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1/4분기 (1)
2005-03-30
글 : 김정대
이 코너는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로서 그 달의 레퍼런스(화질, 음향, 부록 등에서 모범이 될만한) 타이틀을 엄선해, 주요 장면의 AV적인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정리하는 코너입니다. 처음 시작인만큼 1/4 분기에 출시된 DVD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4월부터는 그 달에 발매된 타이틀을 중심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DVDTopic)

월드 오브 투모로우 Sky Captin and the World of Tomorrow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불가사의한’ 영상을 선보인다. 이 영화의 독특한 영상 질감은 이미 극장 상영 때부터 화제가 된 바 있는데, 레퍼런스급으로 선보인 DVD는 그 오묘한 느낌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플래쉬 고든>과 <버크 로저스>와 같은 1930년대 스페이스 오페라극에 프리츠 랑의 고전 SF물 <메트로폴리스>의 비주얼을 겹치고, 여기에 다시 할리우드 고전 느와르극의 분위기를 가미한다면 대체 어떤 영상이 탄생할까? 여기에 복고풍 미스터리극과 <오즈의 마법사>의 초현실적인 영상미, 5-60년대 할리우드 SF물의 분위기까지 합친다면? 그것도 모자라 여기에 마블 코믹스의 걸작 코믹 북의 한 페이지를 오려내어 그대로 합성시킨다면?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영상에는 놀랍게도 이 모든 요소들이 ‘질서정연하게’ 혼합되어 있다. 이 타이틀의 영상은 1. 부드럽고도 선명하며, 2. 눈부실 정도로 컬러풀하면서도 동시에 흑백 영화를 연상시키는 모노톤의 느낌을 간직한 색상을 선보이며, 3. 최신 SF 영화와 같은 정교한 디테일과 함께 고전 흑백 영화의 아련한 향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실로 ‘오묘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영상이다. 소프트 필터를 활용한 듯한 부드러운 질감(이른 바 ‘뽀사시’ 효과)은 케리 콘랜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지만, 합성의 부작용을 중화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택할 수밖에 없었던 영상 컨셉이기도 하다(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3D로 제작된 CG 애니메이션 배경에 배우들의 연기를 찍은 실사 장면을 합성하여 완성되었다).

영상 퀄리티를 놓고 본다면 본 타이틀의 그것은 D2D(Digital-to-Digital) 방식으로 제작된 픽사의 3D 애니메이션 타이틀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 물론 대형 화면에서 보았을 때 디지털 노이즈가 보이는 등의 약점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완벽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DVD에서조차 보였던 것이므로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이번에 ‘인상적인 장면’으로 뽑은 부분은 역시 초반부 ‘거대 로봇의 습격’ 장면이다. 플레이셔 형제의 고전 만화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과 함께 울려 퍼지는 로봇 걸음 소리의 향연(그렇다. 바로 ‘고지라표’의 육중한 소리이다!)은 ‘확실한’ 복고풍의 엑스타시를 선사할 것이다. (2005년 3월 17일 KD 미디어 출시)

탑건 SE Top Gun SE

제작된 지 거의 20년이 지난 영화, 게다가 이미 DVD로 한번 발매된 바 있는 이 영화가 새삼 다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물론 AV 퀄리티 때문이다. <탑건>은 80년대 극장가를 전전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많은 이들에게 (작품 자체의 선호도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혁신적인 영상미와 사운드를 과시했던’ 추억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아쉽게도 앞서 발매된 <탑건> DVD는 아나모픽 처리가 되지 않은 조악한 화질로 인해, 그러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2월, 마침내 국내에 발매된 <탑건 SE>는 이러한 영상 면의 약점을 보완함과 동시에 디스크리트 방식의 DTS-ES 사운드트랙까지 ‘탑재’하였다. 아나모픽 처리가 된 영상은 잡티가 많고 굵은 입자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등의 약점이 여전히 존재하나, 이는 감독이 의도했던 기록 영화 톤의 거친 영상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는 노력의 결과 생긴 부산물이다. 뭐니뭐니해도 본 타이틀의 최대 강점은 이러한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위력적인 DTS-ES 사운드트랙이다. 타이틀을 DVDP에 넣고 재생시키는 순간, 감상자는 ‘시간을 초월한’ 청각적 황홀경을 체험할 것이다. 유명한 삽입곡들과 어우러져 울려 퍼지는 전투기의 리얼한 굉음을 듣다 보면, 이 영화가 19년 전 영화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영화 본편’ 장면들 대신 필자가 고른 ‘걸작 쇼트’는 바로 ‘메뉴 화면’이다. 본 DVD의 메뉴 화면은 올해, 아니 지난 해 발매된 모든 타이틀을 통틀어서도 자신 있게 ‘최고’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림과 동시에 비디오 게임 세대의 감성에도 호소할 수 있도록 ‘게임 컨셉’까지 가미한 기막힌 메뉴 화면이다. 한 가지 더, 부록 디스크에 수록된 메이킹 다큐(무려 두 시간 반에 이른다!)는 영화 본편보다 더 재미있으니 절대 놓치지 마실 것. (2005년 3월 16일 파라마운트 출시)

나비효과 The Butterfly Effect

<나비효과>는 한 마디로 ‘올해의 <데스티네이션 2>’라 할 수 있다. 작년 여름에 출시되어 호평을 받은 <데스티네이션 2>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레퍼런스급 타이틀’이었는데, <나비효과>는 출중한 AV 퀄리티와 영양가 있는 서플먼트 구성 등 여러 면에서 이와 닮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비효과>의 경우는 극장판보다 약 7분이 더 긴 감독판(엔딩이 다르다)이 별도의 디스크로 함께 제공된다는 강점도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데스티네이션 2>가 그랬듯, <나비효과>의 화질도 분명히 우수한 편이나 ‘만점’을 주기에는 다소 모자란 면이 있다. 부자연스럽게 강조된 콘트라스트나 정제되지 않은 입자 표현(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의도된 촬영 컨셉에 의한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타이틀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감상자의 상상력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박력 만점의 DTS-ES 사운드트랙(모두 디스크리트 방식)이다. 서라운드 채널을 광속으로 관통하는 입체음향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나비효과>의 음향은 비록 <데스티네이션 2>처럼 공격적 성향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파워 면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세세한 주변 음향의 재생 상태나 음의 투명도, 채널간의 밸런스도 대단한 수준이다. 특히 이 영화는 극중 인물(에반)의 혼란한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공음향을 절묘하게 활용했는데, 단순히 분위기를 조장하는 보조역할이 아닌 네러티브의 한 축으로서 음향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필자가 꼽은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주인공 에반이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 이 장면에서 서라운드 채널을 휘감는 인공 효과음의 위력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7.1 채널 AV 시스템을 구비한 분이라면 본 타이틀을 통해 ‘황홀한 체험’을 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시길. (2005년 1월 14일 엔터원 출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Alien Vs. Predator

1/4 분기 출시 DVD 중 AV 퀄리티 면에서 단연 1, 2위를 다툴 타이틀이다. 본 타이틀은 영상의 특성이나 공격적 성향의 음향상 특질 등, 여러 면에서 지난 2월에 출시된 또 한편의 ‘준 레퍼런스급 타이틀’인 <레지던트 이블 2>과 공통되는 면이 많다.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의 감독 폴 앤더슨은 제작자로서 <레지던트 이블 2>의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는데, 영상 컨셉 면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두 영화는 같은 스탭에 의해 DI(Digital Intermediate) 작업이 이루어졌기에 색감이나 질감 면에서도 유사한 면이 적지 않게 보인다.

두 타이틀 모두 영상 면에서 (플롯의 분위기를 반영한) 어둡고 탁한 느낌이 지배적인데 그런 이유로 ‘기계적으로만 본다면’ 밝고 화사한 성향의 타이틀에 비해 어두운 장면의 표현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도된 영상 컨셉의 결과일 뿐이다. 객관적인 화질이나 음질은 두 타이틀 모두 의심할 바 없이 ‘상급’이다. 'B급 영화정신의 충실한 계승자‘인 폴 앤더슨의 작품답게 두 타이틀 모두 90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동안 서라운드 전 채널을 통해 쉴 세 없이 폭발적인 사운드가 쏟아지는데, 그 중 필자가 뽑은 부분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초반부의 ‘펭귄 등장’ 장면이다. 하고 많은 장면들, 특히 ‘피 튀기는’ 명 결투장면들 대신 이 장면을 고른 이유는 바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인 폴 앤더슨 감독의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위트가 돋보인 장난스러운 장면이기 때문이다(페이스 허거가 이동하는 소리가 서라운드 채널을 통해 울려 퍼져 긴박감이 고조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소리는 ‘펭귄’의 이동소리였다).

이 장면은 향후 벌어질 ‘피 튀기는’ 서바이벌 게임 장면에 앞서, 으스스한 음향의 리얼한 재생으로 멀티 채널 서라운드 효과의 위력을 미리 맛보게 하는 일종의 ‘맛보기’ 복선 장면이다. 특히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페이스 허거’가 이동할 때의 기분 나쁜 음향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아마도 이 장면에서 ‘소름 끼치도록’ 짜릿한 쾌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2005년 1월 13일 20세기 폭스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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