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감독하러 갑니다
배우의 감독 선언을 접한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최은희, 하명중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게 된다. 물론 유지태가 단편을 만들었고, 정우성이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김인권이 독립 장편을 내놓았지만, 극장에 걸고 관객을 맞이한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배우 방은진이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소문으로만 그친 게 아니었다. 실제로 두어편 프로덕션이 진행된 일이 있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취소되거나 유보됐다. 그리고 올해 초, 방은진이 <오로라 공주>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드디어 데뷔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갈망과 열정이, 그를 배우에서 감독으로 발을 돌리게 한 걸까. <오로라 공주>의 고사가 있던 오후, 약간의 피로와 긴장을 머금은 방은진 감독을 만나보았다.
3월 둘쨋주 어느 밤, <오로라 공주>의 테스트 촬영을 준비하던 방은진 감독은 적잖이 당황했다. 촬영장에 생각지도 못했던 커다란 봉고 차량이 들어오더니, 액정 모니터와 온풍기를 떡하니 떨궈놓는 게 아닌가. 온풍기는 감독 옆에서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는데, 그날은 그 정도로 춥지는 않았더란다. 제작부는 야광봉을 휘두르며 차량 통제를 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왜들 이래? 오버하지 마!” 웃으며 다그쳤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드디어 촬영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신도 나고 설레기도 했던 것이다. 방은진 감독은 길게는 3년을 기다려준 스탭들이 “징그럽기도 했지만, 눈물겹게 고맙다”고 했다. 촬영 준비로 전날 밤을 새고 확정 헌팅을 하다가 달려온 그의 뻑뻑한 눈꺼풀 아래로 슬쩍 눈물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감독 방은진.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지만, 방은진에게는 벌써 5년째다. 4년 전에 <떨림>이라는 시나리오로, 2년 전에 <첼로>라는 시나리오로 연출 데뷔를 선언했지만, 촬영장까지 가져가지는 못했다. 지난 가을, 엄정화가 방은진의 연출 데뷔작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뒤로 다시 잠잠해졌다. 대신 방은진이 대학원(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만들었다는 단편 <파출부, 아니다>가 공개됐을 뿐이다. 그럼, 이번에도 역시 아닌 걸까, 슬슬 조바심이 나던 참에, 스탭과 캐스트가 확정되어 3월이면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름하여 <오로라 공주>. 밝고 사랑스러운 한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로, 그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 클라이맥스가 될 거라 했다.
여인의 분노와 복수의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성급하게 <친절한 금자씨>나 <킬 빌>을 떠올리게도 되지만, 그와 달리 밝고 가벼운 느낌의 연쇄살인드라마가 될 거라는 이야기. 영화 출연은 오랜만인 문성근이 엄정화와 호흡을 맞추고, <혈의 누>를 마친 최영환 촬영감독이 합류한다고 했다. 정말로, 방은진은 ‘배우’의 레테르를 떼고, ‘감독’으로 첫발을 딛고 있었다. “인내심도 없고 지구력도 떨어지는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지쳐 떨어질 만하면, 등을 떠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미련함 반, 오기 반으로 견딘 것 같다. 나의 미련함에 감사한다.”
여배우, 감독을 꿈꾸다
방은진은 언제부터 감독을 꿈꾼 것일까. 그가 진지하게 연출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여배우로서 애매한 시점”에 다다랐다고 느낀 1998년경부터다. 출연하려던 영화와 공연이 무산되고, 들어오는 시나리오나 배역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아 연기 이론서를 번역하고 단편영화 스탭을 자원하는 등의 “곁가지 일”에 발을 들인 게 시작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진한 감독의 단편 <장롱>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일은, 그가 자신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진한 감독이 단편 프리프로덕션을 6개월 할 정도의 완벽주의자다. 촬영장소로 섭외했던 곳이 그새 철거되기도 했는데, 철거된 동네에 들어가서 동선에 맞게 치우고, 남산 1호 터널에서 차량 통제하고, 슬레이트 치고 하는 일이 체질에 맞더라.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베이스가 연극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접 세트 나르고, 선배들 의상 챙기고, 그런 일들 많이 해봤다. 영화로 와서도, 카메라 뒤에 선 스탭들이 그렇게 우러러 보일 수가 없었다. 배우야 화면에 얼굴이 나온다지만, 스탭은 누가 알아줘서가 아니라 정말 일이 좋아서 하는 거 아닌가.” <장롱>의 현장에 와 있던 크레인 기사가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방은진을 보고, “저 여자 연출부 누구냐?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방은진 닮았다”고 말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무의식적인 기원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301·302> 출연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시나리오부터 관여해서, 콘티며 편집이며 기웃대고 다녔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거다. 영화를 잘 몰랐으니까.” 이에 대해선 박철수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의 디렉션을 그대로 수용하는 배우가 있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배우가 있는데, 방은진은 후자였다. 연출 플랜에서 연기 플랜을 끌어내는 배우가 드문데, 그걸 해오더라. 현장에서 결정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나한테 제안도 많이 하고, 자극이 돼줬다. 그때 이 친구가 연출자적 표현 감성이 있구나, 감지했다.”
배우의 자리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나 허기가 있었던 거라고 넘겨짚게 되지만, 그런 차원에서 결정하지는 않았다는 게 방은진의 설명이다. “배우로서도, 영화의 한 부분으로서도, 기꺼이 즐거웠다. 다른 허기가 있었다거나, 여배우도 이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원래 새로운 분야에 날 던져 놓고 배우고 적응하는 걸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연출이라는 게 굉장히 전문적인 일이다보니,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간 치열하게 일해온 건데, 이젠 그 힘든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떨림과 두려움의 5년 그리고 <오로라 공주>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방은진을 찾아온 프로젝트는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 <떨림>이었다. 남성의 성애를 다룬 이 작품은 “여자감독이 영화로 만들면 색다를 것 같더라”는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가 평소 “좋은 사람이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지론으로 눈여겨보았던 방은진에게 각색을 맡기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각색한 방은진의 시나리오는 배우이자 작가인 김해곤이 칭찬해 마지않은 작품이었지만, 주류의 장벽을 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인간 본질을 묻는 이야기로 바꾸어 봤는데, 너무 무겁고 거창한 예술영화 느낌이라서, 엎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방은진이 품은 작품은 계부와 딸의 사랑을 다룬 <첼로>였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쿨한 결론에 이르는 모녀의 이야기는 <떨림>보다 진도를 많이 나갔더랬다. 명계남 대표가 “돈 벌 영화”라고 자신했다듯이 상업성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남자주인공 캐스팅에서 난항을 거듭하다 좌초되고 말았다. 여자들이 앞서는 영화였던지라, 남자배우가 나서지 않은 탓이다.
“평생 시나리오만 쓰다가 끝나나보다 했다.” <첼로> 시나리오를 보고 방은진에게 연출력이 있다고 판단한 강우석 감독이 건넨 <입질>(<오로라 공주>의 초기 제목)의 인큐베이팅 작업도 만만치는 않았다. 서민희 작가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범죄스릴러 성격이 강한데다, 한때 강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하려고도 했던 작품이다. 그 시나리오를 방은진에게 건네준 강우석 감독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한달을 잡고 고민하다가, 강 감독님한테 물어봤다. 이걸 왜 나한테 줬냐고. 여자감독들이 그만그만한 멜로만 내놓을 뿐 장르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은 게 안타깝다면서, 관객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는 ‘센’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 그러시더라.” 그 시나리오를 ‘방은진화’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했다. 심리에 초점을 맞추자니 재미가 없어지고, 스릴러 구조로 풀어가자니, 범인이 주인공인지라 이야기가 헐거워지더라는 것이다. 실마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사랑의 반대 정점에 있지만, 같은 얼굴이기도 한” 분노라는 감정에 집중하면서부터다. 그 분노를 살인이라는 행위로 표출하는 여인에 관한 ‘드라마’로 <오로라 공주>는 틀을 잡아갔다. 꼬박 1년이 걸린 일이다.
“발을 잘못 디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철저하게 나 혼자였다. 그게 힘들었다. 기댈 데가 없다는 거. 도망가려고도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일도 안 풀리니까, 피폐해져서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관계도 단절되고. 배우도 아닌 것이, 감독도 아닌 것이, 나라는 존재가 유령처럼 희미해졌다. 연극이나 TV에서 출연 제안도 들어왔지만, 쪽팔려서 못하겠더라.” 조급해지는 마음의 고삐를 잡아준 이는 이창동 감독이었다. 간간이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조언을 구할 때마다 “이걸로 찍을 수 있겠냐”고 되묻더란다. 아직 멀었다, 처음부터 다시 해라, 서두르지 말아라, 하는 요지로 반복되는 이야기는 듣는 당시엔 야속했어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였다. <오로라 공주>의 고사에 들른 이창동 감독은 방은진에게 “한 1.5kg 정도 늘어 보인다”는 인사로 덕담을 대신했다. 한결 자신감 있고, 여유있어 보인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방은진 감독이 이야기하는 <오로라 공주>
엄정화와 문성근의 화학작용, 기대하시라
이야기/ 밝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죽여간다. 그 이유를 따라잡는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분노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은 사랑과 분노라고 생각하는데, 양극단의 두 감정이 사실 하나의 얼굴이다. 상황과 사람 속에 던져넣고 보면, 분노는 슬픈 감정이다. 분노를 삭이고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어떤 행위로 옮겨낸다는 건 삶에 대한 적극적인 에너지의 표출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 하게 되지 않나. 그런 감정을 영화적으로 구체화시킨 이야기다. 자기 편리에 의해 기억을 재조작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도 걸칠 참이다.
캐스팅/ 엄정화는 역할을 쟁취했다. 음악감독(정재형)이 갖고 있던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나섰다. 여주인공의 톤이나 방향, 그 어떤 가벼움 같은 것이 정화와 잘 어울린다. 엄정화스러우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다. 벌써부터 “다 죽여버리고 싶어요”라면서, 역할에 푹 빠져 있다. 문성근 선배는 기존의 지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무기력해지고 비굴해진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여주인공을 받쳐주면서도, 후반부에 복잡한 감정을 보여주게 될 거다. 둘을 붙여놓으니까, 안 어울린다면서도,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들을 하더라. 둘 사이의 묘한 화학작용을 기대한다.
비주얼/ 최영환 촬영감독은 처음부터 일순위였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부딪히고 비껴가는 커다란 구조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카메라가 유기적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원했다. 인물을 미묘하게 따라가는 최영환 감독의 촬영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찰랑찰랑 흘러가는 느낌이 될 거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그만큼 공간의 이동도 많아서, 로케이션이 절반 이상이다. 특히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느낌을, 밤에는 따뜻하게(홍시 빛깔이 주조를 이룬다), 낮에는 파리하게 담아 보여줄 생각이다. 도시의 양면적 얼굴이 공존하는 <택시 드라이버>나 <21그램>의 톤을 참고했다. 동시대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이 될 거다.
제목/ 이창동 감독님이 처음 제안한 제목은 <빠다 코코넛 쿠키>였다. 어쩐지 <박하사탕>을 흉내낸 느낌이 들지 않나.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자칫 무겁게 비칠 이야기에 가벼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제목으로 <오로라 공주>를 떠올렸다. 주인공이 사건 현장마다 오로라 공주 스티커를 남긴다는 설정이 있기도 하다. 내가 공주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긴 하지만, 어렵거나 무거운 영화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주기에는 적절한 제목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