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1] - 장항선
2000-03-14
글 : 조종국
사진 : 정진환

망나니 같은 혹은 형사 같은

장항선

“잘 생긴데가 있나, 눈은 찢어지고, 광대뼈는 나오고. 딱 깡패로나 어울릴 상이지.”

1970년, 그래서 장항선(54)은 어렵게 들어간 방송사을 떠나 도망쳤다. “조금만 잘생겼더라면, 주인공은 고사하고 예쁜 여자와 손잡고 걷는 역 한번 해봤으면”하는 꿈을 접고, 오징어잡이 배를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밀항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어디가서 돈이라도 많이 벌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선남선녀, 미남 미녀만 필요로 하던” 당시의 분위기가 연기하는 배우가 되려했던 그를 강원도 속초 바닷가로 내몰았던 것. 친구의 간곡한 설득에 못이겨 3개월 만에 방송사로 되돌아간 장항선은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행운”을 만난다. ‘전설’의 드라마 <전우>였다.

장항선은 KBS에 입사하기 이전, 영화 촬영장을 전전한 배우, 배우 지망생이었다. 69년 5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극장에서는 겨우 ‘저게 내 발’이라며 생색을 내야 했고, 친구들로부터 ‘어디 나오냐’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몇달 동안 충무로를 배회하다 ‘큰 배우가 되기 위해’ 우선 방송사에 들어가는 게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봤지만 MBC, TBC에 줄줄이 낙방했다. KBS에도 ‘억지로’ 들어갔다. 방송에서는 <전우> <사모곡>, 대하드라마 <역사는 흐른다> <여명의 눈동자> <한명회> 등을 비롯 최근 <용의 눈물>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드라마치고 빠져본 적이 없지만 영화는 91년에 출연한 <살어리랏다>가 처음이었다.

TV에서 중견 연기자로 ‘대접’받고 있지만 영화는 장항선의 꿈이었다. “영화에서 장항선이 필요한 시대”를 기다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영화에 대한 애착은 <살어리랏다>와 <텔미썸딩>으로 두 차례 국내의 한 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미끄러진’ 일에 대해 지나치리 만큼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바심은 아니라고 해도 뒤늦게 영화 출연을 시작했으니 남들로부터 영화쪽에서도 쓸모가 있다는 ‘공인’을 받고 싶어”하는 듯 했다. 이미 TV드라마 <제5열> 등에서 보여준 장항선의 묵직하면서도 번뜩이는 연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듯, 영화에서는 줄곧 형사나 깡패 출신으로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는 문예물에 관심이 많다. 장항선의 본명이 김봉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생긴 걸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어서” 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으로 ‘장항선’이라는 예명을 지었고, “30년 동안 잘 써먹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퇴학을 맞고 고향인 예산에서 온양까지 장항선 열차를 타고 통학하면서 ‘날리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 이름이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TV드라마 <왕건> 촬영 때문에 서울에 올 시간이 없다고 했다. 경북 문경과 충북 제천으로 오가며 찍고 있는데, 방송 드라마 촬영 속성상 언제 불려갈지 모르기 때문에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정을 놓고 몇차례 밀고당기기를 거듭하다 결국 대전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항선 本家’, 아파트 밀집지역인 대전 둔산단지에 있는 갈빗집. 장항선이 식당주인이다. 괴산에서 오랫동안 황태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갈빗집을 운영하다 대전까지 진출했다. 장에 가서 고기를 사오고 냉면에 쓰는 황태도 집에서 직접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비법을 개발한 미식가이자 음식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자랑대로 장항선 본가의 황태냉면은 이미 별미를 자랑하는 대전의 명소다.

조연배우로 산다는 것

배우가 주연하고 싶은 생각은 다 있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주연 못했다고 섭섭해하는 얄팍한 생각은 안 한다. 자막에 이름이 앞에 나오지는 않지만 주연보다 조연이 비중있는 경우도 많다. 허장강 선생 같은 분은 결코 주연이 아니고 영원한 조연이었지만 존경받는 연기자 아닌가. 주연에 대한 기대보다 항상 역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비트> 만든 김성수 감독이 준비하던 새 영화가 있었는데, 주연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쇠락한 깡패가 젊은 사람들 앞에서 허세도 부리는 그런 역인데 내게 딱맞고 끌리는 역이었다. 나름대로 기대되는 배역이고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미뤄지는 바람에 아쉽게 됐다. 언젠가 그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던 이태원 사장님을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늦춰지게 됐다고 말하더라. 어쨌든 그런 제안 받으니까 기분은 좋더라. TV드라마이긴 하지만 <용의 눈물> <은실이> 등에서도 조연이었는데 잘했다는 칭찬듣고, 영화쪽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파란대문>은 흥행에서는 크게 빛을 못봤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그럴듯하게 소화했다고 평가를 받았는지, 영화쪽에서 적극적인 제의를 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잘했다는 생각은 안 한다. 조연이지만 영화도 그렇고, 김기덕 감독의 연출도 개성이 강하니까 거기 끼어갈 수 있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걸 터득했다고 할까. <텔미썸딩>도, <반칙왕>도, 찍고 또 찍고 수십번씩 다시 찍으면 ‘성인 군자도 헛기침한다’며 짜증도 냈지만 완성된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줄 때면 바로 후회하게 된다. 나의 인간됨이 부족한 거니까.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것도 내가 훌륭한 연기를 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빈자리를 잘 채워주었다는 칭찬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한다. 주연과 조연의 문제는 아니다.

작품 고르기

가장 먼저 캐릭터가 맞아야지. 나한테 맞는거나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거나, 그런 걸 따져보지. TV는 거의 내가 결정하고, 영화는 매니저 하고 의논도 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 모니터도 해서 정한다. 지금 찍고 있는 <왕건>도 출연제의를 받고 네번을 사양했다.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지만, 솔직한 이야기로 방송쪽에서 하는 말로 ‘큰 곗돈 타는 역’인데 마다한 것은, 태조 왕건의 삼촌 역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목에 힘만 주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지, 술먹고 큰 소리 치다가 꼬리도 내리는 다양한 성격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 <용의 눈물>했던 작가께서 굳이 나를 고집하셨다고 해서 결국하게 됐지만…. <파란대문>은 과거에 잘 나가던 깡패가 지금은 노쇠해서 마누라 밑에서 집이나 지켜주고 별로 말도 없이 서성대는 역인데, 실제로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측은한 생각까지 들게 되는 그런 캐릭터가 끌려서 한 거지. <텔미썸딩>의 오형사는 장윤현 감독이 TV에서 <제5열>할 때 나를 보고 형사의 전형이라고 생각해 나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서 기분좋았고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잘 안 살았지만, 도입부에 한석규를 ‘부정한 방법’으로 도와주는 오형사의 모습도 끌렸다. 그런 부정한 방법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엄연히 있는 모습이고 또 그렇게 한석규를 지키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뛰다가 죽는 모습을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더 바랄 게 없는 거지. 하지만 배우라는 게,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고맙고 좋아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반칙왕>도 처음에는 못한다 그랬는데, 안 불러줘서 속상한 사람도 많은데… 싶어서 하게 된 거지.

내 출연작, 베스트 & 워스트

<파란대문>

69년에 첫 출연한 영화 <언제나 타인>에서 장항선은 신성일의 운전사로 나왔다. 말이 배우였지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던 것. 나의 베스트 배역을 꼽으라면 91년에 출연한 사실상의 영화 데뷔작 <살어리랏다>의 망나니 역이다. 왜냐면하, 그 망나니 역이라는 게 나한테 잘 어울렸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텔미썸딩>의 오형사 역 중에서도 죽는 장면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도 배우로서 욕심이 있어서 시작할 때는 나름대로 설정도 하고 욕심을 냈는데, 시나리오를 계속 읽으면서 내가 너무 그러면 작품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형사가 너무 튀면 한석규가 다치고 나 때문에 영화버렸다는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안 하고’ 순진하게 그냥 고참형사로만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죽는 장면에서도 연기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열심히 죽었다. <반칙왕>은 처음에 기대하고 심혈을 기울인 장면들이 다 잘려 나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나한테는 실망스런 역이 되고 말았다. ‘한국 사람은 똥구멍에서 힘이 나온다. 외국 사람들은 가슴에 힘을 주지만, 한국 사람은 지게를 질 때도 똥구멍에 힘을 딱줘야 산더미 같은 지게를 지고 일어날 수 있고…’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는 <반칙왕>은 이 한 장면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고, 그 느낌을 나도 보고 싶어서 절대 오버 안 하고, 관객은 이 장면을 최고로 기억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편집에서 잘려 나갔다. 또 내가 술에 취해서 송강호에게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장면도 기대했던 신인데 빠졌으니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할말이 없어진 거다.

TV와 영화

TV는 감정을 몰아서 끌고갈 수 있는데, 영화는 신을 나눠서 찍기 때문에 감정을 연결하는 게 어렵다. 이를테면 영화는 앞뒤 상황을 바꿔서도 찍고, 극중 보름 전 상황을 한달 뒤에 찍는 경우도 있으니 주로 TV에서 활동했던 나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도 영화는 일부러 극장까지 찾아가서 돈까지 내고 몰입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에 내 연기를 담아줘야 하는 것이지. 또 TV야 항상 볼 수 있고, 좀 전에 봤던 연기자의 연기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채널이 돌아가지만 그것도 무서워. TV드라마 <전우>는 ‘장하사’ 팬이 생길 정도로 내 얼굴을 알린 작품이다.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하던 시절인데, 내가 카투사 운전병 출신인데다 당시만 해도 3개 방송사에서 나만큼 몸 빠른 사람이 없어서… 운이 좋았든 거지. TV 출연작은 다 기억할 수도 없고 몇편인지 셀 수도 없다. 영화는 69년부터 엑스트라급으로 5편 정도에 출연한 적 있지만 91년 <살어리랏다>가 데뷔작인 셈이고, <투맨> <파란대문> <표절> <텔미썸딩> <반칙왕>이 출연작이다. <그림일기>와 김기덕 감독의 <섬>에는 카메오로 우정출연 했다.

연기론

솔직히 말해 연기론이니 뭐니하는 것 잘 모른다. 외람된 말이지만 보는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진솔함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들이 실감을 느끼고 감정이입할 것 아닌가. 연기라는 건 남들도 다 하는 말이지만 ‘모방에 의한 창조’ 뭐 그런거 아니겠나. 내가 황태냉면 전문점을 하고 있는데 음식이건 연기건 완전히 새로운 독창적이란 게 어디 있겠나. 이미 누군가 만들어 먹고 있던 음식을 좀 다르게 만드는 거고, 연기도 그런 거다. 나는 별일 없을 때 무조건 비디오를 본다. 비디오를 수십개씩 쌓아두고 보다가 내가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장면 있으면 메모도 하고 그런다. 쉬운 예로 앤소니 퀸 같은 중후함을 보면 거기다 나를 대입시키는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최선을 다하고, 진솔하게 연기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반성한다. 내가 연기한 장면을 보고, 저기서는 저랬어야 되는데, 조금 더 나갔어야 되는데, 뭐 이렇게 반성한다. 간혹 건방진 후배들도 있는데, 연기의 ‘연’자도 모르고 스타가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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