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소개 기사를 보다 깜짝 놀랐다. 다큐멘터리 상영작 내용 대부분이 글로 읽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이야기다. 이런 건 인권영화제에서 틀어야 적당한 것 아닌가 싶은 영화가 한두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명예살인>. 파키스탄의 경우, 가문의 명예를 훼손한 여성은 가족이 공모해서 죽여도 문제삼지 않는 처벌관습이 존재한단다. 한편 <결혼선고>에선 이혼문제를 라비의 법정에서 판결하는 이스라엘 상황이 등장한다. 자기는 다른 여자를 만나 함께 살면서 다른 남자를 만난 전처의 자유는 완전히 박탈한다는 라비 법정의 재판도 파키스탄의 <명예살인> 못지않게 끔찍하다. 세상에,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해야지 싶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한편이 떠오른다. 이란의 어느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매춘하는 여인을 살해하며 그것이 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살인범 가족의 반응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이 연쇄살인마를 성전에 나선 전사로 여긴다. 그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이들 덕에 그는 자신을 양심수라고 생각한다. 옥에 가두든, 사형에 처하든,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했으므로 떳떳하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영화에 등장하는 얼치기 테러리스트 악당들에게 이 위대한 선각자의 정신세계를 한번 탐구해보길 권하고 싶다. 제대로 된 악인 캐릭터를 만들려면 이런 사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자인 나로선 여성의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앞서 소개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헉,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아랍이나 후진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자행된 여성학대다.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거리로 끌려나와 머리를 깎이고 돌팔매질을 당한 여인들의 모습에서 여성에 대한 변치 않는 편견을 읽을 수 있다. 나치에 협력했다고, 독일 여자와 잤다고 그런 수모를 겪은 남자가 있었던가? 남자의 경우엔 정상적인 법절차가 기다린 반면 여자에겐 특별한 모욕이 주어졌다. 모니카 벨루치를 보느라 넋을 잃고 보긴 했지만 <말레나>는 전쟁의 광기가 여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럽의 마녀사냥 전통은 20세기에도 여전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 한국은? 성매매방지법이 일거에 매매춘을 몰아낼 것이란 기대는 안 했지만 며칠 전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어난 화재는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의 사례 못지않게 참혹하다. 화재 전날 업주가 불구속 입건됐다 풀려난데다 이날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여인 한명은 경찰 조사 뒤 업소로 돌아가 잠을 자다 화재로 중상을 입었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 강력한 법을 만들겠다는 대책이 나오긴 했으나 법을 만든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법이 문제가 아니라 집행하는 자들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예 이번 기회에 여성 경찰을 대폭 늘리면 어떨까. “같은 남자끼리 이해하죠?” 이런 말 하는 놈들 혼내주려면 아무래도 여자가 낫지 않을까. 이참에 여성의 취업 기회도 넓히고 말이다. 아무튼 여자가 공권력을 많이 가진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