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의 강도를 높여라” 특수효과 가미
<링2>는 기술적으로도 복합적인 텍스트다. 일본 감독이 일본식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낸 <그루지>는 서구적 취향으로 호러를 드러내기가 어렵지 않은 데 비해 미국 언론들이 <링2>에 보내는 비평은 호평이건 악평이건 간에 꽤나 다층적이다. 특히 도드라지는 특수효과의 이용에 대한 비평가들의 의견은 어딘가 모순이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링>을 가장 무섭게 만들었던 것들, 일상적인 물건과 관습들이 던져줄 수 있는 공포가 특수효과의 축제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링2>가 고어 버빈스키가 감독한 <링>보다도 더 미국적이라고 지적했고, <LA타임스>는 “나카다 히데오는 그에게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의 특수효과를 보여주려는 매혹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시시 스페이섹의 등장이 에이단의 방에서 불타는 CG나무의 형상보다도 훨씬 오싹하다”고 실망을 표한다. 그러나 로저 에버트가 “등장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한, 사슴이 레이첼 모자가 탄 자동차를 공격하는 장면(** 아트님, 이 부분에 ‘사슴 공격 시퀀스’의 스틸 넣어주세요)은 <링2>의 가장 기억할 만한 시퀀스다. 이는 고어 버빈스키의 전작에서 등장했던 ‘배 위에서 날뛰다가 자살하는 말’의 시퀀스처럼 제작자들이 고안해낸 아이디어다. 나카다 히데오는 이 장면이 “시각효과 기술을 살려서 미국 관객을 위해서 만들어넣은 장면”이라고 말하지만, “전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말이 미쳐서 날뛰다가 자살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이 환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저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일본판 <링>의 희생자들과는 달리 미국판 <링> 시리즈에서는 릭 베이커의 특수분장이 도드라진다. 나카다 히데오는 이런 차이점을 흥미롭게 여긴다. “나는 그런 차이점이 너무 좋다. 일본에서야 자금사정 때문에 배우들에게 입 열고 숨을 최대한 참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 눈은 항상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는 그 장면에서 프레임을 아예 멈추어버렸다. (웃음) 일본에서는 이처럼 로 테크를 쓴다. 일본과 할리우드의 차이점이 이런 것이다. 미국식 방법은 매우 발전된 것이고 정교하다. 보는 것이 즐겁다.” 특수효과 장면들을 최소화해서 ‘로 테크’의 묘미를 가져오려 노력한 시미즈 다카시와는 달리 나카다 히데오는 새로 생긴 장난감을 이용하는 데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건 함정일 수도 있지만, 나카다 히데오는 기꺼이 함정에 빠져 충분한 효과를 거둔다. 비평가들은 특수효과의 과잉사용을 비난했지만, 이같은 할리우드적 손질없이 <링2>가 미국 관객에게 먹힐 수 있는 방법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건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인 동시에 PG-13등급의 프랜차이즈 속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역불능(Lost in Translation). 미국인이 쓴 오리지널 각본과 미국인 스탭들 사이에 떨어진 일본 감독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통역불능의 상태를 극복해야만 한다. 시미즈 다카시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그루지>의 주연인 제이슨 버는 “초반부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확실히 문제가 됐다. 감독은 한참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 결국엔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질문과 답변 사이에 국제통화를 하는 것 같은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촬영 초반에는 프로듀서들과 시미즈 다카시의 잦은 의견충돌을 샘 레이미가 절충해주어야 했다. 나카다 히데오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연출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미즈 다카시가 무대를 일본으로 유지하고, 일본인 스탭을 사용하면서 조심스럽게 리메이크에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나카다 히데오는 과감하게 ‘일본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시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감수성을 곳곳에 새겨놓았다. 사운드트랙의 경우, 일본에서 만든 전작들에서 나카다 히데오는 사운드의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공포감을 상승시켰다 하강시켰다 한다. 음향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고, 그 간격들은 최대한 팽팽하게 늘어난 다음에 갑자기 변화해서 관객에게 쇼크를 준다. 미국식과도 다르고, 이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흉내내는 한국과도 다르다. (가와이 겐지의 도움을 받았던) 나카다 히데오의 사운드트랙은 아주 예민하다. “나는 내 트랙의 간격들을 길게 늘리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운드들을 이용하지만, 나는 매우 조용한 사운드를 활용함으로써 지각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일본에서 우리는 이를 여백의 미학이라고 한다”는 나카다의 말처럼, 억제된 것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일본적 감수성이 <링2>의 곳곳에 숨어 있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가브리엘 베리스테인(<블레이드2, 3>)의 촬영에서도 나카다 히데오의 세계, 동양적인 여백의 미학을 이해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J호러의 생명력은 어디까지
이방인들의 피를 수혈받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할리우드의 도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J호러의 리메이크에 기울이는 미국 제작자들의 노력은 예전과는 달라 보인다. (피부색이 같다는 장점도 있겠으나) 다리오 아르젠토와 람베르토 바바를 위시한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이 리메이크되지 않고 엉터리 더빙으로 할리우드에 도달했던 반면, J호러는 본토의 감독을 태평양 건너로 데려오면서까지 혈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링>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드림웍스의 사려 깊은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끊임없이 축축하게 내리는 겨울비 때문에 “자살의 11월”이라는 시기를 통과해야 하는 미국 서북부의 시애틀과 오리건주. 이것은 습한 일본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간직하려는 제작자들의 고민이 선택한 장소일 것이다. <그루지>의 로케이션을 일본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샘 레이미의 조심스러움도 <링>의 제작자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듯 형식적인 부분에서도 보여지는 존경의 태도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출하지 않은 읽을거리를 만들어낸 <그루지>와 <링2>는 적어도 J호러 리메이크붐이 쉽게 폄하되거나 사라지지 않을 기반 하나는 단단히 만들어두었다. 그 기반이 어느 정도의 응집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미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돌입한 시미즈 다카시의 <그루지2>와 나카다 히데오가 6월 중순에 촬영을 시작할 홍콩 호러영화 <디 아이>의 리메이크가 완성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할 테지만, 통역불능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스스로를 복제하며 살아남은 J호러의 생명력은 이토록 질기다.
할리우드, J호러의 엄습은 계속된다
일본 감독 6인 프로젝트 ‘J호러 시어터’도 리메이크
할리우드도 적지 않게 재미를 붙였음이 분명하다. J호러를 비롯한 아시아 호러영화의 리메이크 계획은 도통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먼저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를 리메이크한 <다크 워터>가 전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앙역>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연출한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의 첫 할리우드 입성작이며, 제니퍼 코넬리, 존 C. 라일리, 팀 로스, 피터 포스틀스웨이트 등 성격파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편집본의 완성도에 고무된 디즈니가 8월12일로 예정됐던 영화의 개봉을 7월8일로 옮겼다(는 설이 있다). 일본의 명프로듀서인 이치세 다카시게의 지휘 아래 나카다 히데오, 시미즈 다카시 등 6명의 감독들이 모여서 결성한 프로젝트 ‘J호러 시어터’(J-Horror シアタ-)의 작품들 역시 리메이크를 앞두고 있다. ‘J호러 시어터’ 첫 작품이었던 <감염>(感染)과 <예언>(予言)이 첫 스타트를 끊을 예정. <감염>은 의료사고를 은폐한 한 병원이 미지의 전염병에 감염된다는 내용이고, 쓰노다 지로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예언>은 죽음을 예언하는 신문이 야기하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링>의 판권을 사기도 했던 미국의 프로듀서 로이 리는 두 작품이 일본에서 개봉하기도 전에 리메이크를 타진했고, 오리지널을 감독한 오치아이 마사유키와 쓰루다 노리오가 감독직에 재기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 번째 속편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미이케 다카시의 <착신아리> 역시 <알렉산더>를 제작한 인터미디어와 가도카와 픽처스에 의해 공동제작 형식으로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 호러영화들은? 드림웍스에 판권이 팔린 <장화, 홍련>과 매버릭엔터테인먼트가 판권을 사간 <폰> 역시 창고에서 먼지를 털고 부활할 날이 머지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먼지에 묻혀서 사라지기에는 J호러의 시절이 너무도 뜨겁게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