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1]
2000-03-07
글 : 박상준 (SF해설가)
체코어 로보타에서 바이센테니얼 맨까지, 로봇의 역사

인간에 가깝게 더욱 가깝게

SF 영화의 잔치상은 한번도 빈곤한 적이 없었다. 우주여행, 시간여행, 외계인, 괴수, 신무기, 미친 과학자 등등…. 그 중에서도 로봇은 언제나 인기있는 주인공이었다. <터미네이터> 등 로봇 캐릭터가 영화판을 누비고 다닌 것이 불과 10년도 안 됐는데, 어느새 스크린에서 로봇들의 모습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80년대 중반경 SF문학쪽에서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이버펑크 바람이 삽시간에 SF영화의 콘텐츠를 물갈이해 버린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처음엔 CG의 발달에 힘입어 시각효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중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가진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가능성들로 사람들의 흥미를 계속 붙들었다. 결국 로봇이라는 고전적 SF 아이콘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확고부동의 자리를 보전하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이제 SF 영화는 온통 현란한 가상현실과 우주모험 시나리오로 채워지고 있으며, 최근 그 틈을 비집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고전적(?)인 본격 로봇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 개봉했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그 이름도 전설적인' 원작자의 후광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코미디의 스타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력도 맥을 못춘채, 국내외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인간과 따뜻한 우정을 나누고 낭만적인 로맨스를 쌓아가는 그런 로봇이라니? 영화와 함께 1백년의 나이를 먹어오는 동안 로봇은 무수히 그 정체성을 바꿔왔고 또 외관도 변화해왔다.

로봇 영화의 아버지 엘리에스

‘로봇’(robot)이라는 말은 1920년에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펙이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원은 ‘법정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라는 단어로 ‘강제적인 노동’이라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 희곡은 1925년 우리말로 옮겨지기도 했는데, 번역자는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한 비련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연극인 김우진이었다.

그러나 로봇이라는 말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자동인형’(automata), '살아 움직이는 인형’(animated doll) 등의 말로 로봇의 개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19세기 막바지에 발명되어 20세기 초부터 광범위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한 영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의 영화를 만든지 불과 2년 뒤, 로봇이 나온 첫 영화 <어릿광대와 꼭두각시>가 프랑스의 멜리에스에 의해 제작됐다. 로봇 영화로서 최초의 흥행성공작은 역시 멜리에스의 1900년작 <자동인형 코펠리아>가 꼽힌다. 이 영화의 흥행은 이웃나라들에도 로봇 영화 장르를 퍼뜨렸는데, 영국에서도 <인형제작자의 딸>이라는 비슷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1907년에는 미국 최초의 로봇 영화 <기계인형>이 선보였며, 한편 무성 영화 시절의 최고걸작 SF 중 하나로 꼽히는 <앨리타: 로봇들의 반란>이 1924년에 러시아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알렉세이 톨스토이 소설이 원작이다. 1926년 독일에서 발표된 <메트로폴리스>는 작품성으로나 시각디자인 등 기술적인 면으로나 오늘날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로봇 윤리강령’, 로봇이고 싶다면 이렇게…

<바이센테니얼 맨>

그러나 20세기 초만 해도 로봇의 이미지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 기분나쁘게 인간을 닮은 인형, 또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라는 식으로 인식돼 사람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38년에 미국의 SF작가 레스터 델 레이가 <사랑스러운 헬렌>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로봇도 나름대로의 ‘인격’을 부여받는 전기가 마련된다. 이 작품에는 인간과 똑같은 지성과 감정을 지닌 여성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사랑을 나눈다.

1940년 무렵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약관의 청년작가 아시모프는, 당시 유명한 SF잡지 편집자였던 존 캠벨과 작품 구상을 토론하던 중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오늘날 아시모프를 ‘로봇공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만든 유명한 ‘로봇공학의 3원칙’이 바로 이때 태어난 것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첫 부분에서 로봇 앤드루 마틴이 요란하게 브리핑하는 이 3원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법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2법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만 한다. 단, 제1법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이다.

제3법칙: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단, 제1법칙과 제2법칙에 거스를 경우는 예외이다.

당시 아시모프도 스스로 깨닫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이 3원칙은 오늘날 로봇뿐만 아니라 모든 가전제품이나 기계장치들이 갖춰야 할 덕목 그대로이다. 일본의 어느 SF팬은 로봇공학의 3원칙이 결국은 다음과 같은 내용임을 정리해 낸 바 있다.

제1법칙: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

제2법칙: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제3법칙: 튼튼하고 수명이 길어야 한다.

무자비한 로봇, 친근한 로봇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는 비록 로봇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컴퓨터의 갈등이 섬뜩하게 펼쳐져 주목을 끌었다. 우주선의 중앙통제 컴퓨터가 승무원들 몰래 비밀명령을 부여받고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자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인공두뇌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관한 중요한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설정이 1979년작 <에이리언>에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상업우주선에 탑승한 인조인간 승무원이 회사쪽의 방침에 따라 인간 동료들을 따돌리고 비밀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명배우 율 브린너가 로봇 총잡이로 나오는 1973년작 <이색지대>(Westworld)는 오늘날 잘 알려진 인기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직접 쓰고 감독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일단 결정된 임무는 완수될 때까지 냉혹하게 수행하는 로봇의 무자비함을 매우 실감나게 묘사했다. <터미네이터>(1984)는 이 작품의 마지막 시퀀스를 차용한 흔적이 짙다. 인간을 제압하려는 괴물로봇 이야기는 <악령의 종자>(Demon Seed, 77년)에서도 이어진다. 딘 쿤츠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했으며 컴퓨터가 인간을 잉태시켜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영화 속의 로봇은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좀더 심화된 주제를 다루는 모티브가 된다. 1982년작 <안드로이드>나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보다도 더 절실하게 인간성을 추구하는 안드로이드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졌다. 1986년작 <No.5 파괴작전>이나 그 이듬해 발표된 <8번가의 기적>은 모두 로봇을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묘사한 유쾌한 영화들이다. <8번가의 기적>은 ‘외계의 로봇 문명’이라는 소재를 채택한 경우. 한편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처럼 무자비한 캐릭터의 로봇들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독자적인 로봇 캐릭터가 발달했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주소년 아톰>(1951)의 예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 밖에 <철인 28호>나 <마징가 Z> 같은 작품들은 별도로 ‘거대 전투로봇’ 캐릭터군을 형성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도 1970년대에 <로봇 태권 V>가 대중적인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로봇들이 사라진 시대, 90년대

<터미네이터>

할리우드에선 92년작 <터미네이터2> 이후 무자비한 전투로봇 캐릭터를 본뜬 아류작들이 적잖게 나왔다. 대표적인 예는 3편까지 나온 <섀도우체이서>(1992) 시리즈. 한편 1994년 작품 <오토매틱>은 저예산의 ‘B급’ 영화이긴 하지만 정체성 고민에 빠진 주인공 안드로이드의 갈등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 수작이다.

전반적으로 90년대에는 로봇 캐릭터들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스타 트랙: 퍼스트콘택>(1996)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오는 ‘데이터’라던가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의 로봇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지난해의 <형사 가제트>는 오랜만에 로봇(사이보그)이 타이틀롤을 맡은 경우이다.

물론 1990년대의 로봇은 외모가 눈부시게 세련돼졌다. 60년대 이전의 영화에 나오는 로봇들은 대부분 지금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볼품없는 디자인이고, 77년의 <스타워즈>만 해도 어딘가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 한데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드 미드 같은 뛰어난 전문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하고 컴퓨터그래픽의 발달이 디자이너들의 수고를 덜어줘서 고난도 작업을 가능케 해주면서 이제는 더이상 기하학적 단순미의 로봇은 볼 수 없게 됐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의 시각디자이너는 “(로봇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곡선으로만 처리했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로봇은 과학기술문명이 마르지 않는한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영화의 소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문명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영화 속의 로봇들에 다양한 표정을 새겨놓게 될 것이다.

닮은 듯 다른 그들

로봇,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스타트렉: 퍼스트콘택>

흔히 로봇이라 하면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것을 연상하지만, 차펙의 <R.U.R.>에서 처음 등장한 ‘로봇’은 유기물질로 만든 인조인간이었다. 최근에는 로봇 외에도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등 비슷한 개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각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로봇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장치’의 광범위한 통칭으로 사용된다. 더이상 SF에만 등장하는 용어가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으며, 반드시 외모가 인간과 비슷할 필요도 없다.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약자로 1950년대에 의학자들이 창안한 개념이다. 애초의 발상은 인체를 대체하여 외계와 같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든다는 SF적인 것이었지만, 오늘날엔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신체기능 일부를 잃은 사람들에게 인공장기를 달아주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정착되었다.

반면, 아직 SF속에만 나오는 ‘안드로이드’는 외모가 인간과 아주 흡사한 로봇을 의미한다. 기계가 아닌 유기물 조직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는 외모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 사고방식까지도 인간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똑같다. <블레이드 러너>나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인조인간들이 안드로이드의 대표적인 예.

한편 '휴머노이드'는 ‘외모가 인간과 닮은 것’의 총칭이다. 로봇이건 외계인이건, 또는 정체불명의 괴물이건 상관없이 겉모습이 사람과 닮았으면 휴머노이드라고 한다. 안드로이드와 마찬가지로 SF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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