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 DVD의 부록 ‘오슨 웰스: 원맨 밴드’에서 웰스의 반려자였던 오야 코다는 웰스의 미완성 프로젝트들과 웰스가 겪었던 힘겨운 상황에 대해 증언한다. 감독으로서 오슨 웰스는 가장 영예로운 이름이었으나, 정작 그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고집불통이라는 선입견은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그의 영화에 대한 끝없는 의지와 낙관은 불가사의다). 오죽했으면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는 영화감독’이란 오명이 붙었을까. 1992년 칸영화제는 <돈키호테>가 상영된다는 소식으로 술렁거렸다. 웰스가 30년간 애정을 쏟고도 완성하지 못한 <돈키호테>는 개봉제목이 <당신은 언제 돈키호테를 완성할 것인가?>로 될 뻔한 작품이었는데, 칸 상영본을 완성한 사람은 하필 스페인의 괴짜 헤수스 프랑코였다. 웰스가 의도한 수소폭탄이 폭발하는 엔딩은 물론 없거니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뒤섞인 작품이 두서없이 편집되다보니 영화는 현대로 뛰어든 돈키호테와 산초의 정신상태처럼 어수선하다. 평생 영화적 모험을 펼친 웰스가 이상을 찾아 떠난 돈키호테에 자신을 투영했음이 언뜻 엿보일 뿐이다.
199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선보인 <모두가 진실이다>는 원래 <위대한 엠버슨 가> 직후에 진행된 영화다. 나치 세력이 남미에 닿을 것을 두려워한 미국 정부에 의해 웰스는 남미 특별대사로 임명됐고, RKO사는 선린정책에 부응하는 영화를 만들길 원했다. 영화의 1부 <내 친구 보니토>는 노먼 포스터가, 2부와 3부인 <삼바이야기: 카니발>과 <뗏목 위의 네 남자>는 웰스가 연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촬영분에 실망한 RKO사는 예산 낭비의 이유를 들어 제작을 철회한 뒤 웰스를 해고했으니, 지긋지긋한 저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음향과 음악, 내레이션, 생존자의 증언, 기록영상을 새로 더한 베를린 공개판의 압권은 후반 40분을 채우는 <뗏목 위의 네 남자>다. 가난한 자의 분노의 목소리와 강렬한 영상이 만난 <뗏목 위의…>는 네오리얼리즘의 원형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1975년, AFI의 평생공로상 수상차 할리우드로 돌아온 웰스는 <바람의 이면>의 완성을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미완성 프로젝트처럼, 웰스가 <시민 케인>에 버금가는 작품이 될 거라던 <바람의 이면> 또한 끝나지 못한다. 3시간짜리 판본이 있다고도 하고, 법적인 문제 때문에 공개되지 못한다고도 하는 <바람의 이면>이 실재하기는 할까? 만약 그렇다면 위의 두 작품처럼 언젠가 보여질 수 있을까? 웰스에게 내려진 저주는 지금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