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2회 아카데미상 [1] - 수상작 리스트
2000-04-04
글 : 황혜림
3월 26일 LA슈라인 오디토리엄서 열려, <아메리칸 뷰티> 감독·작품상 등 5개 부문 석권

미국적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된다

“뷰티-풀(beauty-full) 나이트.” 새 천년을 맞은 오스카의 선택을 한마디로 요약한 미국 현지 언론의 평대로,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메리칸 뷰티>로 가득한’ 밤이었다. 현지시각으로 3월26일 저녁, LA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뷰티>는 후보에 오른 8개 부문 가운데 5개 부문을 수상했다. 트로피 숫자만 따지자면 지난해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7개에 못 미치고, 재작년 <타이타닉>의 11개에는 절반도 안 되지만,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까지 노른자위를 휩쓸었다는 점에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성적이다. 수상부문이 주요부문들이라 후반부에 몰리는 바람에 3시간 가까이 박수치기에 바빴던 <아메리칸 뷰티>의 배우와 제작진들은, 촬영상을 필두로 작품상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의 하이라이트를 거의 독식했다.

익숙한 소재, 예측된 결과

<아메리칸 뷰티>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든 케빈 스페이시는, “오늘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앞으로 내리막길만 남은 게 아니어야 할 텐데”라며 웃음도 잊을 만큼 벅찬 표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이런 훌륭한 감독들과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만도 대단한 영광”이라는 감독 샘 멘데스,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상 시상대에 선 제작자 댄 징크스와 브루스 코엔도 기쁨에 겨워하기는 마찬가지. 멘데스를 발탁하고 <아메리칸 뷰티>의 제작을 성사시킨 드림웍스의 수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난해 수상자로서 감독상을 시상하러 나온 것까지, 시상식장은 <아메리칸 뷰티> 제작진의 가족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메리칸 뷰티>의 축제가 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아메리칸 뷰티>는 각종 비평가상, 골든글로브, 감독협회와 배우협회상 등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유수의 영화상에서 많은 상을 차지했음은 물론, <월 스트리트 저널>이 5천여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위원 중 300여명에게 실시한 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수상예상작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조사는 아카데미의 정보를 일부 사전 유출하고 흥미를 반감시킴으로써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여조연상 주요부문 수상작 5개 이상을 맞혔다.

<아메리칸 뷰티> 팀의 행복한 밤

이런 전초전이 아니더라도 <아메리칸 뷰티>가 오스카의 구미에 맞는 작품임을 짐작기란 어렵지 않았다. 미국 교외 중산층 가족의 붕괴와 중년남자의 위기라는 꽤 익숙한 소재를 끌어온 <아메리칸 뷰티>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속은 곪아터진 레스터 버냄의 가족을 통해 미국사회의 균열을 깊숙이 파고든 작품.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실패한 중년사내는 딸의 친구를 욕망하며 삶의 활기를 되찾고, 부동산 중개업자인 아내는 무능력한 남편을 무시하면서 겉돌고, 사춘기 딸은 그런 부모와 함께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그저 안정되게 살고자 하는 소시민의 소박한 희망마저 현실에서는 요원한 꿈이라 냉소하는 어두운 코미디지만, 옆집 소년 리키의 시선을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우기도 한다. 섬뜩한 냉소를 넘어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추인하는 <아메리칸 뷰티>의 여유는 오스카의 구애를 받기에 충분했다. 파괴적인 냉소와 어두움 때문에 아카데미의 냉대를 받았던 <지옥의 묵시록>이나 <택시 드라이버>와는 달리 미국사회의 이상주의, 곧 ‘미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한가닥 온정이 배어 있는 까닭이다.

작품상도 작품상이지만, <아메리칸 뷰티>로 데뷔한 영국 출신 신예 샘 멘데스의 감독상 수상 여부도 관심을 모았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각각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나눠준 지난해과 달리, 올해 아카데미는 다시 두 상을 한 작품에 몰아주는 전통으로 돌아갔다. 올해 감독협회의 감독상을 수상한 멘데스는, <마티>의 딜버트 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로버트 와이즈와 공동연출한 제롬 로빈스, <보통 사람들>의 로버트 레드퍼드, <애정의 조건>의 제임스 L. 브룩스,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에 이어 데뷔작으로 오스카를 안은 감독이 됐다. 대부분의 할리우드가 거절한 시나리오를, 영국의 젊은 연극연출가에게 맡겨 영화로 만든 스필버그의 도박은 최적의 선택으로 판가름난 셈이다.

여우주연상 이변, 진보적인 오스카?

힐러리 스웽크

5개 부문을 수상한 <아메리칸 뷰티>의 축제 대열에서 아네트 베닝이 빠지고 힐라리 스왱크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올해 아카데미의 이변 아닌 이변. <월 스트리트 저널>에 예견된 사실이긴 했지만,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남자로 살고 싶어하다가 견고한 사회적 편견에 부딪혀 좌절당한 소녀 브랜든 티나의 실화를 연기한 스왱크의 수상은 아카데미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평론가 리사 슈바르츠바움은 “스왱크의 뛰어난 연기가 여우주연상감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오스카는 아네트 베닝의 차지일 것”이라 생각했다며, 오스카를 과소평가한 모양이라고 논평했다. 나이도 많고 보수적인 아카데미 위원들에게 <소년은…>은 너무 음울한 이야기인 반면, 베닝은 할리우드의 고급 중견 연기자의 대명사고, 남편 워런 비티도 특별상을 수상하게 돼 있으며, 심지어 시상식 무대에서 아이를 낳을지 모를 만큼 만삭인 상태로, 더없이 드라마틱한 수상자감이었다는 얘기다. <베벌리힐즈 90210>을 비롯한 TV 시리즈물에 얼굴을 내밀었을 뿐인 힐라리 스왱크는 첫 주연작으로 아카데미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물론 이 하나의 선택으로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변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전통적으로 주제가상 후보 전곡을 라이브로 공연하는데, 방송을 탈 수 없는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사우스 파크>의 주제가 <Blame Canada>가 과연 제대로 공연될 것인가는 시상식 전부터 화젯거리였다. 결과는? 원래 규모대로 재현하기 어려운 만큼 애드립의 귀재 로빈 윌리엄스가 공연을 맡았고, 입에 검정 테이프를 붙이고 나와 욕설투성이인 앞부분을 넘기되 대부분의 가사를 그대로 부르는 절충안을 택했다. 주제가상이 <Blame Canada> 대신 필 콜린스가 부른 <타잔>의 삽입곡 <You’ll Be in My Heart>에 돌아간 것도 아카데미의 보수적 성향을 보여준다는 평가. 스페이시의 수상에 이의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64년 시드니 포이티어 이후 두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될 지 관심을 끌었던 덴젤 워싱턴의 수상이 불발에 그친 데는 흑인배우에 인색한 아카데미의 보수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메리칸 뷰티>의 선전으로 지난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놓친 작품상까지 거머쥐면서 드림웍스는 5년여 만에 아카데미 등정의 숙원을 이뤘다. 막대한 사전홍보에 힘입어 97년 <잉글리쉬 페이션트>, 99년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라이벌 미라맥스를 누르고 승기를 잡은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선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드림웍스도 홍보에 힘을 쏟았다고. 1500만달러의 저예산영화, 그것도 가족붕괴와 호모포비아, 마약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전국적으로 개봉했다는 것부터가 굉장한 홍보라는 게 제작자 댄 징크스의 말이다.

외면당한 <식스 센스>와 <인사이더>

빌리 크리스탈

상대적으로 홍보전에 주춤했던 미라맥스는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사이더 하우스 룰스>로 남우조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각각 7개 부문,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아메리칸 뷰티>와 경합을 벌였던 <인사이더>와 <식스 센스>는 단 1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타이타닉>과 <포레스트 검프>를 제외하고 2억달러 넘게 벌어들인 흥행 영화에 작품상을 준 일 없는 아카데미에서 <식스 센스>의 상업성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었고, 담배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인사이더>의 비틀린 영웅상과 복합적인 주제는 좀더 명확한 감동을 원하는 아카데미가 반기기에 너무 꼬여 있다는 후문이다. 오히려 주요부문 수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첨단기술에 관련해서만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매트릭스>는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4개의 상을 몰아서 수상기록 2위에 올랐다.

작년 진행을 맡았던 우피 골드버그가 실각하고 ‘구관’ 빌리 크리스털이 다시 사회를 맡은 시상식은 무려 4시간이 넘도록 지속됐다. 자꾸 길어지는 시상식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예년에 비해 춤과 노래의 쇼를 대폭 줄이고도 거의 최장기록을 세운 이번 시상식은 현지 언론으로부터 필요 이상으로 늘어진다는 빈축을 샀다. 어쨌거나 <ABC>에서 방영된 시상식은 미국에서만 지난해보다 900만명이 는 7900만여명이 시청했고, 이는 <타이타닉>의 독무대였던 70회 시상식에 이어 지난 5년간 두 번째로 높은 29.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상식을 불과 열흘 남겨두고 시카고의 R.S. 오웬스 공장에서 LA로 배달되던 오스카 트로피 55개가 분실됐다가 사흘 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전대미문의 해프닝과, <월 스트리트 저널>의 수상작 정보 누출 보도 사건까지 유난히 시끄러운 전야제를 치른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새 천년에도 쇼는 계속된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위력은 시상식이 끝난 뒤에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당장 올해 시상식이 끝난 다음날인 27일, <아메리칸 뷰티>는 북미에서 1주 전 수익의 2배가 넘는 72만달러가량을 벌어들였고, <사이더 하우스 룰스>도 8만달러가 늘어난 3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1주 전 6만4천달러를 벌어들였던 <소년은 울지 않는다>도 13만6천달러로 2배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1년간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산물을 평가하는 자축연일 뿐 아니라, 영화시장과 흥행수익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홍보의 장인 것이다. 또한 할리우드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물론 세계의 관객이 주시하는 희대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71년간 그래온 것처럼, 새로운 밀레니엄에도 쇼는 계속될 것이다. <타이타닉>이나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비해 한결 어두워졌지만, 미국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은 <아메리칸 뷰티>로 ‘미국적 아름다움’의 폭을 한뼘 넓혀가면서 말이다.

수상작 리스트

작품상 <아메리칸 뷰티>(제작 브루스 코엔, 댄 징크스)

감독상 샘 멘데스(<아메리칸 뷰티>)

남우주연상 케빈 스페이시(<아메리칸 뷰티>)

여우주연상 힐라리 스왱크(<소년은 울지 않는다>)

남우조연상 마이클 케인(<사이더 하우스 규칙>)

여우조연상 안젤리나 졸리(<처음 만나는 자유>)

각본상 앨런 볼(<아메리칸 뷰티>)

각색상 존 어빙(<사이더 하우스 규칙>)

촬영상 콘래드 L. 홀(<아메리칸 뷰티>)

미술상 릭 하인리히, 피터 영(<슬리피 할로우>)

의상상 린디 헤밍(<뒤죽박죽>)

음향상 존 T. 레이츠, 그렉 루돌프, 데이비드 E. 캠벨, 데이비드 리(<매트릭스>)

편집상 자크 스탠버그(<매트릭스>)

음향효과편집상 데인 A. 데이비스(<매트릭스>)

시각효과상 존 개터, 재니크 시어스, 스티브 커틀리, 존 섬(<매트릭스>)

분장상 크리스틴 블런델, 트레포 프라우드(<뒤죽박죽>)

주제가상 필 콜린스(<타잔>)

작곡상 존 코릴리아노(<레드 바이올린>)

단편 애니메이션상 <노인과 바다>(감독 알렉산더 페트로프)

단편 극영화상 <우리 엄마는 뉴욕에서 사탄의 제자가 되기를 꿈꾼다> (감독 바버라 쇼크, 태미 티엘)

단편 다큐멘터리상 <킹 김프>(감독 윌리엄 A. 화이트포드, 수잔 한나 해더리)

장편 다큐멘터리상 <9월의 하루>(감독 아서 콘, 케빈 맥도널드)

외국어영화상 <내 어머니의 모든 것>(스페인)

공로상 안제이 바이다

어빙 탈버그상 워런 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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