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는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로서 그 달의 레퍼런스(화질, 음향, 부록 등에서 모범이 될만한) 타이틀을 엄선해, 주요 장면의 AV적인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정리하는 코너입니다. (DVDTopic)
제임스 딘 콜렉션 박스 세트
The Complete James Dean Collection Box Set
고전 영화 팬들이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려온 <제임스 딘 콜렉션>이 드디어 출시됐다. 본 박스 세트에는 제임스 딘의 대표작 3편(<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이 각각 2디스크의 호화 사양으로 담겨 있다. 특히 <에덴의 동쪽>은 다른 두 편과는 달리 판권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출시되지 못했던 타이틀이어서 고전 팬의 입장에서는 이번 출시가 눈물나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팬들의 오랜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 작품의 부록 디스크에는 엄청난 양의 부가 영상이 빼곡히 들어있으며, 영화 본편 디스크에도 평론가의 수준 높은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번 콜렉션이 과연 'Complete'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세 작품 모두 복원작업을 거친 뒤 DVD로 옮겨졌지만, 복원 수준이 각기 다르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의 경우는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화질이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제작년도만 감안한다면 두 타이틀의 화질은 분명히 빼어난 편이다. 그러나 최첨단 디지털 복원작업을 통해 최신 영화의 화질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전 영화 타이틀이 계속하여 쏟아지는 요즘 추세에 비춰볼 때, 이 두 타이틀의 화질은 '상대적으로'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레인 현상이 유난히 거슬리고 잡티 또한 효과적으로 제거되지 못했으며, 장면 간 퀄리티의 편차도 꽤 있다. 세 편 중 가장 빼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은 <자이언트>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디지털 복원의 명가 라우리 디지털 이미지(<스타워즈> 삼부작의 복원을 맡았던 곳)에서 복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이언트>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이번 콜렉션에 담긴 <자이언트>가 이전에 2 DISC로 출시된 SE판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전 SE판의 문제는 바로 영상이 '비아나모픽' 포맷이었다는 점인데, 이번 콜렉션 에 담긴 <자이언트> 역시 아나모픽을 지원하지 않는다(다행스럽게도 2.55:1 화면비율인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은 아나모픽을 지원한다). 이런 문제점이 보완되지 않은 채 콜렉션이 출시되었다는 사실은 크게 아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콜렉션에서 필자가 꼽은 장면은 <자이언트> 중 제트 링크(제임스 딘)의 땅에서 석유가 쏟아지는 신이다. 석유가 솟구치는 힘찬 소리에 이어 디미트리 티옴킨의 기념비적인 음악이 깔리는 이 신은 고전 팬들의 뇌리에서 절대 잊혀질 수 없는 명장면이다. (2005년 6월 10일 워너 브라더스 출시)
지옥의 영웅들 SE The Big Red One: The Reconstruction
새뮤얼 풀러의 문제작 <지옥의 영웅들 The Big Red One>의 SE 버전은 작년에 출시된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CE 버전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타이틀이다. 물론 <석양의 무법자> CE가 그랬듯, <지옥의 영웅들> SE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감독판'은 아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평론가인 리처드 쉬켈을 비롯한 새뮤얼 풀러의 '숭배자'들이 이미 고인이 된 거장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헌정시'라 할만 하다.
새뮤얼 풀러의 <지옥의 영웅들>은 많은 부분에서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참전 용사였던 풀러 자신의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풀러의 최대 야심작이 될 뻔했던 이 영화는 그러나 1980년 개봉 직전에 '수난'을 겪게 된다. 스튜디오의 요구에 따라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야 했던 것. 결국 가위질 작업의 결과, 이 영화는 풀러 감독의 최초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작품이 되고 말았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의 발전 양상이 엉망이 되었고 플롯의 전개 역시 곳곳에서 뚝뚝 끊어지는 등 심각한 '상처'를 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거장의 말년 야심작의 운명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나지만은 않았다.
2004년, 평론가 리처드 쉬켈과 복원 전문가들은 워너 브라더스의 전폭적 지원 아래 풀러가 남긴 제작 노트와 스크립트 초고를 바탕으로 이 영화의 '재구성(Reconstruction)'작업에 나섰다. 이번 재구성 작업은 잘린 장면을 통째로 이어 붙이는 식의 단순한 복원 작업이 아닌, 작품 자체의 질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정교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말하자면 이번 작업은 신빙성 있는 자료를 토대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여 퍼즐을 맞추듯 기존 극장판의 사이사이에 새로운 장면들을 끼워 넣어 '감독판과 가장 가까운 복원판'을 만드는 극히 까다로운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평론가 쉬켈의 '해석'도 어느 정도는 섞여 들어갔다.
따라서 이번 <지옥의 영웅들> SE 버전은 '감독판'과 풀러의 열혈 추종자 쉬켈의 '해석판'의 중간적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40분이 넘는 추가 영상이 극장판의 적시 적소에 삽입되었는데, 이로 인해 작품의 플롯은 더욱 유기적인 면모를 띠게 되었고, 등장인물의 성격도 보다 입체화 되었다. 그러나 가장 괄목할만한 점은 새로 삽입된 장면과 기존 장면들 간의 이음매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복원 상태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피땀 어린 노력을 했던 디지털 복원 팀이 이룬 쾌거라 할 수 있다.
물론 기계적으로만 보면 이 영화의 화질은 '괴물 같은 복원 상태'를 자랑하는 <스타워즈 삼부작>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간 '비 내리는' 화질로 이 영화를 감상해 온 풀러의 열혈 팬들에게 이번 DVD의 화질은 분명히 '경악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1 채널로 리마스터링 된 음질 역시 발군이다.
필자가 꼽은 장면은 바로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이다. 25년 된 이 영화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살인적인 서라운드 음향을 기대한 분은 (당연히)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음향이면 충분히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수준'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말이 필요 없다. '감동의 복원 타이틀의 감동의 순간'을 직접 체험해 보시길. (2005년 6월 3일 워너 브라더스 출시)
그때 그 사람들
KD미디어가 지난 5월의 <말아톤>에 이어 또 한편의 '걸작' DVD 타이틀을 내 놓았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하고, AV 퀄리티와 부록의 구성 등 스펙 면에서 평가하자면 <그때 그 사람들>은 <말아톤>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바로 화질이다. 6월에 선보인 할리우드 대작 타이틀들이 대체로 화질 면에서 다소 기대에 못 미쳤기에 <그때 그 사람들>이 보여준 괄목할만한 성취도는 더욱 돋보인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그때 그 사람들>의 화질이 '최상급'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지난달에 출시된 <말아톤>과 비교해도 약간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출시된 한국 영화 타이틀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 하다. 특히 6월의 외화 타이틀 중 다소 불안정한 화질을 보여준 것이 꽤 많다는 점을 놓고 보면 <그때 그 사람들>의 화질은 오히려 의외라고 할 정도로 안정된 면모를 보여준다.
해상도와 선명도, 디테일의 표현 수준 등 전반적인 영상의 표현 상태가 모두 만족스러우며 잡티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약간의 윤곽선 강조 현상과 색대비가 두드러진 부분의 지글거림 현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결코 아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색상 표현력이다. 독특한 극적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엘로우와 레드 등 특정 색톤이 인위적으로 강조되었지만 전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며, 영화의 플롯과 맞물려 기막힌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입자의 표현 상태도 대체로 깔끔한 편. 이 영화는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이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인데, 역동적인 장면에서도 입자의 표현 상태는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음질 역시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대체로 대사와 스코어 위주로 음향 설계가 이루어졌지만, 김재규(백윤식)가 박 대통령을 저격하는 클라이맥스 신에서는 서라운드 음향이 기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필자가 꼽은 장면도 바로 이 클라이맥스 신이다. 전 채널을 통해 울려 퍼지는 총소리는 확실한 공간감을 형성하며 긴장감을 창출한다. (2005년 6월 21일 KD미디어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