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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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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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험>과 디지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 영화기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루카스 필름은 6월18일부터 LA와 뉴욕의 네 군데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하고 있다. 디지털 방식의 영화란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화 화상을 디지털 부호로 옮겨 디지털 영사기를 통해 상영하는 영화다. 특수효과나 편집에 디지털 방식이 도입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영화 전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상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긁히거나 말릴 우려가 없다. 영사기 초점이 흐려지거나 릴에서 릴로 바뀔 때 생기는 시차도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에 비해 화면 해상도가 뛰어나고 명암 차이가 뚜렷하다. 색감 차이가 특히 돋보이는데 디지털 영사기는 10억개 이상의 색깔을 재현할 수 있어 화면 색깔이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조금 이상한 비유겠지만 디지털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탈색이 심한 영화를 복원한 새 프린트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필자는 <스타워즈>를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본 후에 디지털 영화로 다시 봤는데 색감의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제다이 기사의 광선검이나 R2D2 몸체의 푸른색, 그리고 건간족의 수중도시 불빛은 디지털 영화에서 눈부시게 화려했다.

디지털 영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텍사스 인스트러먼트(Texas Instrument)와 시네콤(Cinecomm)의 축적된 기술과 차세대 영화기술의 선두를 지키려는 루카스 필름/THX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텍사스 인스트러먼트와 시네콤은 각기 개발한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스타워즈>를 상영하고 있다. 사업용 디지털 프로젝트의 선두주자인 텍사스사의 방식은 디지털 라이팅 프로젝션(DLP) 시스템이다. 130만개의 초소형 거울들이 장착된 광학 반도체칩이 이 거울들을 스위치처럼 켜고 끄면서 형상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형상들에 컬러 필터 시스템을 통해 색이 입혀지고 스크린으로 투사돼 영화가 된다. DLP 시스템이 독립된 상영 단위인 반면에 시네콤의 디지털 영화는 인공위성을 통해 중앙으로부터 디지털 부호를 공급받아 상영하는 방식이다. 이 부호들은 기계어로 압축, 변환돼 공급되기 때문에 상영관에서만 이를 해독해 상영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감독들과 제작사들이 디지털 영화의 필요성을 자주 거론했다. 영화감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필름 손상과 탈색을 우려했고 이런 수난으로부터 자신들의 작품을 보호하고자 안정된 고화질 영화를 꿈꾸었다. 77년 조지 루카스는 탈색의 불가피성 때문에 <스타워즈>를 아예 탈색된 색감을 기준으로 촬영했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컬러 영화의 빠른 탈색을 우려해 <분노의 주먹>을 흑백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80년대 초 프랜시스 코폴라가 소니와 손잡고 셀룰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고화질 영화를 모색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실패했고 이후 디지털 영화는 한낱 꿈에 불과했다.

디지털 영화 수용에 가장 적극적인 쪽은 영화회사들이다. 배급영화사가 영화 프린트 한벌을 복사하는 데 약 1500달러가 든다고 한다. 5천편 정도를 극장에 배급해야 하는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프린트 비용으로만 750만달러가 든다는 계산이다. 성수기가 지난 프린트들은 몇편을 남겨놓곤 모두 소각해야 하니 이런 식으로 영화배급망을 유지하는 것 역시 부담스런 지출이다. 하지만 영화산업 전체가 셀룰로이드 필름을 중심으로 제작, 배급, 상영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러한 비용은 현재로선 불가피하다. 모든 영화들이 디지털 영화로 배급, 상영된다면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은 해마다 6억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그러나 영화감독과 제작사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영화가 주된 상영형태로 정착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먼저, 극장업자들이 설치비용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영사기 한대 설치비용이 15만달러를 넘기 때문에 어느 극장도 선뜻 모험을 하지 않고 있다(현재 4개의 디지털 영화 상영관의 영사기는 루카스 필름에서 부담했다). 극장업계가 영화산업 자금의 원천이고 보면 디지털 영화의 정착은 극장업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극장주들은 디지털 영화 설치가 영화사들에 직접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에 설치비를 영화사들에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영화는 또 전통적인 상영기사의 퇴출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들 노조의 저항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영화사들 역시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무단복제의 가능성이다. 보안을 철저히 한다지만 해커들에게 디지털 영화 정보가 절취돼 인터넷에 올려질 경우 영화사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다.

한시적인 디지털 영화의 성공이 전반적인 산업의 변화를 야기하지는 않더라도 현재의 영화산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리라는 데 이견을 내놓는 사람은 없다. 디지털 영화상영방식이 영화매체뿐만 아니라 콘서트 라이브 공연이나 스포츠 이벤트까지 상영할 수 있는 방송 호환성의 이점도 있다. 디지털 영화는 화질의 우수성을 차치하고라도 중장기적으로 비용절감 효과도 크기 때문에 영화산업 전체가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루카스 필름의 장기전략이다. 루카스 필름은 DLP와 시네콤 두 가지 다른 방식의 디지털 영화상영방식을 인정하면서 이를 통합하는 디지털 영화의 표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루카스 필름의 ILM이 다른 CG 회사에, 그리고 THX 사운드 시스템이 다른 입체 사운드에 패권을 잃어가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새로운 영상매체를 선도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워너사와 폭스사가 발성영화를 통해 그들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던 점을 생각하면 디지털 영화 보급에 열의를 보이는 루카스 필름의 전략이 과연 그에 못지 않은 역사적 획을 긋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LA=안진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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