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전주영화제의 발견1: 데이비드 고든 그린 [1]
2005-05-17
글 : 홍성남 (평론가)
사진 : 이혜정
미국 인디영화의 새 희망,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영화세계

시선집중! 제2의 테렌스 맬릭이 나왔다!

시골 마을의 한 집안에 불쑥 ‘침입’해온 삼촌이란 자가 아버지를 살해하자 삼촌의 표적인 돈 주머니를 쥔 어린 두 소년은 그 악마 같은 남자를 피해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게 된다. 금방 떠올리게 되는, 찰스 로튼 감독의 <사냥꾼의 밤>(1955)은 이와 유사한 상황이 펼쳐진 뒤로 영화의 주조를 비정한 가족스릴러에서 몽환적인 모험담으로, 그리고는 이상한 동화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같은 비약적인 진로 전환 때문에 당혹스러워했다. 로튼 영화의 현대적 번안이랄 수 있는 <언더토우>(2004)에서도 스토리상의 그 중요한 분기점이 지나가자 무언가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영화가 옮겨가는 발걸음이 다소 예기치 않은 것이라 이걸 지켜보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영화를 봐온 경험에 따르면 이제 영화는 스피드를 높여가며 관객의 정서를 강하게 몰고 가야 한다. 하지만 <언더토우>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영화는 모험담으로의 길을 향해 숨가쁘게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터덜터덜 걷는 로드무비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서 관객이 추적의 흥분을 맛보는 대신에 인물들과 그들이 놓인 혹은 그들이 이제 막 발견한 세계와 그들의 흔들리는 감정 세계쪽에 집중하게끔 유도한다. 바로 이때쯤, 데이비드 고든 그린이란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가 만든 영화임을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아무리 스릴러(로 ‘오해’될 여지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도, 그래서 상대적으로 관습적인 스토리를 끌어들인대도, 앞서 <조지 워싱턴>(2000)과 <올 더 리얼 걸즈>(2003)를 내놓았던 이의 독특한 터치는 결코 지워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로저 에버트가 주목한 만만찮은 애송이

<올 더 리얼 걸즈>
<언더토우>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그린이 만든 세편의 영화 모두에 별 네개 만점을 주어 그에 대한 열렬한 신뢰를 표했던)는 그린이 만든 영화의 한두개 신만 보고 나면 그 영화가 누가 만든 것인지 금방 알게 된다고 쓴 바 있다. 그만큼 그는 아직 젊은데다가(1975년생) 짧게 끝나는 필모그래피를 작성했을 뿐인 애송이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만만치 않은 인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시적으로 그린의 세계를 정의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안의 풍경일 것이다. 예컨대 베르너 헤어초크가 장엄하고 신비한 세계의 풍경을 강박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영화감독이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소외와 매혹이 중첩된 현대 도시의 풍경을 잘 그려낸 시네아스트라면, 그린은 자신이 속한 남부의 어떤 풍경에 집착하고 그것에 매혹된 영화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현대적인 느낌이라고는 거의 배어 있지 않은 듯한 낡은 건물, 가동을 이미 멈춘 지 오래돼 보이는 퇴락한 산업지대,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공터, 짙은 갈색과 연관된 듯한 농장 등을 가지고 자기 세계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그것은 쇠락 혹은 (시간의) 정지와 연관된 아득한 공간이다. 게다가 그것에 대한 그린의 애정과 비범한 시각적 감수성은 그 공간의 아득함을 강화한다. 그것은 종종 초현실의 영역에 슬쩍 발을 들일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져 현재 우리가 속한 곳과의 거리가 좀더 커진 자기 완결의 세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세계를 느릿느릿 걸어가며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까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계의 일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그린이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에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영화감독이면서 표피적인 서정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람들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에 유난히 민감하고 관심을 쏟는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그는 팽팽하게 조여진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는 관심과 재능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린의 아득한 세계에는 감정적인 위기에 처한, 그래서 우리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인물들이 거주한다. <조지 워싱턴>의 주인공인 10대 소년은 비록 고의는 아니더라도 친구의 죽음을 초래하고는 죄의식과 책임의 문제와 마주하고, <올 더 리얼 걸즈>의 폴은 노엘을 진정한 새 여자친구로 맞이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갱생하려는 내적인 싸움을 벌인다. 이들의 감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만져주려는 노력이 고도에 이르렀을 때, 그린의 영화는 인물 연구를 삶의 “미스터리… 신이 저지른 모든 실수”(<조지 워싱턴>에 나오는 대사)에 대한 성찰과 화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차기작은 데뷔작 <조지 워싱턴> 뛰어넘길

<조지 워싱턴>

하지만 그린의 세계에서 아직 그런 성취에 확실하게 다가간 적은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그린이 세워놓은 세계는 표피적인 수준의 안정성과는 달리 아직은 불안정하게 구축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그린이 세편의 장편영화를 만들며 보여준 행보를 지켜보면 그 세계의 불안정성이 쉽게 보완될 성질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사려 깊은 그린의 데뷔작 <조지 워싱턴>은 발표된 뒤로 평단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그것은 앞으로의 성장영화를 평가할 척도라는 식의 호평까지 들으면서 새로운 재능의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주목할 만한 신인은 이후 시적인 아름다움에서나 인물에 대한 시선의 깊이나 애정에서나 그리고 완성도에서 데뷔작을 뛰어넘는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하지 못했다. <올 더 리얼 걸즈>와 <언더토우>는 둘 다 <조지 워싱턴>의 커다랗게 드리운 그늘 안에 놓여 있는 영화들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평자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그린은 진정한 재능을 가진 신인인가 아니면 테렌스 맬릭이 되고파 하는 젠체하는 애송이인가? 최소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다음 행보는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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