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표지판이라도 붙어 있는 듯했다. 촬영장인 양수리 카페의 뒷숲에 스산하게 서 있는 나무 세트는 송일곤 감독의 신작 <마법사(들)>가 지각보다는 상상을 요하는 영화일 것이라고 미리 귀띔해준다. <마법사(들)>는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다. <마법사(들)>라는 제목은 나머지 두명의 삼인삼색 감독(<열대병>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철남>의 쓰카모토 신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Magician(s)’이라는 밴드의 이름이다.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로 활동했던 밴드는 매년 12월31일 강원도의 한 카페에 모여 자살한 밴드부원을 추모하는 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원신 원컷(!)으로 찍혀서 30분의 디지털 입자 속에 담길 예정이다.
원신원컷이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찍을 것인가. 수심이 가득한 표정의 기자에게 모자를 푹 눌러쓴 송일곤 감독은 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뛰어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나니 욕심이 커져서 30분짜리로 만들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80여분 정도의 또 다른 버전을 생각하고 있다.”영화는 애초보다 규모가 커졌고 욕심도 그만큼 늘었다. 이용주 PD는 “<마법사(들)>는 단 1회차 촬영에 1억5천만원이 소요될 예정이니 영화 사상 가장 비싼 영화가 될 것”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제작진은 전주영화제에서 지원받은 5천만원 이외에도 외부지원으로 1억원의 예산을 더 가져올 수 있었다). 송일곤 감독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로프> 같은 트릭도 없이 80여분을 원신 원컷으로 간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그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해낼 것인가. 최종 리허설이 시작되자 궁금증은 더해갔다.
하영(강경헌)을 기다리는 명수(장현성)와 재성(정웅인)이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자은(이승비)의 유령이 그들 주위를 꿈꾸는 표정으로 돌아다닌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재성과 그를 따르는 자은. 조명이 바뀌고 탱고 연주곡이 흘러나오자 현재는 과거가 된다. 자은과 재성의 격론이 벌어지고 연인은 서로를 상처입힌다. 다시 조명이 바뀌고 음악이 흐르며 재성과 자은은 현재로, 1층으로 내려온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그들 주위를 공기처럼 떠다닌다. 카페 바깥으로 나가는 명수. 눈쌓인 숲에서 명수는 과거의 하영을 만나고, 재성은 과거의 자은을 만난다.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것은 바뀌는 조명과 휴고 디아즈의 탱고 하모니카 연주곡이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자은이 옷을 뒤집어입자 옥색의 코트를 걸친 자은의 유령이 된다. 조명과 음악과 양면으로 만들어진 코트. 이것만으로 송일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려 한다.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처럼 지나치게 현학적이지는 않은, 마치 한편의 연극을 하나의 숏으로 찍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이를테면 ‘시간을 조각한다’는 의미다.“
마법 같은 순간을 담을 <마법사(들)>는 전주영화제에서 그 비밀을 조심스레 열게 된다. 그런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마지막 질문이 있었다. 30분과 80분. 두개의 버전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촬영은 1회차로 끝이 난다니. 두 버전을 모두 원신 원컷으로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송일곤 감독의 마지막 대답은 야속했다. “그건 절대로 가르쳐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