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에 해는 뜨지 않는다. 하긴 <씬 시티>는 진정 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몸짱들로 가득 채워졌어도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프랭크 밀러의 유명한 “암울하고 거친”(grim and gritty: 프랭크 밀러로 대표되는 만화의 전형적 스타일을 일컫는 말- 역자) 그래픽 노블을 엄격하게 포스트-포토그래피적인 화면들로 매끄럽고 잔인하게 각색했다.
영화의 현실은 가상적이다. 강렬한 대조의 흑백에 의도적으로 배치된 색깔(원색의 빨강)이 더해져 DV에 찍은 <씬 시티>에는 디지털 처리로 강조된 배우들이 CGI로 만들어진 하이퍼 누아르 “세트”를 누비고 있다. 분위기 자체가 배경이자 이야기다. <씬 시티>는 부패한 경찰과 썩어빠진 정치인, 타락한 성직자, 소아도착적인 식인자들이 사는, 야한 여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서로 엉킨 세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지어 귀여운 작은 소녀도 자라서 스트리퍼로 내몰리고 모든 만남은 암살의 전조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씬 시티>에 남은 마지막 바른 경찰(브루스 윌리스), 정교하게 바뀐 사립탐정(클라이브 오언), 가장 볼 만한, 헐크 같은 거의 미쳐버린 살인기계 마브(변장으로 알아보기 힘든 미키 루크) 셋이다. 보이스 오버로 들리는 그들의 생각이 “그러자 불알을 차버리듯 그 생각이 나를 쳤다” 식의 하드보일드 대사들로 치장되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하하, 불알이라고? <씬 시티>에 여성적 의식의 흐름은 동성연애적 기호나 흉내만큼 찾기 힘들다. 하지만 기사도 정신마저 죽은 건 아니다. (마브가 나오는 밀러의 첫 번째 이야기를 포함한) 세 이야기들은, 상처받기 쉬운 조그만 여자를 보호하거나 그녀를 위해 복수하는, 더욱이 그 여자가 화려한 무대복을 입은 체격 좋은 창녀라면 오히려 더 그럴지도 모를, 외롭고 인정받지 못하는 강한 남자에 대한 12살 소년의 상상에 근거한다.
지나치게 답답한 로드리게즈의 직역주의
타락한 신부로 카메오 출연한 밀러는 80년대 재고안된 배트맨 등으로 유명한 만화책의 전설이고, 보도에 따르면 로드리게즈는 그를 공동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리기 위해 감독조합에서 사퇴했다. 밀러의 작품에 대한 그의 접근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다. 살아 움직이는 만화책처럼 만들려고 한 <씬 시티>에는 만화책의 스타일이 살아 있다. 마브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반창고들에서 형광색 새똥처럼 터지는 상처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디자인된 요소들이다. 영화감독들은 밀러의 회색이 없는 강렬한 대조적 색채들과 역동적인 입체감의 선호를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영화는 만화가 아니며 일단 익숙해지면 이 직역주의가 팀 버튼의 극사실적 <플랜 9> 복원과 다르지 않게 지나치게 답답해진다.
<씬 시티>의 돌고 도는 구조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나보다 예리한 사람들이 얼마의 기이한 시공간적 불일치를 주의했는데 분명히 팬 사이트에서 그 의도가 설명될 것이다). 그러나 <씬 시티>에는 <펄프 픽션>에 많았던, 휴머니즘과 혼돈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의 동기가 부족하다. 마치 그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타란티노도 한 장면을 감독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그나마 약간은 신빙성 있는 대사와 서로가 상대의 환영에 불과하지만 배우들(클라이브 오언과 베니치오 델 토로)이 서로 대결하듯 보이는 장면이다. 또한 색이 가장 은은하게 사용되었고 날 웃게 한 유일한 장면이다.
그렇다고 <씬 시티>가 당신을 키득거리게 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긴 델 토로가 변기에 처박혀 찍힌 수중장면도 있다. 유머가 폭력보다 가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지가 잘리고 턱이 깨지며 얼굴은 실컷 두들겨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상당히 끔찍한 전기의자 장면이 있는데 고문당하는 자가 머리꼭대기가 타면서도 웃으며 “그게 다냐, 이 계집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하고 또 다른 공들인 장면에선 로자리오 도슨이 한 밀고자의 목을 물어 한 움큼 뜯어낸다. 웃기려고 찍은 이런 이미지들은 잘린 머리들이 곧잘 머리카락으로 집히던 50년대 EC(만화출판사- 역자) 공포 만화를 연상하게 한다.
<펄프 픽션>을 기계적으로 베낀 <씬 시티>는 궁극적으로 첫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야기만 빙 돌아오는 게 아닌데 어떻게 보면 그게 싸구려 통속소설의 역사다. <시민 케인>의 영향을 받아 40년대 잘 나가던 만화가들이 사용했던 모든 시각적 아이디어들이 순수하게 디지털로 복원되어 유령처럼 돌아왔다. 그 모든 그래픽한 성취로 <씬 시티>는 잘 만들어진 밀랍인형관을 두 시간 동안 돌아보는 것 같다. 로드리게즈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라로 만든 만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