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해적’ 게 섰거라! 탕. 탕. 탕. <태풍> 촬영현장
2005-06-07
글 : 김도훈
사진 : 이혜정
장동건·이정재 주연의 <태풍> 부산 촬영현장

서로에게 총을 겨눈 두 남자. 호텔 회전문 앞의 깨진 유리조각들.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피를 쏟는 벨보이. 코를 시큼하게 만드는 화약냄새.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파란 천막 속 단단한 몸집의 감독이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고, 그 주위를 수십명의 스탭, 100여명이 넘는 기자단과 마을나온 해운대 주민의 탄성이 감싸고 있다. 지난 5월26일, 부산 해운대 그랜드 호텔 로비 앞에서 진행된 <태풍>의 현장은 인파의 태풍에 휘말려 있다.

<태풍>은 탈북을 감행했으나 남한쪽의 거절로 가족을 잃고, 동남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대해적이 되어 복수를 다짐하는 씬(장동건)과 이를 막으려는 해군 특수전 장교 강세종(이정재)의 격돌을 그리는 작품. 이날의 촬영은 두 사람이 호텔 로비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장면을 위한 것이었다. 조용한 접촉이 아니라 탄창이 사방에 튀어오르는 격렬한 만남이다. 곽경택 감독은 수줍음과 거리가 먼 부산 사나이. “이번에는 슬로 모션으로 함 가보자! 레디이이! 액숑!” 확성기를 뚫고 나오는 시원한 경상도 사투리가 일순간 현장을 침묵시킨다. 그리고는 탕. 탕. 탕.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씬의 총탄을 피해 바닥을 날렵하게 구르는 강세종. 접근금지 가드레일은 감독과 배우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게 가로막고 있지만, 두 남자의 액션은 근사하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인한 <태풍>은 현재까지 75%의 촬영을 마친 상태. 예상보다 조금 늘어난 촬영기간이 말해주듯, 지난 여정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타이 로케이션 마지막 날의 현장은 쓰나미가 할퀴고 지나갔고, 특수효과를 위해 세운 강원도 세트장에는 화마가 닥쳤다. 곽경택 감독은 “한국영화 기술력의 최대치를 보여주겠다는 처음의 다짐처럼, 고생한 만큼 좋은 장면들이 나와줘서 겁나지 않는다”고 두둑한 배짱을 과시한다. 타이와 부산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의 다음 행로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태풍>은 기나긴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곽경택 감독의 말처럼, 12월 개봉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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