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분홍신> vs <가발> [2] - <분홍신> 촬영현장
2005-05-24
글 : 김도훈
사진 : 정진환
회색 오피스텔 속 분홍빛 도시괴담

“내 머리를 자르라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죄를 회개할 수가 없어지잖아요. 분홍신을 신은 발을 잘라줘요.” 사형집행인은 분홍신이 신겨진 카렌의 발을 잘라냈다. 분홍신을 신은 조그마한 두 다리는 곧 뜰을 가로질러 깊은 숲속으로 춤을 추며 사라져버렸다. -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중에서

5월10일 오전 11시. 안산의 어느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 스탭들은 “화면의 간지를 위해” 바닥에 연신 물걸레질을 하고 있다. 김용균 감독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빈 종이컵을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겨 있다. 폭풍 전야처럼 조용한 정적을 깨고 “감독님, 이 영화 벽지- 공포영화. 아니. 오피스텔- 공포영화예요?”라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몰래 방문했던 4월16일의 현장도 여의도 근처의 오피스텔 옥상이었고, <샤이닝>을 연상시키는 복도장면 역시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촬영되었다. 사실 한국의 오피스텔이라는 공간은 공포영화의 무대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사각형 개인용 주거공간에서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자고, 아주 가끔은 혼자 죽는다. 오피스텔 복도에는 외로이 죽은 원령이, 지하 보일러실에는 북유럽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곱사등이 노파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화는 언제나 유럽의 어느 마을로부터 시작되지만, 현대의 음산한 동화들은 콘트리트 건물에서 부활한다.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가 길거리에서 주운 분홍끈(그리고 거기에 쓰인 글귀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기회를 만나 갑자기 모든 일이 가능해질 것입니다’)으로부터 영화의 기획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하나의 도시괴담처럼 들린다. <분홍신> 역시 잔혹한 동화이며 도시괴담이다. 남편과 이혼한 안과의사 선재(김혜수)의 악몽도 우연히 주운 분홍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데르센 동화 속의 소녀처럼, 선재와 딸 태수는 분홍신에 매혹당한다. 그들은 분홍신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분홍신에 깃든 원혼은 그들의 다리를 잘라내고 싶어한다. 100년 전의 안데르센은 발목을 잘리고도 신에게 회개하는 소녀의 갱생담으로 이야기를 끝냈지만, 그가 믿음이 사라진 현대의 도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글을 쓰던 동화작가였다면 그런 결말은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 속 오피스텔이 뿜어내는 비현실적 공포

1시간여가 지나도록 현장은 적막했다. 말이 없는 감독을 닮은 탓인가. 말수 적은 스탭들이 모든 준비를 마친 12시 즈음, 선재와 우연히 그를 돕게 된 인철(김성수)가 보일러실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장면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명은 붉은색 셀로판지를 통해 벽에 은은하게 투사되고, 스모크 기계는 연신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두 사람은 지하 보일러실에서 분홍신에 얽힌 소름 끼치는 비밀을 알고 있는 곱사등이 노파를 만난다. 노파가 기거하는 보일러실의 보금자리는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예수가 그려진 교회 달력과 무당집에나 걸려 있을 법한 요란한 색채의 그림이 함께 걸려 있고, 어딘가에서 주워온 고가구 위로는 빨랫줄이 얽히고 설켜 있다. 은색 알루미늄으로 감싸인 보일러실 한쪽 벽이 백열등 조명을 반사하며 유난히 빛이 난다. “저 은색 알루미늄 벽도 미술감독님이 만드신 거죠?” “예? 그럴 리가….”

선재와 인철은 버려도 버려도 다시 돌아오는 분홍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곱사등이 노파를 집요하게 구슬린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노파의 경고뿐. “그렇게 예쁜 건 함부로 신는 게 아니야. 빨리 돌려줘. 안 그럼 그년처럼 너도 죽을거야.” “어떻게? 어떻게 돌려주란 말인가요?” 유난히 창백한 피부를 가리고 있는 단발머리 속에서 김혜수의 커다란 눈이 필사적으로 번득인다. “공포영화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영화들보다도 강하게 집중하는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래서인지 더 강렬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것 같다”는 김혜수는, <얼굴없는 미녀>에 이어지는 어두운 캐릭터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말에는 단호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어두운 이미지를 걱정하고 할 나이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내가 이미지를 먹고사는 배우는 아니지 않은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이후 두 번째 영화로 <분홍신>을 선택한 김성수는 틈만 나면 김용균 감독 옆자리에 앉아서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와니와 준하>(2003)로 익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분홍신> 현장에서의 김용균 감독은 세부적인 디테일을 배우들에게 지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최소한의 설정(“한 대사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변주해주세요”)만을 던져주고, 도출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에게 맡기고 간다. 물론 다른 느낌으로 한번 더 가보자고 제의하고나서, 그렇게 나온 여러 장면들 중에서 선택하는 자유는 충분히 누리고 있다.”

핸드헬드로 포착한 감정을 2.35:1로 펼친다

적막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지하 보일러실 장면에 이어 카메라는 지하 주차장으로 뛰쳐나온 노파를 둘러싼 선재와 인철이 공포에 휩싸이는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까다로운 장면이었다. 카메라는 세 사람을 따라서 계단을 뛰어오르고, 윽박지르는 선재와 인철, 미친 듯이 웃는 노파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배우들의 감정을 잡은 뒤, 무엇에 홀린 듯 딸의 이름을 외치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선재를 쫓아가다가, 피눈물을 흘리는 태수와 선재의 섬뜩한 대면까지 연결해내야 한다. 이 기나긴 장면을 카메라는 쉬지 않고 따라붙는다. 스테디캠은 없다. 모든 것은 핸드헬드에 의지한다. 이것은 김용균 감독이 내민 카드이며, 핸드헬드 촬영에 장기가 있는 김태경 기사를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분홍신>이 첫 장편 입봉작인 김태경 기사는 “핸드헬드로 찍으면 어렵다. 애초에 원하지 않았던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즉흥적인 느낌이 좋았다. 물론 초반에는 스테디캠과 핸드헬드를 병행하며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확신을 하게 되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김용균 감독이 원하는 것은 “스테디캠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공포는 아니”다. 그는 인물의 흔들리는 감정에 농밀하게 집중하고, 그렇게 카메라에 담은 인물의 심리를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를 원한다. 카메라는 연기자의 동선을 좇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감정을 좇는다. 설혹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뛰어가는 김태경 기사의 뷰파인더에서 갑자기 배우들이 사라져버린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핸드헬드로 찍힌 프레임의 빈 공간에는 여전히 인물의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와니와 준하>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피부 아래까지 파고들어 긁어냈던 황기석(<친구> <똥개>) 기사의 촬영을 기억한다면, 핸드헬드를 고집하는 김용균 감독의 의도가 ‘감정의 전달’에 있음은 또렷해진다.

한국영화로서는 흔치 않게도, <분홍신>은 2.35:1의 화면비율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구도와 인물을 제대로 활용하기에는 넉넉한 비율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김용균 감독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염려스럽기도 했다. 2.35:1의 화면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극장이 그리 흔하던가. 감독의 욕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 편집기사가 쉬는 틈틈이 편집하고 있는 지난 촬영분들을 훔쳐보고 난 이후였다. 화면은 종종 인물들을 한쪽 구석에다 몰아넣는다. 빛과 어둠이 한 화면 속에서 강한 콘트라스트를 지니고 나뉘며, 단조로운 콘크리트 벽면과 곡선의 파이프들이 대조를 이룬다. 주인공이 가시할 수 없는 부분에 뭔가가 놓여 있거나 튀어나온다. 화면의 어딘가에 음습하게 숨어 있는 공포감들은 1.85:1의 화면 속에서 제대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김용균이 만들어가는 감성적 미장센은 전체 화면의 채도를 낮추기 위해 필름의 은입자를 남겨두고 현상하는 블리치 바이 패스 기법(<친구>와 <살인의 추억>의 그 기법)과 전면적인 디지털 색보정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담겨질 예정이다. “과거의 장면들은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감을 살려 그냥 현상할 것이고, 현실의 숙명적인 암울함과 죽음의 장면들은 강한 콘트라스트와 질감을 살려내기 위해 블리치 바이 패스 기법으로 필름을 현상하기로 했다”는 것이 신창길 PD의 보충 설명이다. 기획영화로 시작된 <분홍신>은, 허투루 양산되는 여름용 공산품의 본질을 망각했음이 분명하다.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와 스탭들은 이미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고 있다.

장르의 컨벤션 속에 캐릭터의 진심을 담는다

10시께가 되어서야 10번의 기나긴 테이크 끝에 그날의 촬영은 완료되었다. 음산한 신도시의 밤길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김용균 감독이 올해 초에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장르영화의 전형성은 가져가되 이야기의 디테일이나 캐릭터, 프로덕션디자인에서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만들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7월 초 개봉을 앞둔 현재 공정은 85%. 촬영이 막바지에 달한 지금, 감독은 그때의 약속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김용균 감독은 결코 근사하게 말을 포장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촬영 중에 “아, 이 장면은 그 영화 생각나죠? 완전 클리셰네 클리셰”라며 웃기도 했는데, 폼나는 농담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자신감이 없는 감독이라면 쉬이 내뱉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농담은 일종의 진담일 것이다. 공포영화의 대가들에게도 완벽하게 새로운 장르영화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대신 김용균 감독은 장르의 컨벤션 안에 최대한의 감정을 담아서 날것 그대로 관객에게 던져주려고 한다(자진 검열의 아픔이 불가피해 보이는). 잘려나간 다리들만큼이나 깊숙이, 그러나 페이퍼컷처럼 얇고 세밀하게, 김용균의 잔혹한 동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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