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타계한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죽음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최근 파졸리니 살해 혐의로 9년간 복역했던 피노 페솔리가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데 이어 파졸리니의 동료 감독 세르지오 치티가 정치권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그간 잠자고 있던 의혹이 증폭된 것이다. 이에 30명의 하원의원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로마시에서도 새로운 수사를 요구한 상태다.
파졸리니의 살해범으로 지목됐던 피노 페솔리가 TV 인터뷰에서 파졸리니를 죽인 건 자신이 아니라 “남부 억양을 지닌” 세 청년이었다고 뒤늦게 고백함으로써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청년 셋이 파졸리니에게 “더러운 공산주의자”라는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해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감독 세르지오 치티가 <라 리퍼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살해 가담자는 페솔리를 포함해 모두 다섯명이라면서, 경찰관과 비밀요원 등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의 필름 일부를 훔쳐내 파졸리니에게 만남을 강요했고, 당시 열일곱살에 불과했던 페솔리에게 에스코트를 지시한 뒤, 그를 희생양으로 이용한 거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네오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맞서던 험한 시기였고 마르크시스트였던 파졸리니가 살해 협박을 받았던 만큼 파졸리니의 죽음은 정치적 살인이었다는 설이 유력했지만, 페솔리가 동성애자였던 파졸리니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실 등으로 이 사건은 동성애 문제로 결론지어진 바 있다.
이에 좌파로 알려진 로마 시장 월터 벨트로니를 비롯해 많은 정치, 문화 인사들이 파졸리니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벨트로니 시장은 “페솔리의 혐의 번복은 과연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파졸리니의 친지와 대중이 품었던 의혹을 다시 부추겼다”면서, 하루빨리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