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 한국영화 투자·배급 지형도 [1]
2005-03-16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천하통일인가? 춘추전국인가?

마라톤으로 치면 2005년은 한국영화 투자배급의 반환점이다. 결승점을 향해 숨막히는 레이스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페이스를 조절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휴식을 취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한국영화는 서 있다. 중견 투자배급사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의 “2005년이야말로 쇼이스트가 도약할지 물러날지 확연히 결정될 시기”라는 출사표는 충무로 전체로 소급해도 큰 무리없는 전망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벤처캐피털 및 코스닥 시장의 활황과 <쉬리>를 필두로 한 한국영화 흥행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펀드들이 대거 만료되는 2005년은 새로운 자본의 안정적인 수급이 관건이 될 한 해일 것이다. 2000년 12월부터 2001년 말까지 1년 동안 조성된 펀드 규모는 1978억원에 달한다. 영화산업에서 역사와 구조는 반복되기 쉽다. 특히 그 무대가 충무로라면. 새로운 자본의 조달 양상과 경로에 따라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인과론은 충무로 자본, 비디오 판권으로 시작한 대기업의 충무로 러시, 벤처캐피털의 금융자본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산업화한 한국 영화자본의 중대한 궤적들에 의해 이미 충분히 학습된 바 있다.

CJ의 독주인가, 오리온의 추격인가

CJ
<역도산>

CJ가 <역도산>의 흥행부진과 <그때 그 사람들>의 배급 포기로 주춤하는 사이, 쇼박스는 <말아톤>으로 연초부터 무섭게 기세를 올리며 내달렸다. 영화사업의 경험, 자본의 규모, 극장라인의 크기로 인해 대등한 경쟁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던 두 기업의 경주는 봄을 앞둔 현재로서는 백중지세이다. 2005년 말로 예정된 메가박스의 상장이 이루어지면 증권가에서도 양자 경쟁구도가 좀더 선명해질 터.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에서 선도기업을 표방하는 CJ가 유일하게 뒤지는 오리온과의 케이블 시장 경쟁에서 손쉽게 우위를 뺏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오리온의 초코파이를 연상시키는 끈기있고 신중한 브랜드 발굴과 관리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보인다. 프리머스 인수라는 대사건 이후 충무로의 ‘천하인’으로 부상한 CJ와 지난해 배급 작품 편수의 현격한 차에도 불구하고 드림웍스의 외화파트가 동원한 관객을 배제하면 CJ와 거의 비슷한 성과를 거두며 괄목상대하는 주체로 성장한 쇼박스의 지속적인 격돌은 불가피하다. 시네마서비스가 수직계열화의 대오에서 이탈했고, 당분간 쉽게 나서지 않을 롯데를 감안한다면 양사가 주축이 되는 구도가 한국영화 투자배급 시장의 주가 될 것이다. 쇼박스 정태성 영화사업본부장은 “지난해가 한국 영화시장에 쇼박스가 안착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메이저라는 주위의 호칭에 걸맞게 내적 인프라를 다지는 작업에 집중할 것”이라며 규모보다는 내실을 택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CJ, 싸이더스·봄·LJ와 제휴 ‘파워 업’

쇼박스
<말아톤>

그러나 2005년의 전반적 양상은 다르다. 올해 영화 투자·배급 시장에서의 두 기업간의 경쟁은 CJ의 우위가 대세로 점쳐진다. 싸이더스, 영화사 봄, LJ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CJ의 우호적인 제작사 네트워크(일명 퍼스트룩 계약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2004년은 싸이더스의 작품이 양사에 양분되었고 이를 통해 쇼박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점(대표적으로 <늑대의 유혹>)과 LJ의 월드마켓 프로젝트나 영화사 봄의 <달콤한 인생>, 모호필름의 <친절한 금자씨> 등을 변수로 놓으면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월드마켓 프로젝트를 CJ와 진행하는 LJ필름의 이승재 대표는 “한국영화가 장기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상호간에 형성된 점”을 계약의 계기로 제시했다. CJ의 드림웍스 계약에 관여했고 20년 동안 미국에서 네트워크를 쌓은 이미경 부회장이 친정 체제를 선포하듯이 경영일선에 뛰어든 점이 핵심이다. 이후 즉각적으로 발표된 월드마켓 프로젝트는 해외시장에 대한 CJ 비즈니스 전략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개봉대기 중인 <남극일기> <천군>을 끝으로 쇼박스에 공급되는 싸이더스 작품은 줄어들 움직임이다. 차승재 대표와 함께 싸이더스의 양날개였던 노종윤 이사가 노비스라는 신생 투자·제작사를 설립하고 독립한 것도 싸이더스와 CJ의 밀월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CJ가 공동제작사로 이름을 올리는 <태풍>과 직접 제작할 것으로 알려진 <마녀 김추자>의 등장도 예고되는 중. 악재가 될 만한 변수는 CJ의 우호적 파트너였던 MKB가 <그때 그 사람들> 이후 독자적인 투자배급 체계를 갖출 가능성이 돌출되었다는 점. MKB는 <안녕, 형아>의 성공적인 인터넷 공모에 이어 51억원 규모의 자체 뮤추얼펀드를 꾸리고 배급파트너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J의 수직계열화가 가속화되면, 제작자본을 구성하는 자본시장에서도 메이저의 영향력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아직 펀드에 의존하는 비율이 적지 않지만 메이저들의 적극적인 투자는 펀드에 대한 제작사들의 자본 의존비율을 예전보다 많이 낮춰놓은 상태. 실제로 메이저가 펀드 구성의 주요 성원으로 참여하고 영화의 투자·제작·배급·상영에 이르는 산업의 전 단계를 관할하는 수직계열화의 실질적 도래는 투자배급이 과거의 금융자본에서 메이저 중심으로 귀환했다는 뜻이다. 펀드에 의존하기보다는 펀드를 장악하는 영화산업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대기업에 근거한 충무로 메이저가 엔터테인먼트 펀드의 자금을 융통하는 것은 투자자금 조달 차원보다는 투자리스크 분산 측면이 더 크다. CJ가 밝힌 올해 작품 수는 30편 내외. 쇼박스가 올해 배급하는 20여편의 숫자를 감안하면 영화 배급시장은 물량으로는 양강보다는 사실 1강1중 체제에 가깝다. CJ의 충무로 천하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배경에는 전술한 제작사와의 퍼스트룩뿐만 아니라 후속조처로 감독과 배우들과도 퍼스트룩에 가까운 관계 혹은 계약을 형성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10년 부동의 강자 시네마서비스는?

<공공의 적 2>

2004년 여름에 벌어진 CJ의 프리머스 시네마 인수건은 단순히 CJ가 극장업계의 1인자를 공고히 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10년간 한국영화 투자·배급에서 부동의 강자로 군림하던 시네마서비스는 향후 작품 투자와 개발에 제동이 걸렸고, 이것은 기존 충무로 메이저 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대사건이었다. 한편 CJ는 플레너스, 프리머스 시네마건을 해결함으로써 전방위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얼개를 완성했다. <공공의 적2>로 일단 한고비를 넘긴 시네마서비스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려는 중이다. 강우석 감독은 프로덕션에 전념하고 김인수 부사장이 투자기획팀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박영목 상무와 함께 관리한다. 이는 외부에서 강우석 감독 1인의 의사결정 구조 혹은 패밀리 개념의 비즈니스라는 회사에 대한 시각을 일신하기 위해서다. 김 부사장은 “시네마서비스는 결국 만드는 쪽으로 가는 거다. 기존의 네트워크 외에 새로운 사람 혹은 프로덕션의 창구 역할이 될 것”이라고 조직개편의 취지를 설명했다. 덧붙여 “한국 영화시장 전체로 보면 올해 라인업은 지난해에 밀린 대작들이 스케줄에 대거 남아 있는 것이 변수”라고 지적했다. 결국 위로 갈 것인가 아래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들의 성적표 혹은 견적서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네마서비스가 투자배급의 강자로 귀환할지 중견으로 물러설지는 전체 산업에도 주요한 화두다.

수면 밑의 메이저 롯데, 언제 부상하나?

불투명한 라인업이 최대 과제

“적극적으로 들어오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면 밑의 메이저, 지역 극장업계의 맹주로 군림한 지 어언 3년이 넘은 롯데. 그러나 롯데가 영화산업에서 시원하게 영역을 넓힌다는 소식은 아직도 요원하다. 달리 말하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기존 제작사들이 기획료, 경상비를 더 주겠다는 조건에 움직이질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나 배우도 마찬가지. CJ나 쇼박스의 퍼스트룩에는 해외 세일즈, 극장 배급력 등 복합적 요소가 맞물려 있다. 그들이 이를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롯데의 현 상황은 충무로에서 흔히 쓰는 “돈 없으면 절대 안 되지만, 돈만으로도 절대 안 된다”라는 업계의 속설을 상기시킨다. 마이너도 1년에 10편 정도는 수급해야 극장부킹이 원활한 충무로의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의 불투명한 라인업으로는 롯데가 영화산업의 일정한 시장점유율를 넘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2003년 12월 자체 1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 지난해 말 아이벤처, KTB-엔터원이 결성한 펀드에 적극적인 조합원 참여 등 아직까진 개별 작품에 대한 투자보다 펀드를 통한 투자가 눈에 띈다. 한편 “개별 작품 수의 증대만을 근거로 하긴 어렵다”며 “원래 시장진입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현재 메이저들의 시장진입 시기를 고려해도 롯데가 느리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신중론을 펴는 관계자도 있다. “극장을 가진 한 롯데가 충무로 메이저로 진입할 것”이라는 오랜 가설이 여전한 가운데 올해 롯데의 상반기 라인업은 <B형 남자친구> 이후로 한국영화는 더이상 없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후 외화도 뚜렷하지 않다. 하반기에도 많아야 5편 내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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