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목두기 비디오> [2]
2005-07-12
글 : 오정연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기획과 시나리오

공포단편소설이 원작

각 지역의 동사무소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찾아낸 폐가. 그러나 막상 찾아가면 사진과 다르다든가, 촬영 직전에 수선에 들어간다든가 하는 사고가 많았다.

모든 것은 윤준형씨가 영화를 시작하기 전 재미삼아 끼적였던 여섯편의 단편소설에서 시작됐다. 이는 캐나다에서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던 그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귀국한 뒤 네오필름아카데미, 영상작가교육원, 한겨레문화센터 PD과정 등을 다니는 틈틈이 완성한 공포소설이다. 그리고 CCTV, 몰래카메라, 홈비디오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영상물들에 우연히 포착된 귀신을 추적하는 한 PD의 여섯 가지 에피소드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목두기 비디오>의 원작이다. “감독 개인의 취향과 가치가 너무 강하게 반영되어 결국 관객과의 소통이 어려워진 독립영화, 영화제에서 보여지고 사장되는 독립영화”에 거부감을 느꼈던 윤준형씨는 “최대한 친절한 영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네오필름아카데미를 다닐 당시, <우츠프라카치아>라는 16mm영화를 공동연출했던 김영갑, 한상우씨에게 자신의 단편소설을 보여주며 또다시 공동작업을 제안한 것. 공포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두 사람은 “만들려는 영화의 풍부한 디테일, 장편 작업을 위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일정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연출자의 의지”를 감지한 뒤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2003년 3월 처음 이야기를 꺼낸 뒤, 시나리오 각색과 프리프로덕션, 촬영과 편집을 각각 한달 만에 마무리하는 등 이후 작업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웹포스팅(윤준형), 건축학과 휴학생(김영갑), 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던 무역선원(한상우) 등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카메라를 직접 들어본 적도 없었던 영화학도들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흥겹게 작업에 임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다섯달에 걸친 제작과정 내내, 자신들의 영화가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에필로그

지금, 그때 그 스탭들은

김영갑 조감독, 윤중형 감독, 한상우 촬영감독(왼쪽부터)

<목두기 비디오>를 완성할 때까지 들어간 제작비는 3천만원. 이를 인터넷에 배급하고, 공중파에서 방영하여 거둬들인 총수익은 정확히 제작비의 절반. 여기에 제작비 대비 최고의 개런티로 섭외한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까지 덧붙여진 이 영화를 의심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실을 가장하여 네티즌들로 하여금 2천원씩의 돈을 내고 기어이 영화를 보도록 만들었던 제작진의 홍보전략을 비난했던 이들에겐 다소 허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KBS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접한 영화사 관계자가 바로 연락하여 취직으로 연결된 윤준형씨를 제외하면 <목두기 비디오>가 이들에게 미친 현실적인 영향 역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저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목두기 비디오>의 제작진은 2년 전과는 또 다른 이유로 흥겨워 보인다. 올해 초 영상원에 입학했다 바로 휴학했다는 윤준형씨는 이후 영화사 기획팀에 입사했고, 아무도 출연해주지 않겠다는 여관방 몰카 속 닭살 커플로 함께 출연했던 당시 여자친구와 결혼도 성공했다. 앞으로 충무로에서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 그의 최종목표.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호러단편 다섯편도 영화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목두기 비디오>와 마찬가지로 독립영화 제작·배급방식을 통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 윤준형씨의 전망이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한 영화연출 지망생 김영갑씨는 연출부로 일하고 있으며, <목두기 비디오>가 자신에게 대단한 평가나 명예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확실하다고 회고한다. <목두기 비디오>를 만들면서 촬영, 편집 등 “몸으로 때우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한상우씨는 현재 영화사 제작팀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호러의 결합

‘블레어 위치 마케팅’은 힘이 세다

<블레어 윗치>의 가짜 실종 전단지.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는 호러영화와 결합했을 때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실제 있었던 사건이래!’라는 전제하에 영화를 감상하게 되고, 이는 영화의 시청각적 공포를 실제 보이고 들리는 것보다 극대화하게 마련이다. 이같은 효과를 가장 뻔한 방법으로 사용한 영화의 예로는, 루게오 데오다토의 79년작 <홀로코스트>(Cannibal Holocaust)를 대표로 하는 (굳이 말을 붙이자면) ‘다큐멘터리 하드고어영화’들이 있다. 야만족들의 살육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포장한 이런 작품군은 ‘실화’임을 가장해 충격을 던져주려는 기획의도를 싸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호러의 가장 성공적인 결합을 만들어낸 작품은 99년작인 <블레어 윗치>라고 할 수 있다. 감독들은 공식 웹사이트(www.blairwitch.com)를 만들어 가짜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자료들을 빼곡히 채워넣었고, IMDb(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의 주연배우들 이름에는 한시적이었지만 ‘실종’이라는 정보를 붙여두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웹사이트는 무서운 속도로 입소문을 탔고, 제작비 6만달러짜리 소품은 그해 박스오피스에서 1억5천만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블레어 위치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이런 전략은 한국영화 <알포인트>가 도입하기에 이른다. <알포인트>의 마케팅팀은 웹사이트에 가상의 베트남 종군기자가 남긴 취재수첩과 기록필름을 삽입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썼다(지금도 지식검색에서는 ‘<알포인트>는 실화인가요?’라는 여러 건의 질문을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오픈 워터>는 “<죠스>가 <블레어 윗치>를 만났다”는 평가와 함께 짭짤한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둔 작품. <오픈 워터> 역시 98년 호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다이버 커플 실종사건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마케팅의 주안점으로 삼았다. 물론 <블레어 윗치> 이후, 실화 마케팅이 여전히 효과적인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초저예산으로 호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블레어 위치 마케팅’은 여전히 매력적인 승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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