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로 간 일본 호러 [1]
2005-06-07
글 : 김도훈
<링2>와 <그루지>로 보는 할리우드의 일본 호러 리메이크의 도전과 성과

‘아시아의 원혼’은 어떻게 할리우드에 이식됐나


고어 버빈스키가 감독한 <링>이 북미에서만 1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던 2003년은 J호러(일본 호러영화를 일컫는 일본과 서구의 호칭)의 할리우드 침공 원년이었다. 예상을 넘어서는 흥행에 고무된 할리우드는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 <여우령> <카오스>, 시미즈 다카시의 <주온> 등 구미가 당기는 J호러의 판권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통역불능(Lost in Translation)의 가능성이었다. 제작자들은 J호러라는 물건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마음대로 손을 대기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 수 없는 공포의 근원을 생생하게 회치기 위해 할리우드는 호러의 사무라이들을 불러들였고, 나카다 히데오와 시미즈 다카시는 <링2>와 <그루지>라는 서로 다른 J호러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두 작품이 박스오피스에서 또렷한 성공을 거둔 지금, J호러의 할리우드 이식은 어떤 성과를 낳은 것일까. 오리지널과의 비교와 할리우드에서의 평가를 통해 J호러의 도전을 살펴보았다. “미국인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나카다 히데오와의 인터뷰는 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하고 링 바이러스를 되살려낸 J호러 제왕의 고민을 전해줄 것이다.

2004년, 나카다 히데오는 마크 월버그 주연의 스릴러영화 <진정한 신자들>(True Believers)의 감독으로 고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MGM의 합격점을 받지 못한 시나리오로 인해 프로젝트는 난관에 봉착했고, 나카다는 잠시 실직자 상태로 할리우드에 머물고 있었다. 드림웍스는 에렌 크루거(<링> <스크림3>)가 쓴 미국판 <링2>의 대본을 재빨리 그에게 보냈다. “일본판 <링2>와는 매우 다른 오리지널 대본이었고, 미국판 <링>이나 일본판 <링2>와는 전혀 다른 <링2>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에 흥미를 느낀” 나카다 히데오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미즈 다카시의 경우도 비슷했다. 호러영화 제작사인 고스트 하우스 프로덕션을 차린 샘 레이미는 우연히 <주온>을 보게 되었고, 미국 호러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공포를 자아내는 J호러에 매력을 느낀 그는 시미즈 다카시에게 감독직을 선뜻 제안했다(시미즈 다카시는 “너무 놀라서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되물어보았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2004년 10월에 전미 3245개관에서 동시 개봉한 <그루지>는 첫 주말에만 4천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했고, 최종적으로 1억1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2005년 3월에 전미 3332개관에서 개봉된 <링2> 역시 프랜차이즈 호러영화로서는 든든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링2>는 첫 주말에만 36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현재까지 7600만달러의 수익을 쌓아놓았다. 블록버스터의 특수효과비 정도에 불과한 예산으로 만들어진 호러영화가 이같은 흥행성적(특히 첫 주말의 폭발적인 성적)을 올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낯설지만 신기” 리메이크마다 박스오피스 1위

<그루지>

관객의 호기심에 찬 반응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의 평가는 그리 후한 편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관객보다도 호러영화의 컨벤션 속에서 J호러를 이해하려는 평자들의 방어적인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미국 호러영화들은 눈에 보이는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이 유령을 포함해 보이지 않는 공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블 데드>나 <엑소시스트>에서 볼 수 있듯이 원혼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원혼으로 인해 벌어지는 신체적 변화에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서구영화에서의 원혼이라는 존재가 신과 악마, 선과 악의 이분법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J호러는 다르다. 희생자들에 대한 자비나 구원은 드물고, 원혼에 대한 인과응보도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다. 신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하다. 악마적인 존재가 자주 승리를 쟁취하는 것 역시 서구 관객(심지어 비슷한 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 속에서 한풀이를 보고야 말겠다는 한국 호러영화와 한국 관객)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다. 미국 <프리미어>의 피터 디브루그는 이같은 전제를 토대로 <링2>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서구인들은 원혼을 믿지 않는다. 일본의 유령 이야기들을 미국 관객이 공명하도록 만들려면 반드시 뭔가 다른 방식으로 통역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링>이 호기심이 불러오는 두려운 결과에 대한 영화고, <그루지>가 낯선 동양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공포를 토대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링2>는 원혼인 사마라에 포커스를 맞추었을까. 첫 영화에서 그토록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켰던 비디오테이프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링2>가 덜 무서워진 이유로 일본 감독인 나카다 히데오의 기용을 꼽는다. “일본인 감독이 원혼 그 자체를 공포스럽다고 믿는다면, 제작진은 원혼이 무서운 존재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제작자들은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을 언제나 모른 척해왔다. 동양적인 유령에 대한 접근법이 완벽하게 미국식으로 번역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일리가 있다. <링>의 비디오테이프는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바이러스’처럼 여겨졌고, 이는 미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도시전설’과 엮이면서 큰 공포심을 끌어냈다. 하지만 원혼 그 자체는 어쩌면 서구인들의 근원 깊숙한 곳을 찌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낯선 존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것이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문화적 이질감을 깨라” 원작 일본 감독 기용

<링 2>

<그루지>와 <링2>에서 보여지는 단점은, 문화적인 정제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 통역불능(Lost in Translation) 현상에서 오는 것일 가능성도 크다. <그루지>와 <링2>는 그것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다. 시미즈 다카시가 고유의 일본 스탭들을 그대로 데리고 일본에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던 순간부터 <그루지>의 허점은 예상됐다. 각색을 맡았던 스티븐 수스코는 “오리지널의 뒤를 따르고 싶지도 않았지만, 오리지널 스토리를 깨고 싶지도 않았다”며 곤혹을 토로했지만, 결국 원혼이 생겨난 근원을 주인공의 눈앞에 늘어놓는 것 외에 <그루지>가 <주온>으로부터 달라진 점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공들이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은 일본판의 주인공들처럼 ‘그 집’에 갔다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할 뿐 속수무책이다. 일본에 정착한 서구인들의 폐소공포증과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두려움은 ‘지켜볼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스럽지만, 관객이 주인공들에 동참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즐길 ‘인과관계’는 미국인 각본가의 손질에도 불구하고 단단하지 못하다. 이렇듯 <주온>의 가장 큰 단점으로 이야기되었던, 인과관계를 요구할 수 없는 순수한 공포를 아무런 수정없이 가져온 것이 <그루지>의 단점이 된 듯하다. 물론 시미즈 다카시가 이야기하듯 “간단하게 관객을 겁주는 데만 주력하는 미국 호러에 비해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J호러”의 숨결을 그대로 지닌 <그루지>는 <주온>의 습한 공포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고, 전통적인 할리우드 방식과는 다른 공포를 느끼고 싶어하는 미국 관객의 호기심을 성공적으로 끌어모았다. 다만, 두 번째 도전에서도 똑같은 방법이 미국 관객에게 먹힐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시미즈 다카시는 현재 <그루지2>의 제작에 착수했는데, 이번에는 토시오 가족의 원혼이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 <그루지>를 전편과 연결하는 것은 마지막 생존자인 사라 미셸 겔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판 <주온2>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야만 축축한 원혼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2편은 전혀 다르게, 전편 주인공 매개로 각본 새롭게

<링 2>

<그루지>의 속편이 구사해야 할 미래의 전략은 나카다 히데오와 드림웍스가 <링2>로 충분히 예습해놓았다. 드림웍스는 같은 형식을 반복해서 약효를 떨어뜨릴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고, 서구 관객에게 도저히 먹혀들지 않을 나카다 히데오의 오리지널 <링2>나 스즈키 고지의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의학스릴러 <라센>을 리메이크할 의향도 없었다. <그루지2>가 사라 미셸 겔러를 전편과 후편을 잇는 매개체로 활용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링2>의 제작진은 나오미 왓츠의 캐릭터를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각본을 만들어냈다. 나오미 왓츠가 연기한 레이첼은 전편의 결말에서 아들을 위해 저주받은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한다. 그리고 모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시애틀에서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다. 그러나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현장에서 또다시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고, 레이첼은 비디오테이프를 불사르지만 사마라의 원혼은 비디오테이프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들인 에이단 앞에 수시로 나타난다. 사마라의 영혼은 이제 부활하기 위해 에이단의 육체를 원하는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는 영화 사상 가장 오싹한 원혼한테 살해당한 남자의 젊은 연인(나카타니 미키)을 주인공으로, 마치 외전(Spin-off)을 창조하듯 일본판 <링2>를 만들어냈었다. 할리우드의 <링2>와는 전혀 다른, 유사심리학과 싸구려 SF의 매력이 뒤섞인 작품이었다. 할리우드의 <링2>는 모정을 주요 테마로 다룬다는 점에서 일본판 <링2>보다는 <검은 물 밑에서>와 닮아 있다. 나카다 히데오는 “<링2>의 주제는 모정이다. 일본판 <링>과 <검은 물 밑에서>와 공통점을 지닌 것이다. 잔인한 운명에 맞서서 아들을 보호하려는 레이첼의 모성을 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라며 직접적으로 수긍한다.

<링2>의 모성이라는 주제가 문화적 통역을 거치면서 조금 뻣뻣해진 경향이 있음은 큰 흠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미국 비평가들은 사마라의 엄마 역을 연기한 시시 스페이섹이 <캐리>를 연상시키며 나타나 “니 아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들어, <링2>에서 ‘좋은 엄마 되기의 강박’을 읽어낸다. <롤링 스톤>의 피터 트레버스는 나오미 왓츠의 결정적인 대사, “나는 니 X같은 엄마가 아니야!”(I’m not your fucking mommy!)를 들었을 때 이 영화가 호러영화가 아니라 아동학대의 암시를 지닌 스릴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악마의 씨>를 사탄의 아이를 가졌다고 믿는 신앙심 없는 신부에 대한 가톨릭 우화라거나 <엑소시스트>를 악마가 아니라 무관심한 영화배우 엄마에 의해 고통받는 소녀의 이야기로 읽는 현대 미국 평론가들의 강박증일 수도 있다. “가장 신경을 써서 만든 레이첼의 감정적 여정은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는 나카다 히데오의 말처럼, <링2>에서 드러나는 모성의 테마는 충분히 나카다 히데오적이다. 에렌 크루거가 쓴 상투적 대사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이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하는 동안 나카다 히데오는 <검은 물 밑에서>의 주인공인 요시미가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보여주었던 모성의 힘을 오롯이 살려낸다. <엑소시스트>에서 레건의 엄마는 악마에 들린 딸의 구원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힘겨워할 뿐이지만, 레이첼과 요시미는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링 2>의 나카다 히데오 감독.
<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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