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적 캐릭터, 관심 없다"
-전작 <히트>를 두고 대히트를 예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그렇지 못했다.
=러닝타임(171분)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 하루 통상적으로 3회 상영할 수 있는 영화를 2회밖에 못 틀었으니. 미국 내에서 7500만달러∼8천만달러를 벌었고, 해외에선 그 두배 정도 벌어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디오와 DVD로는 꽤 장사가 됐다고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도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처음부터 거대한 스크린에 보여줄 요량으로 영화를 만든다. 비디오와 DVD의 활성화가 다행스런 점도 있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틀고 보여주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의 이상이다. 관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리지널 명화보다 컬러 복사기의 수십번째 프린트를 더 좋아하는 이는 없지 않나.
-액션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실화에 근거한 리얼한 사회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가지 선택만 가능한 건 아니다. <히트>에서는 실감나는 액션묘사뿐 아니라 캐릭터간의 드라마틱한 관계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애슐리 저드와 발 킬머의 관계가 특히 그랬다. 반드시 그들 부부 사이의 끈끈한 친밀감과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느낌 안에 담아내려했다.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는 사실로 통하게 마련이다. <히트>에 리얼리티를 보탠 TV시리즈 <마약전쟁>은 멕시코에서 고문당한 다음 살해된 DEA(마약단속기구) 요원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TV시리즈 <범죄 이야기> 역시 터무니없는 픽션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재료로 썼다. 나는 실제 사례를 조사하고 탐구한 뒤 드라마로 발전시키는, ‘지난한’ 작업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주로 반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런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리는가.
=그 인물이 얼마나 다면적인가, 입체적인가를 본다. 한 가지 얼굴로 굳어 있는 영웅들이란 얼마나 따분한가. 평범한 듯하다가 어떤 극적인 계기로 영웅의 면모를 드러내는, 2차원적인 주인공들이 흔한데, 난 그런 캐릭터들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에겐 감정의 폭발력이 없다. 이를테면 나는 <인사이더>의 제프리 와이갠드와 스스로 동일시했다. 결점이 많고 모순투성이인 그가 친근하고 정이 가는 건, 그만큼 리얼하기 때문이다. 이혼을 예로 들어보자. 그런 중요한 결정을 단 한 가지 사건이나 계기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년 동안 끙끙 앓다가 어렵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고, 그런 번뇌와 숙고의 과정으로 이뤄진 것이 바로 인생이다.
-<마이애미 바이스> 시절부터 스피드와 리듬의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인사이더>의 경우는 인물 묘사와 발전 속도가 더디다.
=늘어진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관객에 따라선 답답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제와 관련된 부분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의 가장 기본적인 의도는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투영하는 것이다. 담배에 대한, <CBS>에 대한 영화보다는, 우리네 삶을 다룬 영화로 이해되길 바랐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다. 플롯이든 배경이든, 관객이 인물과 그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게 짜져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인물을 프레임에 가두는 등 화면 짜임이 독특했다.
=영화의 1/3 이상은 직접 촬영을 지휘했다. 관객이 어깨에 카메라를 얹은 채 렌즈로 직접 들여다보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동화하길 바랐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일, 그 안의 배우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운 도전이다. 때로 카메라를 통해 응시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나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피사체가 스크린에 펼쳐져 보인다. 그건 단순히 카메라의 위치가 아니라, 구성의 문제라는 얘기다.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프레임, 그 속에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있고, 영화의 리듬과 테마가 있다.
<TNT 러프 컷> ‘마이클 만과의 대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