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본 극우영화 <로렐라이> [2] - 전쟁영화 라인업
2005-05-10
글 : 김려실 (자유기고가)

승리의 영화로 치환되는 패전의 역사

이같이 제3세대형 전쟁영화 <로렐라이>는 노스탤지어 영화로서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향수를, 가상역사영화로서 점령기를 겪은 전후세대에게는 자부심을,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인 신세대에게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의 쾌감을 주며 국가주의를 주입 및 재교육시킨다.

과거의 전쟁영화와 비교해볼 때 <로렐라이>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부터 지킨다는 슬로건이다. 진주만 공습은 빼먹고 히로시마 원폭에서부터 스토리를 풀어가는 이 영화에서 일본 제국군의 이미지는 일본 헌법 9조에 의해 군수방위만 허락되는 자위대의 그것과 자연스레 겹친다. 마사미 함장의 캐릭터도 가부장적인 상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협력을 끌어내는 리더로 설정되어 있고 휘하의 군인들도 전체로 취급되기보다는 개성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구일본군은 꽤나 자유 민주주의적인 단체로 그려진다.

또 다른 변화는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의 전쟁영화는 훈련과 전투를 정신수양의 과정으로 미화했고 그 과정을 완수한 모범적인 군인이 이상적인 인격체로 찬미되었다. 그러나 <로렐라이>에서는 아사쿠라와 같은 전형적 군인은 미국 유학파이자 엘리트라는 점에서 이중으로 부인되고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마사미나 철없는 소년병 유키토 같은 보통사람들이 조국을 지킨 영웅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같은 반엘리트주의의 배경에는 전후 일본사회 최대의 쇼크였던 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사건이 있다. 옴진리교는 일본과 세계의 지배를 목표로 하는 종교단체로 1995년 일본 정부의 통제에 반발해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 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일본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을 리셋해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이 황당무계한 신흥 사이비 종교의 간부들이 독가스를 제조할 만큼 머리가 뛰어난 도쿄대 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로렐라이>는 옴진리교라는 미증유의 괴물을 만들어낸 원인에 대한 후쿠이 하루토시 나름의 분석인 셈인데 그 해결책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생뚱맞게도 대중의 동의를 얻은 국가주의이다.

한편 <로렐라이>는 변화뿐만 아니라 반복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키고 그들의 기억을 장악한다. 퇴역 미군이 화자인 <로렐라이>의 액자구조는 오럴 히스토리와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둑 두는 장면을 보여주고 일본인은 오락도 병법이라는 식으로 타문화를 왜곡하는 프랭크 카프라의 <네 적을 알라: 일본>처럼 미국의 선전영화는 적과 아군의 차이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로렐라이>같이 ‘아군에 동화된 적’의 입으로 프로파간다를 전달하는 것은 일본 선전영화가 신빙성을 높이는 방편으로 빈번히 사용한 방식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왠지 어설픈 <로렐라이>의 전투신도 실은 반복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영화가 최초의 본격적 잠수함영화라고는 하지만 본격적이라는 단어만 빼면 최초는 1941년에 만들어진 선전영화 <잠수함 1호>이다. 이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그린 <하와이 말레이 해전>(1942)과 <해군>(1943)도 만들어졌는데 <로렐라이>의 촌스러운 비주얼은 묘하게 이런 옛날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로렐라이>의 제작사는 태평양전쟁 때는 전의앙양영화를, 패전 이후로는 8·15 기념 전쟁영화를 제작해온 도호다. 특히 과거 도호가 제작한 <하와이 말레이 해전>은 한천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해저와 정교한 미니어처가 빚어낸 박력있는 진주만 공습신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영화이다. 당시 이 영화를 보고 해군에 지원하고 싶어하던 코흘리개들은 이제 손자와 같이 <로렐라이>를 보러갈 나이가 되었고, 그들이 전쟁과 패전의 기억을 미화할 필요도 없이 오늘날 일본에서는 영화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

<로렐라이>의 미성 뒤에 있는 것

“전쟁의 영원한 포기를 규정하고, 어떤 군사력도 갖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일본 평화헌법 9조의 개정에 대한 설문조사. 보이는 것처럼 아직은 반대가 우세하다.

전 시기 일본의 전쟁영화는 책 한권으로 도저히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하다. 국책에 무조건 따른 전의앙양영화에서부터 그 국책에서 슬쩍 일탈해 반전영화로 보이는 영화까지 소재와 폭도 넓다. 지역적으로도 일본뿐만 아니라 일본군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영화가 선전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선전임이 너무도 뻔한 당시의 전쟁영화와 달리 오늘날의 전쟁영화는 교묘하다. 쉽고, 오락적이며, 세련되기까지 한 <로렐라이>는 사실과 허구를 섞어 한눈에 선전영화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다.

영화 속에서 결코 언급되지는 않지만 <로렐라이>의 주제를 단적으로 요약하면 ‘현재’는 선조들이 적의 손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후는 패전이 아니라 승리의 역사라는 선전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거야말로 가장 대담한 역사왜곡인 동시에 일본인들이 솔깃해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원폭문제부터 제기해 일본을 피해자의 위치로 옮겨놓은 뒤 반미감정을 반전평화주의로 전도시키고 보통 인간이 영웅이 되는 미담이라니! 역사공부가 부실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피폭도시 나가사키 출신인 야쿠쇼 고지는 “일본영화로 전쟁을 그리려고 할 경우 미담만으로 끝나지 않는 부채로서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원폭투하에 관해서는 일본만이 생생하게 비참한 체험을 해왔다. 그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는 것은 임무다. 일본영화로서 그려야만 하는 소재이고 <로렐라이>는 오락성 안에서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는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그는 전체 피폭 사망자 중 10%가 재일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는지? 선전에 속고, 징집에 울며 전쟁터로 끌려갔던 ‘조선인 황군’들은 일본인이 아니라고 일본 정부가 전후에 일본 군인에게 베풀었던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는데 23명이나 도쿄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사실은 아는지? 그리고 “이런 전쟁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연기했다”는, <로렐라이>를 반전영화로 착각하고 출연한 쓰마부키 사토시는 자신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왜 주말에 극장 앞에서 헌법 9조 개헌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지를 아는지?

종전 60주년 전쟁영화 라인업

반전영화일까, ‘전쟁’영화일까

<전국자위대 1549>(戰國自衛隊 1549)

한무라 료(半村良)의 원작을 영화화한 <전국자위대>(1979)의 2005년판으로, 후쿠이가 개작을 담당했다. 자위대의 한 부대가 군사장비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 전의 전국시대로 빨려들어가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는 플롯은 원작과 같다. 그러나 1549년으로 간 상관이 강대국 일본을 꿈꾸며 역사를 리셋하기 위해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의 주군으로 중국 경락(략??)을 주장했으나 살해당함)로 탈바꿈해 역사를 변화시킴으로써 생긴 빈 공간이 현재를 침식한다는 설정은 역시나 후쿠이적이다. 즉, 자위대가 가짜 노부나가를 진압하고 되찾은 ‘현재’가 어제와도 같은 오늘이 아니라 실은 그들의 희생과 승리의 결과물이라는 주제는 <로렐라이>와도 일맥상통한다.

<망국의 이지스>(亡國のイ-ジス)

초강대국 미국에 눌리고 모(某)불량국가에 희롱당하는 일본을 국가가 아닌 망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후쿠이의 동명 원작소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미국의 안보리 개혁시안 반대라는 현실과 겹침으로써 지금껏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지스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적의 방패로 해상 자위대의 보위함 ‘이소가제’의 최첨단 시스템을 의미한다. “전쟁의 잔혹함을 모르고 일본을 조소하는 모국(某國)의 대일공작원 용하”와 간부의 배신으로 탈취된 이소가제를 되찾고 도교 도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선다. 냉철한 테러리스트이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여자공작원(<쉬리>!)으로 채민서가 캐스팅되었다. 이 활극을 위해 자위대 모집 포스터에 아이돌 여성그룹 ‘모닝구 무스메’를 등장시켰던 일본의 방위청과 해상자위대, 항공 자위대는 전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배우들의 군사훈련까지 도맡아 했다.

<남자들의 야마토>( 男子だちの大和)

세계 3대 어처구니없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피라미드, 만리장성, 그리고 야마토. 미 군정이 끝나자마자 만들어진 영화 <전함 야마토>(1953)에 나오는 농담이다. 야마토는 비밀리에 건조된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계획부터 완성까지 장장 8년이 걸렸고 진수했을 때 나가사키항의 수위가 30cm나 올라갈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오키나와 탈환을 위해 1945년 4월7일 진격한 야마토는 미군의 맹공으로 침몰했다. 국회의사당 크기의 전함이 사라졌지만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으므로 종전까지 침몰도 미공표였다. 12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듯 반전영화인지 일본군에 대한 진혼인지 헷갈리는 남성 멜로드라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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