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House of Flying Daggers
1/4분기 출시 DVD 중 <2046>과 더불어 가장 말이 많았던 타이틀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는 별도로 탐미주의의 정점에 달한 황홀한 영상으로 인해 DVD에 대한 기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출시사인 스타맥스는 이례적으로 출시 전에 국내 출시본과 홍콩판의 비교 감상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결과물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상 면에서 이 타이틀의 가장 큰 문제는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낮은 해상도와 선명도였다. 특히 50인치 이상의 대형 디스플레이에서는 감상 자체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 영화의 최고 장점으로 꼽히는 색감은 DVD에서도 충실히 재현되고 있지만, 기대 이하의 해상도로 인해 그 위력이 반감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이러한 치명적인 결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준 것은 바로 박력 넘치는 서라운드 음향이다. 물론 이 타이틀의 음향에도 약점은 존재한다. 무게감과 파괴력이 강조된 대신 음색의 투명함이 떨어져 다소 막힌 듯한 답답한 느낌이 든다는 것. 그러나 이 부분은 타이틀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본래 음향 디자인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정리하자면 <연인>의 음향은 할리우드의 최상급 레퍼런스 타이틀처럼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음향과는 질적으로 다른, 다소 ‘투박한’ 음색이라는 특징이 있다. 어쨌거나 1/4분기 타이틀 중 오디오 면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DVD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꼽은 장면은 역시 ‘신선의 길안내 놀음(북춤)’ 장면이다. 비싼 돈을 들여 5.1채널 시스템을 구비하신 분들은 이 장면을 감상하면서 확실하게 ‘투자한 보람’을 느끼셨을 것이다. 빼어난 채널 분리도와 음향 이동감, 탁월한 공명감이 어우러져 형성되는 그 황홀한 음장감이란! (2005년 2월 4일 스타맥스 출시)
썸 Some
2005년 1/4분기에 출시된 한국 영화 DVD 중 최고의 AV 퀄리티를 보여준 타이틀은 무엇일까? (약간 의외겠지만) 바로 장윤현 감독의 <썸>이다. <텔미썸딩>에 이은 장윤현 감독의 야심작이었던 <썸>은, 극장 개봉 당시의 저조한 흥행성적과 호의적이지 못한 평 탓인지 DVD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하고, DVD 자체의 완성도로만 따진다면 <썸>은 흠잡을 부분이 거의 없다. 특히 영상 퀄리티 면에서는 1/4분기에 출시된 한국 영화 DVD 중 최고임은 물론이요, 시네마서비스의 역대 출시작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국 영화 DVD 사상 초유의 호화 패키지로 출시된 <여고괴담 2 UE>의 경우도 괄목할만한 화질을 선보이긴 했으나 <썸>에는 미치지 못했다. <썸>은 작년 하반기에 나란히 출시되어 ‘한국형 레퍼런스급 타이틀’이라는 격찬을 받았던, <태극기 휘날리며>와 <아라한 장풍 대작전>처럼 전면적인 ※DI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특히 <썸>의 경우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플롯 상의 특수성 때문에 디지털 색보정이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수개월에 걸쳐 촬영됨으로써 각기 다른 색감을 지니게 된 영상이 DI 과정을 거치면서, 마치 하루 동안 찍은 것처럼 고르고 정돈된 느낌의 것으로 180도 바뀐 것.
※Digital Intermediate : 촬영한 필름을 디지털 스캔하여 데이터 상태로 전환한 다음 색보정과 노이즈 제거 작업을 실시함.
한국 영화 타이틀의 고질적 문제점인 장면 간의 질감 차이나 심각한 잡티, 노이즈 현상도 거의 눈에 띄지 않으며, 샤프니스를 부자연스럽게 강조하여 감독이 본래 의도했던 영상 컨셉에서 일탈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부드럽고 정돈된 느낌의 영상과 더불어 사실적인 음향과 스코어의 재생 상태도 돋보인다. 필자가 선택한 장면은 스피디한 자동차 추격 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 씬에 필적하는 장면을 만들겠다’는 감독과 스탭의 의지가 빛을 발한 장면이다. (2005년 1월 11일 시네마서비스 출시)
시선집중 : 이 장면! <맨 온 파이어 SE Man on Fire SE>
<맨 온 파이어>에 관한 한 한국의 DVD 팬들은 ‘축복받은’ 이들이다. 지난 2월 폭스에서 출시된 <맨 온 파이어 SE>는 정작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아직도 출시되지 않은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해 9월, 부록으로 음성해설 트랙 두 개만 수록된 디스크 1장짜리 ‘일반판’만이 발매된 바 있다. 국내에 출시된 SE 버전은 별도의 부록 디스크가 함께 제공되며, 여기에는 명 DVD 프로듀서 찰스 드 로지리카가 제작한 ‘명품’ 메이킹 다큐멘터리도 수록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맨 온 파이어>와 같은 경우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 지난 해 하반기에 출시되어 레퍼런스급 타이틀로 격찬을 받았던 <투모로우>와 <아이, 로봇>의 경우도 <맨 온 파이어>처럼 SE 버전이 국내에 먼저 선을 보인 케이스이다(참고로 세 영화의 SE 버전은 미국에서는 오는 5월 24일에야 발매된다). 지난해부터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폭스의 출시작답게, <맨 온 파이어 SE> 역시 AV 퀄리티나 부록의 구성 등,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거의 없다.
이번에 뽑은 ‘시선집중: 이 장면!’은 <맨 온 파이어> 중 레이번(크리스토퍼 워켄)이 만자노(지안카를로 지아니니)에게 크리시(덴젤 워싱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DVD 챕터 22).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명대사’가 바로 이 장면에서 레이번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온다.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소. 종사하는 분야와 실력의 차이만 존재할 뿐. 크리시는 지금 ‘죽음’이라는 명작을 그리고 있소”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필’이 꽂혀 두 번 이상 본 분들 중에는 이 장면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발견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레이번은 음식을 집어먹은 뒤 손가락을 빠는 (약간 지저분한) 버릇이 있다. 이 장면의 문제는 레이번이 음식을 집어 드는 쇼트과 손가락을 빠는 쇼트가 (논리상으로) 거꾸로 편집되었다는 것. 레이번이 손가락을 빨고 난 뒤 다음 쇼트에서 그는 갑자기 음식물을 손에 들고 있으며, 잠시 후 손가락을 휴지로 닦는다. 두 쇼트가 한 대사로 연결되어 있어 시간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재미있는 실수 장면이다. 참고로 이 ‘명대사’ 장면은 크리스토퍼 워켄이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라고 한다. (2005년 2월 4일 20세기 폭스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