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및 초청 감독 발표
2000-03-28
글 : 김혜리
우리는 대안영화의 팬!
전주국제영화제 기자회견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4월28일∼5월4일)가 베일을 벗었다. 지난 3월22일 종로 동아생명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주영화제 집행부는 상영작 및 초청 감독 명단을 발표하고 상영작 하이라이트 편집본을 선보였다. 첫 번째 페스티벌을 찾은 관객을 맞이할 영화들은 총 23개국에서 온 150여편. 김소영, 정성일 두 프로그래머가 작품 선정과정에서 으뜸으로 적용한 기준은 대안성이다. 영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싸움 최전선에 서 있는 영화들이 앞줄에 세워졌다.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미드나잇 스페셜’ 섹션 등에 편성된 B급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도 장르적 쾌락, 활동사진적 즐거움보다 대안성에 악센트를 두었다고 첨언했다.

메인 프로그램-영화의 미래

공식 포스터

전주영화제 메인 프로그램은 대안영화와 디지털영화, 아시아 인디영화라는 세 기둥으로 떠받쳐진다. 그 가운데토막 격인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서는 “과연 전주영화제가 말하는 ‘대안’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열아홉 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여성의 성욕을 탐색한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로망스>, 섹스와 로맨스의 이음매를 더듬은 <포르노그라픽 관계>, 제인 캠피온 감독의 <홀리 스모크>가 칸, 베니스 등 유럽영화제에서 얻은 호평을 한국 관객에게 확인받는다. 이제껏 접해온 중국 독립영화와 사뭇 다른 지하전영(電影)의 비밀스런 힘을 엿보게 하는 자오 지송 감독의 <풍경>과 중국 본토 상업영화의 신조류를 맛보게 해줄 장양 감독의 <샤워>도 나란히 초청됐다. ‘시네마스케이프’의 또다른 자랑은 도널드 캠멜 감독의 <와일드 사이드> 디렉터스 컷. 자살한 캠멜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마구 잘린 비디오로 출시됐다가 캠멜 사후에야 감독 편집판이 공개됐다. 일본에서는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과 야쿠치 시노부의 <아드레날린 드라이브>가 전주를 찾아오며, <러브레터>의 가시와바라 다카시가 주연한 천이원 감독의 블랙코미디 <지금, 죽고 싶은>이 대만에서 온다. 1976년작 <2000년에 스물다섯살이 되는 요나>와 묶여 특별상영되는 알랭 타네르 감독의 신작 <요나와 릴라>도 이 섹션의 별미. 전주영화제만의 안목으로 까다롭게 선택될 것이라는 장·단편 한국영화들은 따로 묶여 상영되며, 초청 경선 형식으로 운영될 단편영화 부문에서는 최우수작으로 선발된 영화에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브레야 감독의 <로망스>

경쟁부문인 ‘N-비전’ 섹션은 전주영화제가 최대 화두로 붙든 디지털영화의 전지구적 지형도를 펼쳐보일 마당. ‘도그마95’ 순결서약의 진화 현황을 보여주는 프렌치 도그마의 첫 작품인 <연인들>, 올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후보작이기도 한 빔 벤더스의 <브에나 비스타 소시얼 클럽>, <해피투게더>의 미공개 장면이 포함된 메이킹필름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등 18편이 상영된다. 디지털 포맷으로 출품된 영화는 디지털 프로젝터로 영사한다. “프로그래머들도 굉장한 발견의 기쁨을 누렸다”는 김소영 프로그래머의 소감대로 ‘N-비전’은 디지털 영화만의 영상미를 선보일 존 아캄프라의 <안개의 기억>부터 줌이나 편집없이 ‘원 신-원 컷’에 담은 익살스런 14개 에피소드를 엮은 일본의 <윈피스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영화의 다재다능함을 관객에게 실감하게 할 전망이다. ‘N-비전’에 각각 두편의 영화를 출품한 디지털영화의 대표적 작가 존 조스트와 존 아캄프라, 그리고 <원피스 프로젝트>의 야쿠치 시노부 감독은 직접 전주영화제를 방문해 그들의 실험을 놓고 영화제 관객과 토의를 벌인다.

일본, 대만, 중국의 인디영화 가운데 국제 무대의 인증을 거친 수작들을 뽑아 청한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에서는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스와 노부히로의 <M/Other>, 지아 장커의 <샤오샨의 귀가>, 천 위신의 <러브 고고>, 우익 국수주의 밴드를 이끄는 10대 여성 록커와 좌파 영화감독이 손잡고 만든 다큐멘터리 <새로운 신(神)-포스트 이데올로기> 등 19편의 패기만만한 아시아영화를 만날 수 있다. 전주영화제가 영화상영 다음가는 영화 잔치의 주요 기능, 즉 영화공동체 형성의 씨앗 역할을 수행할 공간도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이다.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전주에 온 관객이 새로운 영화 커뮤니티에 동참하고 증인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섹션 2000 - 영화의 고집과 자유

<사탄 탱고>

‘섹션 2000’은 비타협적인 영화들, 분방한 영화들이 난장(亂場)을 벌이는 공간이다. ‘오마주와 회고전’의 오마주 섹션은 60년대부터 99년작 <남쪽>까지 여성주의 영화를 생산해온 샹탈 애커만, 타르코프스키의 적자로 불리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현재 가장 중요한 아시아 작가로 꼽히는 허우샤오시엔에게 경의를 바친다. 각 감독마다 다섯편에서 일곱편의 작품을 상영해 필름으로 이들의 영화를 볼 기회를 아쉬워했던 관객에게는 샘물 같은 기회. 특정 주제를 파고드는 회고전 섹션이 선택한 원년의 주제는 정치적 아방가르드 영화. 영화 교과서에 실린 사진으로만 눈에 익은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비롯한 1920년대 러시아 무성 영화 세편과 요리스 이벤스의 유작 <바람 이야기>, 인도 감독 리트윅 가탁의 <강> 등이 그들이 처했던 시대와 현실을 고스란히 안고 고사동 극장가를 찾는다. 한편 ‘미드나잇 스페셜’은 영화 페스티벌이 열렸다하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영화광들을 위한 사흘간의 밤샘 파티다. 첫날 마련된 로저 코먼 감독의 밤은 코먼이 자선한 대표작 세편 <환각 특급> <흡혈 식물 대소동> <기관총 엄마>이 상영된다. 로저 코먼 감독이 직접 영화제 관객과 자신의 영화를 보고 더불어 새벽을 맞을 것이라고. ‘아시아의 위험한 밤’으로 명명된 둘째날 밤에는 세편의 일본 호러 <히스테릭> <철남> <사국>이 아시아인의 패닉과 판타지 속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마지막 ‘미드나잇 스페셜’은 7시간 18분의 상영시간만으로도 하나의 이벤트가 될 헝가리영화 <사탄 탱고>가 홀로 책임진다. 한달 앞서 라인업을 공개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에서는 디즈니와 저패니메이션에 길든 관객에게 ‘개안’의 경험을 가져다줄 얼터너티브 애니메이션들이 울타리를 모르는 상상력으로 도발적인 주제와 참신한 소재들을 주물러보인다.

특별기획, 그리고 초대받은 손님들

허우샤우시엔 감독의 <샌드위치 맨>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의 진척 상황도 보고되었다.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세편 모두 촬영이 마무리됐고, 송길한 작가가 집필하고 변영주 감독이 전주지역 영화인들과 더불어 만든 다큐멘터리 <지역 영화사- 전주>는 가편집 단계에 들어갔다고 김소영 프로그래머는 전했다. 디지털 워크숍 상영작과 함께 공개된 초청 감독 명단에는 아주 친숙한 이름들과 생경한 이름들이 섞여 있다. 허우샤오시엔, 왕가위, 차이밍량, 로저 코먼, 지아 장커처럼 부산과 부천국제영화제 등의 경로로 한국 관객과 인사를 나눈 시네아스트들이 있는가 하면 아모스 기타이, 존 조스트, 존 아캄프라, 왕 취엔안, 오비타니 유우리, 완련, 훙훙, 마에지마 켄이치, 쓰치야 유타카, 황위션, 이지 바르타, 수잔 피트는 전주영화제를 통해 우리와 거리를 좁힐 감독들이다. 감독 외에 전주를 방문할 해외 영화인들의 이름은 확정되는 대로 발표된다.

첫회 영화제로서 대중의 시선을 휘어잡을 만한 프로그램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겠냐는 염려에 대해 김소영 프로그래머는 “시네마스케이프 부문같은 경우, 내부적으로 이거 너무 흥행 위주 영화제 아느냐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도발적이고 폭발력 있는 영화들이 많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개봉일정 등을 고려하느라 아직 최종상영작이 확정되지 않은 한국영화 21편(장편 6편, 단편 15편)의 리스트는 추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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