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터뷰] <혼몽>의 쓰카모토 신야 감독
2005-04-29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쓰카모토 신야 감독

여기 잠에서 깨어나 혼비백산한 남자가 있다.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좁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갇혀있는데다가, 빠져나가려 할 수록 고통스러운 미로는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왜? 나를 여기에 가둬뒀을까?”. 좁은 콘크리트 미로속에서 몸부림치는 남자의 폐소공포증은 관객에게 생으로 전해지고, 이빨과 쇠파이프가 맞부딪혀 끌리는 소리가 관객의 고막을 찢어놓는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5’를 위한 쓰카모토 신야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혼몽>(Haze)은 기절할만한 시청각적 경험이다. 한동안 무디어져 가던 괴짜 감독에게 <철남>과 <총알발레>같은 초기작의 세계로 귀환한 것이냐고 물어보자 의외로 수줍게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졸린 눈의 쓰카모토 신야에게서 소름끼치는 <혼몽>속의 남자를 떠올리기란 쉽지가 않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5’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뭔가.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만난 전주영화제 관계자들로부터 참가를 제의받았다. 이전에는 한번도 디지털 영화를 만들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그게 가장 심플한 대답이 될 것 같다.

-<혼몽>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10여년전부터 생각해오던 아이디어여서 단숨에 써내려갈 수 있었다. 원래 내가 좁은 곳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런 곳에 갇힌다는 것만 상상해도 가위에 눌릴 지경이다. 그런데 토쿄라는 콘크리트 도시 자체가 점점 사람을 죄어드는 장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상념들을 엮어서 풀어낸 것이 <혼몽>이다.

-첫 디지털 작업 과정은 어땠나.

=일본에서 만들고 있었던 단편을 끝낸 후, 12월에 각본을 쓰고 1월에 13일간 촬영을 했다. 편집과 믹싱에는 한달이 걸렸다. 후반 수정작업이 간단하고 자유롭다는 게 디지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꼈다.

-전주영화제에서 받은 5천만원 외에 자비를 들여 장편 버전까지 만든 것으로 알고있다.

=단편과 53분짜리 장편 작업을 동시에 했다. 그렇다고해서 <혼몽>이 장편을 뚝 잘라서 편집한 성의없는 단편이라는 말은 아니다. 장편의 단축으로서의 단편이 아닌,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진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장편과 단편 둘 다 각각의 장점을 가지는 작품들로 나와준 것 같아서 기쁘다.

-<철남>이나 <총알발레> 같은 초기작에서는 인간 신체와 도시 문명의 물리적 관계를 섬뜩한 영상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최근작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가 힘들었는데, <혼몽>은 마치 초기작의 세계로 돌아온 것 처럼 보인다.

=<혼몽>의 아이디어가 십여년 전에 완성되었던 것이라 그렇다. 필름으로 작업하기에는 제한이 많은 아이디어라 계속 묻어두고만 있다가 디지털 작업의 기회가 온 김에 잠시 과거의 느낌으로 돌아가서 만들었다. 원래 도시와 인간이라는 주제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깃거리 이기도 하다. 일단 내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다 인간이고 또 인간을 누른 도시 아닌가.

-<혼몽>에서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감독과 배우를 병행하는 것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나.

=일단 불러만 주시면 어쨌거나 출연한다. 하지만 연기를 하다보면 감독일을 미루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한번 영화에 출연하면 그 후로도 출연제의가 쇄도하는 바람에.(웃음) 둘 사이의 발란스를 맞추기 힘든 경우가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에 출연한 후로는 다섯 작품에 한꺼번에 캐스팅 될 뻔 했다. <유월의 뱀> 촬영 때문에 모두 거절하긴 했지만.

-당신같은 8mm 자주영화 세대가 쏟아져 나온 80년대 이후, 일본의 영화계는 정체 상태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보기에 최근의 일본 영화계는 어떤가. 새롭게 주목할 만한 후배가 있나.

=일본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정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다시 활기를 얻어가는 중인 것 같다. 나같은 사람도 계속 뭔가를 만들고 있고, 인디영화 감독들도 많은 제약속에서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미야자키 하야오든 포케몬이든 거대 예산의 상업영화들도 많이 나오지 않나. 뭐, 아직 ‘이사람이다!’싶은 사람은 없다.

-차기 계획은 무엇인가

=<철남>의 세번째 장편을 찍을 생각이다. 미국인이 주인공인 일본 인디영화이며 디지털로 만들 계획이다. 그간 타란티노를 비롯한 미국인들이 <철남>의 영어버젼 영화화를 여러번 제의했으나 다 거절했다. <철남>은 인디적이 아니라면 매력이 없어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러 장르의 단편 하나와 UN에서 제의한 단편을 준비중이다. 제인 캠피온을 비롯한 7명의 감독들이 7개의 주제로 만드는 단편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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