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는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겠다. 그러나 전후 폴란드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 ‘노동자 영웅’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버렸는가를 그린 <대리석 인간>(cz owiek z marmuru)이나 연대노조 운동을 그린 <철의 인간>(cz owiek z elaza)은 실로 리얼리즘영화의 압권이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당통>이 소개됐다는 데,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바이다의 영화 <당통>이 지닌 매력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대변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바이다는 몇년 전 폴란드 신문 <가제타 뷔보르챠>와의 인터뷰에서, 연대노조운동에 참여하면서 부딪쳤던 운동 지도부의 다양한 성격들과 그에 대한 운동적 반성이 아닌 인간적 반성이 이 영화를 만든 동기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그러니까 연대노조운동의 프리즘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을 재조명한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오늘날의 사람들로 비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역사가 소불은 당통을 “서민적인 말투의 웅변가이며 수수한 차림새, 현실주의자이며,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동시에 술수에도 능하고, 배짱이 있고 향락적인 기질이며, 격정적이며 모질지 못한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섬세하게 연기한 당통의 이러한 성격은 금욕적이고, 냉정하며, 끊고 맺는 게 확실해야 하는 혁명가로서의 덕성과는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드파르디외가 연기한 당통의 자유분방한 태도는 부르주아적 퇴폐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폴란드의 유대계 배우 프쇼니악은 차갑고, 선병질적이며, 금욕적이고 원칙주의자인 로베스피에르를 연기한다. 당통이 초대한 거창한 저녁식사에서, 민중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르는 단호하게 호사한 음식과 고급 포도주를 거부함으로써 금욕적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특히 법정의 민중 앞에서 열정적으로 사자후를 토해내는 당통과는 대조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국민공회 연설은 치밀하게 계산된 차가운 이성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당통이 따듯한 인간성으로 혁명의 냉정함을 녹였다면,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인간성을 종속시켰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이미지이다. 이 영화에서 바이다가 선호하는 혁명가는 당통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됐을 때, 바이다는 로베스피에르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영화가 반혁명적이며 역사를 왜곡했고 로베스피에르의 역사적 의의를 깎아내렸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다.
내 나이 20대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이들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평가에 동조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민중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고급스러운 맥주를 마실 수 있냐며 소주병에만 코를 박고 있던 치기어린 나로드니키였고, 혁명만 일어나면 세상이 쉽게 바뀔 수 있다고 믿은 순진한 낭만주의자였다. 필요하다면, 인간도 기꺼이 혁명에 종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만만하게 본 나이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 영화를 30대 후반에 처음 보았다. 세상이나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갈 나이였고, 인간적 약점이 많은 혁명가 당통에게 더 친근감을 느꼈다. 나이 40을 훌쩍 넘기고도 불혹은커녕, “나는 유혹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다”는 버나드 쇼를 되새길 때가 많다. 완벽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보다 건달(?) 혁명가 당통이 내 마음에 더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혁명이 인간적인 약점까지 넉넉하게 보듬을 수 있었으면 하는 한가한 생각도 한편에는 있다.
성공한 혁명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가장 큰 약점은 인간적인 약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완벽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혁명가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왜 약점이냐고? 이들은 남들도 자신들처럼 혁명에 헌신적이고 완벽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혁명적 비극의 씨앗이 된다. 혁명이 인간을 전유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공한 혁명가보다 실패한 혁명가를 역사가로서 더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는 데 내 고민이 있다. 영화 <당통>의 기억이 있는 한, 평생 따라다닐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