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 한국영화 투자·배급 지형도 [2]
2005-03-16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영화산업의 미드필더, 중견 투자·배급사의 행보는?

<극장전>
<주먹이 운다>

수직계열화의 깃발 아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메이저, 자본으로 정글을 이룬 메이저의 반대편에는 충무로에서 발로 뛰며 오랫동안 쌓은 인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중견 투자·배급사들이 있다. 그곳의 대표와 헤드급 책임자들은 하루종일 본업인 영화 투자와 제작에 대한 고민보다는 10시간 중 8시간을 투자자들을 설득하느라 정신이 없다. 초조하게 당일 개별 프로젝트의 제작비를 보내고, 로열티를 외국으로 송금하는 긴장된 일상이 계속된다. 한국 영화산업의 미드필더, 중견 투자·배급사들(이하 마이너)은 2005년 한국영화 투자·배급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대다수는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CJ의 움직임을 근거로 CJ 중심의 양강 체제가 정착될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추세가 계속되면 중견 투자·배급사의 입지가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마이너도 생존전략을 모색할 것이고, 그것이 투자·배급의 새로운 향방을 제시할 열쇠일 수도 있다. 지난 2월2일 SK텔레콤(이하 SKT)이 싸이더스HQ의 지분 21%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투자한 케이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하나의 묘수풀이다. 2대 주주로 등극한 SKT쪽은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으며, 모바일 콘텐츠 확보와 신규 비즈니스 모델 검토를 위한 전략적 제휴”라고 언급했다. 이 사례를 한국영화 투자·배급 상황에 대비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메이저 중심의 영화산업 지형도가 단단해질수록 중견 투자·배급사들은 다른 방식의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는 점. 특히 영화산업에 어떤 방식으로든 신규진입을 원하는 파트너가 존재한다면 청어람 최용배 대표의 지적처럼 “신규 파트너들은 기왕이면 경험있는 쪽을 통해 진입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 마이너나 제작사가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시장의 캐스팅보트로 작용할 수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
<형사>

최용배 대표는 “업계 리더가 수위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환영할 일, 그러나 시장이 왜곡·편향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청어람은 아직 그런 방식의 대응책은 생각하지 않는다. <극장전> <작업의 정석> 등 준비된 10여편을 “순리대로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외출> 외에 <주먹이 운다> <댄서의 순정> 등의 한국영화 7편, <무극> <신시티> <그림형제> 등 외화도 8편, 확정된 것만 15편에 이르는 라인업의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는 “개별 작품들을 추스르느라 다른 데는 눈돌릴 틈도 없다”며 내부 라인업 관리 외에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영화산업은 속성 자체가 유통과 콘텐츠로 나뉠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특정 배급사가 2년 연속으로 1등하며 독주한 선례는 없다”라고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는 현 상황에 대해 변화의 가능성을 점쳤다. 튜브엔터테인먼트는 3월3일자로 엔바이오텍에 100% 지분인수되었고, 올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필두로 외화와 한국영화를 반반씩 10∼12편 정도의 라인업을 구성하여 오랜만에 본업이던 배급에 컴백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매니지먼트에 이르는 멀티콘텐츠 개념의 사업을 펼치겠다는 것이 튜브의 구상이다. 또한 김 대표는 “좋은 콘텐츠를 알아보는 감식안과 관리할 능력만 있다면 배급시장은 본래 균등하다. 극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연관된 콘텐츠를 무작정 관계에 의해 많이 걸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수직계열화에 대한 통념을 비판했다. <청연>과 <형사>라는 대작 짝패를 들고 한국영화 제작에 전념하려는 움직임의 코리아픽쳐스도 마이너계의 다크호스로 여겨진다.

새로운 파트너와 결합하건 독립적인 제작자본을 형성하건 변화의 파고를 예감하는 건 마찬가지다. 콘텐츠와 자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반대방향에서 쫓는 메이저와 중견 투자배급사. 자본과 콘텐츠의 무게중심이 갈리는 방향에 따라 한국영화 제작자본의 장기적인 포메이션은 압박과 킥앤드러시 중 자신의 스타일을 정하게 될 것이다.

이동통신사, 충무로로 달려온다

콘텐츠·커뮤니티 ‘두 토끼 잡기’

전술한 SKT의 싸이더스HQ 지분투자는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SKT쪽의 “이미 여러 모바일 콘텐츠 사업을 함께했고, 사업적 신뢰가 양자간에 쌓인 상황”이라는 배경 설명보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 (주)SK의 플레너스 인수설이라는 스토리의 단초를 만날 수 있다. 튜브 김승범 대표는 “DMB,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의 출현으로 콘텐츠가 채널보다 장기적으로 높은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윈도가 다양해지면 콘텐츠를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에 놓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그것이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뉴미디어라면 동영상 중심의 모바일 콘텐츠 영역에 영화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공교롭게도 SKT가 싸이더스HQ의 2대 주주로 공시되던 지난 2월2일, KTF는 쇼박스와 세계 최초의 모바일 영화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소액투자자와 관객을 하나로 묶는 작은 기획처럼 보이지만 자금규모, 프로젝트 진행방식, 이후의 광고 등을 감안하면 이는 콘텐츠 확보와 커뮤니티 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KTF와 SKT가 비슷한 양상의 대결구도를 보이는 곳은 비교해볼 수 있다. 케이블의 게임리그라는 영역에서 두 회사는 상당한 자본을 스폰서십으로 제공하고 각각 대규모의 게임단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DMB 상용화 이후에는 영화에 대한 이들의 움직임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들에게 극장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접근방식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콘텐츠 확보를 목표로 풍부한 자금력과 대중적 채널을 지닌 이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 경우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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