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부패한 경찰, 어둠, 창녀, 음모가 들끓는 도시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선 개봉하자마자 어둠과 죄악의 도시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로 첫주 1위를 기록했다. 칸은 만화의 원작자 프랭크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함께 연출하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객원연출로 나선 <씬 시티>를 경쟁부문에 합류시키며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만약 레이먼드 챈들러, 미키 스필레인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한다면, 마블 코믹스의 팬이라면, 그리고 황당무계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상상력에 흔쾌히 동참하고 싶다면 초대를 외면할 이유는 없다. 여기에 미키 루크, 제시카 알바, 브루스 윌리스, 로자리오 도슨, 클라이브 오언 등 낯익은 스타만 줄잡아 열명을 훌쩍 넘는 <오션스 트웰브>급 초호화 캐스트니 기대가 클 만도 하다. 영화를 본 뒤 IMDb에 몰려든 2만여명의 네티즌들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도시를 역대 최고의 영화 순위 104위에 올려놓았다. <터미네이터>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보다 높은 순위다.
이야기는 세 조각으로 나뉘어 있으나 그것은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순환한다. 마치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처럼. 하룻밤 정을 나눈 여자를 살해범에게 잃은 마프(미키 루크), 부패한 경찰을 죽이게 되면서 곤경에 빠진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언), 은퇴를 하루 앞두고 소녀 납치범을 찾아나선 형사(브루스 윌리스)의 이야기다. 필름누아르의 공식을 고전적으로 충실히 따르면서도 판타지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든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을 만화적 세계로 번역해 탄생시킨 이 신세대 필립 말로들은 늘 담배를 입에 물고 고독한 표정을 지으며, 여성을 괴롭히는 남자들에 대해 인내심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나 그들의 도덕은 한층 더 과격하고 공허하다. 마프의 말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피에는 피, 그것도 드럼통을 채우고 넘치는 피’라는 철학을 실천한다. 스크린에는 피, 피, 그리고 더 많은 피가 넘실대며 관객을 익사시킨다. 손목, 귀, 성기, 얼굴이 날아가고 머리가 부서져버린다. 아마 어린 관객은 초대장을 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씬 시티>는 타란티노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브루스 윌리스, 마이클 매드슨, 마이클 클라크 던컨 등)뿐 아니라 잔인한 살해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아이디어 등 곳곳에서 타란티노적 유산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진하게 드러나는 것은 필름누아르 전통에 대한 진한 애정과 향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