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2] - 안석환
2000-03-14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양아치 같은 혹은 여성 같은

안석환

안석환(42)에게 <넘버.3>는 개성파 조연 배우 ‘NO.1’이라는 수식을 선사했을지 모르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주연 배우 ‘NO 3’를 따라다녔다. <세기말>은 그에게 요요와 망치를 쥐어줬지만 대사는 한마디도 허락지 않았다. <텔미썸딩>도 마찬가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 안 되는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바꾼 것 뿐이었다. 그래도 ‘조연배우’ 안석환은 서운하지 않다. 촬영중인 김윤태 감독의 저예산 디지털 영화 <N>에서 주연인 택시기사 역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도 산울림극장에서 연장 공연중인 <고도를 기다리며>의 엑스트라 공 역을 맡아 450회 공연을 마친 ‘주연배우’ 안석환. 그에겐 7년 동안 써온 낡고 새까만 모자와 군화, 다 떨어진 의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연극배우가 본업’이라는 안석환. 오후 5시가 되면 소극장으로 향한다. 7시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3시간 동안 까다롭게 칭얼대면서 무대를 한바탕 헤집기 위해 그는 큰 거울 앞에서 세명의 배우들과 함께 얼굴에 분칠한다. 안석환에겐 이때가 짧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1959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안석환은 유난히 키가 작고 병약한데다 내성적이고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학교를 좋아 할 리 없었다. 집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7대 독자인 아버지는 종손인 형만 감쌌고 별 이유없이 얻어맞아도 태권도 유단자라 감히 형에게 대들지 못했다. 권투 글러브를 사온 형이 한판 붙자고 한 날. 기절하도록 두들겨맞고 안석환은 처음으로 지기 싫다는 생각을 했고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운동을 해서인지 터지고(?) 다니진 않았지만 성적은 별반 나아진 게 없었다. 반에서 45등이니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대학가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대경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안석환은 나팔바지를 14인치씩이나 넓혀 입고 몰래 만화방에서 술도 한잔 걸치기도 하고, ‘껄렁한 불량학생’으로 금세 유명해졌지만 대학은 가고 싶어 학원 새벽반만은 꼭 챙겼다.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79학번. 애초 전공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안석환에게 매일 술마시고 그럴싸한 진리를 설파하는 극예술연구회의 선배들은 신기한 존재였다. 혹시 연극배우들 눈에 띄여 자리에 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과 어울려 실험 극장이나 명동의 창고 극장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퀴퀴한 극장 냄새는 점점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그 추억을 안고 군대에 갔지만 제대하고 돌아와보니 그의 집 세간들은 이미 빨간 딱지 투성이었다. 그런 사정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안석환은 특송회사 간부였던 형의 도움으로 취직을 했다. 그때 다녔던 회사가 안석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급 받으며 일했던 곳이다. “업무상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했어요. 그런데다 회사쪽은 간부인 형을 통해 노조 정보를 빼내려고 절 쪼아대지.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5년만 기다려달라고 집에 통보한 뒤 찾아간 곳이 신촌의 연우무대. 89년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했지만 배우로서의 끼 대신 열심히 하는 친구라는 평가만 들었다. 배우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딴 짓하고 있었을 거라 말하는 안석환은 92년 개봉한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키코 소냐>를 시작으로 <너에게 나를 보낸다> <태백산맥> <총잡이> <닥터K> <넘버.3> <텔미썸딩> <세기말>에 출연했다.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사슴 3마리, 거북이 2마리, 그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휘어져 있고, 또 그 위에 학이, 그 위엔 구름이 떠 있네. 무슨 뜬소리 같겠지만. 1990년이었던가. 한달 내내 방구석에 처박혀서 장롱의 십장생을 세거나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벽지의 무늬를 세곤 했어. 서른 초반. 나의 20대가 객기의 세월이었음을 그때 알아차렸지. 그리고선 남들 2시간 연습할 때 난 8시간 했어. 그렇게 하니까 언제부턴가 연우무대의 개성적인 연기자 중 한 사람으로 불려지더라구. 그때 받았던 연봉이 고작 500만원이었지만 그래도 내 또래 중에선 가장 많이 받은 액수야. 그때도 몰랐지. 94년이 올 줄은. 그 해는 내 스스로도 비약했던 시기라고 자평하는 때지. 수입도 세배로 뛰었고. 남들 쇠고기 먹을 때 이제 나도 돼지고기 정도는 먹겠구나 했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만나 생전 처음 인터뷰도 해보았고. 그 이후로 무대에선 주연만 하게 됐지. 95년 <이 세상의 끝>이라든지 97년 <남자충동>으로 국내외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상복이 있나봐, 요즘은 웬만큼 알려져서 편해.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후배들이기도 하고. 조연? 나도 주연하고 싶지. 배우라면 당연히 그런 것 아닌가. 스토리를 끌고 가고 싶지 않은 배우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고 내가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때 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를 일이지. 다만 직업으로서 하고 있는 이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만 해. 물론 좀더 털어놓자면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모범적이고, 공인으로서의 약속이나 책임까지 챙길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저 사람은 어찌 살까’ 관객이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에 자신있는 그런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시민단체에서 환경운동도 하고 싶어.

작품 고르기

일단 주인공이 누구냐, 감독이 누구냐, 제작자가 누구냐고 묻고 시작하는데. 영화에서 난 서포터를 해주는 입장이다 보니 주연배우를 알아야겠고. 감독은 이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영화를 만들어왔는가 하고 역사를 한번 훑어보려는 거고. 제작자의 경우 돈은 제때 주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야. (웃음) 앞으론 멜로드라마를 해보고 싶어. 잘할 자신도 있고. 나한테 요구하는 것이 항상 코믹하고 분열적인 역할뿐이라 그날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말이지. 멜로의 장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사실인데. 상황을 다루는 단편적인 것 말고 한 인생 장편을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아. 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괴팍한 사랑을 그릴 것이라 미리 단정하겠지만, 정작 하고 싶은 건 따뜻한 인생 그리고 눈빛만으로 하는 연기야.

내 출연작, 베스트 & 워스트

<세기말>

베스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태백산맥>에서 극우성향의 인물인 임만수 역을 맡았지. 내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안성기 선배를 손가락질하는 연기였는데 그때 내가 주인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제법 했구나 하는 느낌도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도 기억에 남는데. 30분 동안 장선우 감독을 설득해서 기관원 행세하는 색안경 역을 호모로 만들었어. <NO.3>는 내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긴 한데. 그때 <남자충동>이라는 연극을 하고 있던터라 굉장히 피곤했고. 관객이야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태주(한석규) 면회가는 장면을 보니까 얼굴에 나 피곤하다고 써 있던데. <세기말>의 요요사내도 그래. 캐릭터 자체가 한 패턴대로 쭉가는 모노톤의 역이었지. 그래도 내 욕심은 연기는 모노톤으로 비춰져선 안 된다 생각했거든. 연기할 때는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화면 보니 죽어 있더라고. 하나의 캐릭터만 보여줬을 뿐 사내의 삶을 도려내지는 못한 작품이라 볼 때마다 아쉽지.

TV와 영화, 그리고 연극

일단 연극 스케줄부터 잡고. 정식 계약은 아니지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전쯤 약속을 하거든. 연극은 연습시간만 2개월 이상이니 캐릭터 연구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는 영화도 여유시간이 크랭크인 하기 전까지 3개월 있으니 괜찮지. 일단 TV는 그 점에서 너무 다르고. 시놉시스만 받고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다 대사 외울 시간을 빼곤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상황도 있고, 애초 이야기 됐던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를 도중 그만둔 것도 그 때문인데. 조연이라지만 깍두기 같은 느낌은 싫어. 시청률에 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앞으론 안 속기로 했지. 연극과 영화, 둘로 좁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연극은 관객과 직접 대면하고 호흡하고 그러면서 내 연기가 어느 정도 가고 있구나 판단 할 수 있지. 15년 동안 무대에 서면서 배우고 다졌던 게 그것일 수도 있고. 관객과 상대 배우 그리고 내 자신이 삼각 구도가 딱 떨어져야 좋은 연극이지. 영화는 달라. 관객 하고 항상 계속해서 물려가면서 호흡을 맞추는 대신 그 자리에 일단 카메라가 들어오잖아. 그러면 아무래도 그 규격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연극보다는 자유롭지 못하지. 프레임 안에 담아야 할 모습은 감독 머리 속에 있고. 매 상황마다 감독의 의도에 맞게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 때론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해. 발가벗고 알몸으로 뛰어드는 무대에 비하면 그렇지.

연기론

다 같은 연기지만 연극엔 연기술이 많아. 똑같은 작품의 캐릭터라 해도 전혀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구사할 수도 있는 거고 거꾸로 뒤집어 엎는 반(反)연기도 할 수 있고 또 시치미 떼고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무(無)연기를 할 수도 있고.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물론 이것들 역시 리얼리즘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가능한 것이지만. 사실주의적인 연기가 그 안에 있고 나서야 모든 표현이 가능해진다고 할까. 영화이야기를 해보자면, <세기말>의 요요사내나 지금 찍고 있는 <N>의 택시기사나 똑같이 인생의 실패자거든. 하지만 요요사내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인물이었다면 택시기사는 사회에 머물고 싶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그래서 결국 아내를 죽이고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이지. 택시기사나 요요사내는 같아 보이지만 심리는 전혀 달라. 요요사내할 땐 눈동자의 초점 자체를 아예 흐려놓았지. 폐인같고 무섭게 보여지되 행동은 최대한 천천히. 그래야만 망치로 내리칠 때 섬뜩할 것 같았지.

내 속엔 양아치도 있고 여성도 있고 고상한 면도 있어. 일단 내성에서 출발하려고 해. 물론 그것이 뿜어져 나오려면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먼저 하나의 행동이나 연기가 어떤 정해진 감정을 불러올 것이다는 기대는 허물고. 그렇지 않으면 전형적인 연기가 불가능하지. 일반화된 연기만이 남을 뿐이야. 전형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코믹할 것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무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그런 힘이지. 그런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려면 또 연구할 수밖에.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