리에 가서 아무 생각없이 음악 듣고 바람이나 쐬고 오고 싶다”는 것도 잠시. 졸음 쏟아지는 차 속에서도 “대본을 놓지 않는다”는 배우는 밀린 숙제 걱정을 늘어놓는다.
수애가 말하는 수애에 대한 3가지
카메라 | 포즈를 취하는 건 좀 민망해요. 창피하기도 하고. 긴 팔을,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매번 사진 촬영 때마다 ‘어떡해’를 연발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는 정해놓은 캐릭터가 있으니까 낫죠. 그때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사진 찍는 순간에는 다 보이던 것들이 안 보여요.
눈물 | 눈물이 남보다 많긴 해요. 근데 남 앞에선 잘 안 울어요. 혼자 숨어서 펑펑 울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강한 사람이 돼라고 해서 그런가 봐요. 초등학교 때 운동회하는 날이었나. 부채춤 추다가 실수해서 친구들 눈총받은 날이 있는데 그때 슬쩍 봤던 엄마의 눈이 아직도 안 잊혀져요. 어떤 느낌이라고 말하긴 뭐한데 그 이후로 그랬어요. 남들 우는 일엔 좀 멀뚱멀뚱한 편이고. 남들이 웃어넘기는 일에 그렇게 울어요.
목소리 | 초등학교 때부터 이랬어요. 그때는 어려서 같이 노느라 몰랐는데 중학교 갔더니 애들한테 놀림감이 됐죠. 그때도, 지금도 스스로 목소리는 좋다고 생각해요. 듣다보면 편안해지거든요. 처음 얼굴 내밀었을 때 얼굴은 다른 여배우들보다 떨어져도 목소리는 자신있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