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회색 하늘이 간간이 비를 뿌리던 지난 6월10일 금요일. 홍익대 모처에 위치한 강영호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는 화기애애한 웃음이 가득했다. 남녀노소를 망라하는 일곱 커플이 펼치는 사랑 이야기가 촘촘하고도 찬란한 그물을 엮어내는 민규동 감독의 신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포스터 촬영현장. 단 하루 만에 주요 배우들 일곱명의 개인컷과 티저 포스터로 사용할 단체컷을 찍고, 여기 다시 여섯명의 배우들이 합류하여 커플별 컷과 본포스터를 찍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오전 10시30분. 주현, 오미희, 황정민, 엄정화, 임창정, 김수로, 윤진서, 웬만해선 한꺼번에 만날 수 없을 듯한 개성 만점의 일곱 배우들이 속속들이 스튜디오로 모여든다. 일곱명의 배우, 그들의 코디네이터와 매니저, 영화의 홍보팀과 관계자들, 그리고 배우를 쫓아 몰려든 각종 방송사의 취재진들이 북적거리는 스튜디오 구석구석으로, 영화 <스팅>의 주제곡이 경쾌하게 스며들며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영화의 제작진과 마케팅팀, 포스터디자인팀이 의논한 포스터의 컨셉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에 있는 사람의 표정, 그 감동을 보여준다”는 것. <피도 눈물도 없이> <인터뷰> 등의 포스터 사진으로 유명한 강영호 작가가 촬영을 맡게 된 것 역시 사진 한컷에 풍부한 감정을 담는 그의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관계자는 “강영호 작가라면 여러 명의 배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면서 분위기를 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고 덧붙인다.
한명당 5분 남짓, 배우 일곱명의 개인컷을 순식간에 촬영한 뒤, 영화관 객석을 재현한 세트에 일곱 캐릭터들이 올라선다. 어느새 스튜디오에는 진추하의 <원 서머 나이트>가 흐른다. 강영호 작가의 주문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의 표정. 눈물을 글썽이되 슬픔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어야 한다는 것”. 영화 속 각자의 사연에 스스로를 이입한 배우들의 표정이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이들이 보고 있는 영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처럼 행복한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제작진의 바람이 엿보인다.
컨셉을 몇번씩 바꾸며 이어진 오전 촬영이 마무리된 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자 나머지 배우들이 하나둘씩 밝은 인사를 건네며 들어선다. 사실 이들은 한 영화에 출연하고 있지만, 일곱 커플의 이야기가 서로 스치고 얽히며 모자이크를 이루는 영화인지라, 오늘이 아니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얼굴들이다. 열세명에 달하는 아름다운 얼굴들이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자 갑자기 스튜디오 안의 공기가 한톤 정도 가벼워진다. 이번에는 감동의 눈물 대신 행복한 웃음이 스튜디오를 채운다. 처음엔 은은한 미소로 마지막에는 보는 사람까지 소리내어 웃게 만드는 박장대소로, 사진작가의 지휘가 이어진다. 이들의 웃음소리가 카메라에 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득 안타깝게 느껴진다.
감동의 눈물과 행복한 박장대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만들어질까. ‘가장 행복한 일주일’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미소 속에 상처를 감추고, 말로 다 못할 기쁨을 눈물을 통해 표현하는 등 행복과 슬픔, 안타까움과 만족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인생의 진리 역시 그처럼 복잡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일까. 일곱 커플 모두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괜한 수사에 그치진 않을 듯 하다.
강영호 사진작가 인터뷰
“한컷 안에 드라마를 담은 포스터가 좋다”
-떼거리 포스터를 찍느라 어려움이 많았겠다.
=이번이 <여섯개의 시선> 이후 두 번째다. 사실 감독님 여섯분을 모시고 찍었던 그때가 훨씬 힘들었다. 카메라 뒤에 서 있었던 분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올 리 없지 않나. 오늘은 오히려 음악이 복병이었다. 나는 원래 사진을 찍을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야 하는데, 주현 선생님께서 자꾸만 “음악 좀 꺼라”라며 눈살을 찌푸리시는 거다. (웃음)
-배우들마다 연출방법도 달라야 했을 텐데.
=김수로, 임창정씨처럼 애드리브가 강한 배우들은 편하다. 사진 찍으면서도 “너무 오버하지 마라”라며 ‘쫑크’를 줄 수도 있고. 황정민씨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업’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예상외로 너무 훌륭했던 오미희씨의 표정이었다. 뭐랄까, 사랑받을 만한 표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을 고르라면.
=배우 7명의 개인컷이 다 좋았다. 특히 남자들. 완전히 자신의 역할에 빠져 있었다. 황정민씨는 사진에 거부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표정에 깊이가 있는 게 제일 포토제닉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사진도 잘 찍히는 것이, 어떻게 하면 잘 찍힐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서기 때문이다.
-작업속도가 매우 빠르던데.
=원래 무지하게 빠른 편이다. 처음엔 불안해서 자꾸 오래 찍고 다시 찍었지만, 이젠 베테랑이잖나. (웃음)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기합을 넣고, 몸을 많이 사용하는 등 피사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독특하다.
=포스터 사진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건 결국 커뮤니케이션인데, 그건 한국에서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엔 모두 기가 있기 때문에 내가 “얍”, “으~” 하면서 기합을 주면 그게 피사체에게도 전달된다. 사진을 찍을 때 음악을 틀어놓는 것도 감정전달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미리 내가 생각하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놓는다. 그렇게 공기나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면, 말로 어떤 감정을 주문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선호하는 영화포스터는 어떤 것인가.
=한컷 안에 드라마를 담고 있는 포스터. 영화가 소설이라면 포스터는 시다. 예전엔 영화 포스터가 그 자체로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대개 광고적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영화 제작사들이 나랑 포스터 작업을 하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