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목두기 비디오> [1]
2005-07-12
글 : 오정연
실화를 가장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목두기 비디오> 탄생비화
<목두기 비디오> 홈페이지 대문을 비롯해 영화를 서비스한 각종 VOD 사이트에도 전면에 내세운 문제의 여관방 몰카 화면.

프롤로그

귀신 나오는 몰카 그 뒤

2002년 여름 한 여관 몰래카메라에 혼령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찍혔다. 이 남자의 정체를 찾아나선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20여년 전 부산에서 장남이 일가족을 살해했던 사건이 있었고, 몰카가 찍힌 여관의 주인이 그 일가가 남긴 폐가를 상속한 먼 친척임을 알게 된다. 문제의 몰카에서는 ‘아버지’라는 희미한 목소리가 포착되고, 제작진은 일가족을 살해한 범인이 장남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살해당한 일가의 주변인을 수소문하던 제작진은 막내딸의 어릴 적 친구로부터 아버지가 오래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그 가족이 살해당하기 며칠 전까지, 집안에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증언을 듣는다. 한편 폐가에서 발견된 막내딸의 그림을 분석하던 아동심리학자는 그림 속 아버지가 두 사람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자, 이상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목두기 비디오>의 줄거리일 뿐이다. 2년 전 전국의 네티즌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 영화가 내세웠던 최고의 공포무기는 바로, 사실의 가장(假裝). 정체불명의 혼령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의 꼴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2003년 가을 인터넷에서 처음 공개될 당시, 픽션임을 밝히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의 사실 여부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공방은 치열했고, 덕분에 <목두기 비디오>의 제작진은 돈에 눈이 먼 신종 사기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오는 7월15일 <목두기 비디오>가 하이퍼텍 나다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사기극의 소소한 재미와 뒷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제야 주어진 셈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윤준형씨와 조연출 김영갑씨, 촬영 한상우씨 등 세명의 핵심 제작진을 만났다. 재미 삼아 만들었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무성한 논쟁의 전개과정과 시발점은, 다음과 같다.

2003년 첫 공개

네티즌의 사기극 논란

문제의 몰카 화면을 보고 있는 영화 속 스텝.

개봉을 앞두고 기자시사를 마친 윤준형 감독에게 기자들의 반응을 물었다. “시큰둥하던데요.” 기자들이 시사회에서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이야 웬만한 이들은 알 만한 사실이지만, 2년 전 영화가 처음 공개될 당시의 열렬함을 기억하는 윤준형 감독에겐 그 썰렁함이 유난히 낯설었을 것이다. 2003년 9월 초. 파일공유사이트 PD박스를 통해 공개된 <목두기 비디오>는 그 즉시 하루 몇 만명의 네티즌들이 앞다퉈 관람하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이후 네이버, MSN 등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들이 VOD관에서 이 영화를 서비스한 것은 당연한 수순. ‘여관방 몰카’라는 자극적인 문구에 이끌려 무심코 클릭했다가, 하나둘씩 밝혀지는 의외의 사실과 반전을 따라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 네티즌들은 경찰에 사건 수사를 의뢰하거나, SBS <백만불 미스터리>에 제보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경찰 혹은 <백만불 미스터리> 제작진은, <목두기 비디오>가 허구임을 확인한 뒤 허탈하게 돌아서거나 영화 속 AD로 등장했던 배우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것이 가짜임을 썰렁하게 증명해야 했다고. 이처럼 정식으로 <목두기 비디오>가 픽션임이 밝혀지기 전에는, 왜 이 영화가 거짓인지를 밝히는 네티즌들의 직접 수사가 줄을 이었다. 자막의 지명이 실제와 다르다는 동네 주민의 제보는 초보적인 수준. 0.5초간이나 나올까 싶은 부산지역 동사무소 서류 화면을 캡처하여 20여년 전에는 부산의 지역번호가 051이 아니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제작진도 놀랄 만한 꼼꼼함이다.

이후 서울독립영화제나 KBS <독립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접했던 이들은 이러한 야단법석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엔딩크레딧에 PD를 비롯한 모든 인터뷰이의 실제 이름이 뻔히 등장하는데 진짜라고 믿다니, 너무 순진한 거 아냐?” 문제는 인터넷 개봉 때는 현재의 엔딩크레딧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여기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한 <목두기 비디오>의 홈페이지 어느 곳에도 이 영화가 픽션임을 밝히지 않았으며, 인터넷 개봉 직후 1천명이 넘는 국내 영화기자들에게 귀신이 잡힌 진짜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는 보도메일을 돌렸다는 사실까지 추가하면, 이들의 귀여운 사기극은 언뜻 도를 지나친 듯 보인다. 그러나 윤준형씨는 이에 대해서 “첫 번째 보도자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백만불 미스터리> 방영을 앞두고 돌렸던 2차 보도자료에서는 ‘영화인 줄 모르고 미스터리를 취재한 해프닝이 방송될 예정’이라며, 이것이 페이크 다큐임을 분명히 밝혔다”고 설명한다. 어쨌거나 이들이 관객의 극렬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대한 실제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당시의 홍보전략이었다. <블레어 윗치> 등의 영화가 사용했던 방식을 차용한 것이었다. 그 영화는 개봉과 함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날 수 있었는데 우리 영화는 인터넷에서 유료로 유포되는 등 배급방식이 달랐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과 네티즌의 속성과 심리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제작과정

과연 어떻게 만들었기에

여관을 섭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국은 각종 영화에 장소를 협조한 경험이 ‘비교적’ 풍부한 양수리 부근 여관을 택했다.
<목두기 비디오>의 모든 미스터리가 귀결되는 여관 건물 주인이자 살해된 일가족의 먼친척이라고 알려진 최병선씨.

솔직히 말하자. 석연치 않은 우연에 의존하는 <목두기 비디오>의 수사 과정은 다분히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구석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는, 영화가 픽션이라는 전제를 알고 있는 관객만이 가질 수 있는 의심. 익숙한 TV 르포를 그대로 흉내낸 영화의 형식은, 내용의 진실을 신뢰하게 만드는 권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차인표의 블랙박스> <시사매거진 2580> 등 숱한 TV 프로그램을 반복 시청한 윤준형 감독은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하는 힘이 “보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목두기 비디오>의 러닝타임 53분 동안, 영화 속 제작진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번 등장한 정체불명의 혼령이 제작진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만들었던 것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TV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절대로 실제 상황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경험적 사실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한상우씨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다큐멘터리 촬영자가 급박하게 카메라를 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한 템포 늦게 영화 속 PD를 따라가는 등 카메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여관 주인을 비롯해서 무속인, 죽은 막내딸의 초등학교 동창, 아동심리학자, 음향전문가 등 10여명에 달하는 영화 속 인터뷰이들을 각종 재현 프로그램이나 영화 출현 경험이 없는 이들로 캐스팅한 것도 마찬가지. 윤준형 감독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각각의 인터뷰이들이 말해야 할 핵심 팩트만을 전달한 채,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연출했다. 때로 머리를 긁적이거나, 할말을 생각하며 더듬거리는 순간을 살짝 다듬어 점프컷으로 연결하면 오히려 더욱 실감나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제작비 대비 최고의 개런티로 섭외한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까지! 억울하게 죽어간 누군가의 혼령을 숨가쁘게 추적하는 이 영화의 사실 여부를 처음부터 의심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후 연기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했던 일부 인터뷰이가 촬영 직후 개봉된 모든 영화에서 계속 단역으로 출연하는 바람에 제작진의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를 눈치챈 관객은 한명도 없었다고.

철저한 가장을 위해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썼던 이들의 노력 또한 눈물겹다. 영화 속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검색하는 옛날 신문의 마이크로 필름은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완성했고, 몰살당한 일가의 가족사를 추적하기 위해 조회하는 동사무소의 행방불명자 발생 보고문은 일일이 동사무소에서 떼어온 서류를 복사한 뒤 지우개(!)를 파서 완성한 경찰서장 도장을 찍어 위조했다. 막내딸이 그린 스케치북은 당시 스무살이었던 미술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러한 노력의 정점을 이루는 것은 여관 거울에 비친 혼령의 모습. 애초에 그럴듯한 CG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제작진은 귀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에서 직접 찍어야 한다고 믿었다. 정지 슬라이드 사진,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 등을 벽에 쏘아서 숱한 테스트를 반복한 끝에 지금의 유령이 찍히게 된 것. 참고로 정체불명의 혼령은 김영갑씨가 열연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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