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형이 난 싫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페넬로페 크루즈
2000-02-22
글 : 이유란 (객원기자)

마더 테레사와 함께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보낸 일주일을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초월적 영감을 잊지 못하고, 어쩌지 못할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치유하기 위해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서적와 프로이드의 <꿈의 분석>을 읽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26)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면 뜻밖일까? 그러나, ‘스페인의 최고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페인 배우’ ‘청순과 관능의 아우라를 함께 두른 여신’이라는 수사어보다 이 단편들이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러니까 이미지와 풍문의 미망에서 벗어났을 때라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페도르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나이에 비해 깊고 넓은 내면을 지녔기 때문일 게다.

원색의 나라, 스페인의 딸답게 크루즈는 <하몽하몽>(1992)에서 관능과 열정의 아름다움으로 대중의 시선을 톡 쏘았다. 하지만 그녀는 스타가 되기 위해 자기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배우들과는 달리, 자기의 이미지를 지우고 개칠했다. 대중의 열망과 타고난 미모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거다. 그래야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으니까. “단지 미모로 승부한다면 2, 3년 이상 연기를 하기 어렵다. 외모로 성공한 뒤에 심각한 여배우로 변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내 외모를 염두에 둔 역할을 많이 제안받았다. 그걸 받아들였으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다. 이 세계에서 꼭 명심해야 할 교훈은 ‘아니오’를 말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녀는 예쁜 캐릭터에 연연하기보다 “동물 울음소리를 내야 했던” 임산부(<라이브 플래쉬>)를 마다하지 않았고, 급기야 그녀의 변신은 애를 밴 수녀, AIDS에 걸린 수녀(<내 어머니…>)로 이어졌다.

연기는 크루즈의 전부였다. 다섯살 때 분장을 시작했던 그녀는 날마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춤추고 노래했다. “어렸을 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나는 미쳤을지 모른다”라고 할 만큼 배우가 되겠다는 그녀의 욕망은 강렬했다. 12살 때 무용을 시작해 스페인 국립예술학교에서 발레와 재즈댄스를 공부했지만, 그 또한 “배우가 되기 위한 리허설”에 불과했다. <하몽하몽>과 <아름다운 시절>의 성공 이후 그녀는 연기의 울타리를 계속 넓혀가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서 영화를 찍었고, 스티븐 프리어즈의 <하이로 컨추리> 이후 미국영화에 출연하는 일도 늘었다. 빌리 밥 손튼이 연출하는 서부 영화 <예쁜 말들 전부>(All the Pretty Horses)에서는 맷 데이먼과 사랑에 빠지는 부유한 지주의 딸로 출연한다. 그녀는 성공을 향해 무턱대고 덤비지 않는다. “연기의 영역을 넓혀주기 때문에 미국영화 출연은 중요하지만 할리우드영화를 위한 할리우드영화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며 “문제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작품의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영화라면 몇분이나 얼굴이 나오는가는 그녀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삶과 영화가 만날 지점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 미국인들 “난 미국인들과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뉴욕에 살 때 사람들이 너무 일만 생각하고 삶의 나머지 부문을 소홀히한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에서는 그보다는 삶을 즐긴다. 모든 가게가 2시에서 5시 사이에 문을 닫고 5시에서 8시 사이에 다시 문을 연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자기와 가족을 돌볼 줄 안다.”

인도, 마더 테레사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자그마하고 늙은 할머니여서 그녀가 테레사 수녀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에게 압도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단 한번의 눈길로 그녀는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다.”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페드로와 함께 일하는 동안 놀라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 안에 숨겨진 많은 것들을 보게 만들었다.”

사진제공 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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